하진의 말이 떠올랐다. 죽음이 끝에 있다고 죽기 위해 사는 건 아니고 모두 헤어진다고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 것도 아니라고 했던.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삶은 죽음으로, 모든 만남은 헤어짐으로 흘러가고 순종했다. 사랑만이 그것에 반항했다. 거스르고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흘러가고 순종하는 것으로. 기꺼이, 그 한 단어에 의미들이 뒤집혔다. 흘러감은 선택이 되고 순종은 결행이 됐다. 내가 하진에게 시작하자고 했던 것도 하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지금 이렇게 그 그을음과 그림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하진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기꺼이 헤어짐을, 죽음을 받아들인다. 음악이 기꺼이 침묵으로 끝나듯. 그리고 그 기꺼운 받아들임으로 사랑은 만남에서 헤어짐을, 삶에서 죽음을 완벽히 지운다. 음악이 시간에서 침묵을 완벽히 지워 버리듯.
침묵이 오는 건 오직 음악이 끝난 뒤다. 그게 끝이라는 의미, 상태다. 골분도 화장장의 연기도 아닌, 연극이 끝난 뒤의 암전.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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