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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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긴긴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작은 펭귄이 바다를 만나기 위해서 노든과 치쿠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앙가부와 윔보가 있었다. 그 이전에는 다시 노든의 가족들이 있었고, 또 코끼리, 그리고 인간들이 있었다.

우리의 긴긴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큼지막해진 내가 여기에 앉아있기 위해서 부모님이 계셨다. 그 이전에는 할머니들, 그리고 같이 걸어가는 친구들이 있겠지.

잠이 오지 않는 밤, 혼자서든 여럿이든 조잘거리던 시간이 떠오른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머릿속을 내내 괴롭히는 과거의 생각들, 미래에 대한 생각들, 그래, 모든 생각들.

무수히 많은 생존과 죽음 속에 긴긴밤은 흘러간다. 우리는 이야기로 전해듣고 생각을 갈무리하고 다시 또 우리의 긴긴밤을 흘려보낸다. 우리가 우리만의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의 긴긴밤을 거칠 지 모른다.

우리는 코끼리일 수도, 코뿔소일 수도, 펭귄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코끼리의 훌륭함을, 코뿔소의 강인함을, 펭귄의 영리함을 배울 뿐이다. 우리는 우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될 일만 남았네.

어느 코끼리의 말에서 노든의 말로 전해진 이 문장은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으나, 우리 자신이 될 길은 다시 찾아나서야 한다.

노든의 바다가, 그 푸른 초원이듯, 우리의 바다를 찾아서.

어린이문학이라는 이야기에 가벼운 동화를 상상했는데, 심금을 울리고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아직 바다를 찾아헤매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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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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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작품으로 세월호 추모공원 설계를 맡았었다. 감히 그 슬픔에 성급하게 손을 대려했다. 나는 그 잠시만으로도 너무도 힘들었고, 너무도 쉽게 도망쳐나왔다. 내 일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슬픔은 얕아졌고,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 정보는 소홀해졌다.

그리고 다시 지금.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님의 인터뷰를 통해 만들어진 <홀>이 선명하게 그때의 그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은 '개개인'만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은 물론, 가정, 사회에 까지 은폐된 사실이 좀먹고 있다.

우리가 뉴스로만 보던 것, 그동안 글로 마주했던 생존자들의 이야기보다 더 깊게 잠긴다. 내가 배 위에 올라있었다면 어땠을까. 7년전 일이지만 밝혀진 것 하나도 없는 것들에 대해 그 답답함이 안타까움이.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생존자,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계속 언급되어야 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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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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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내일을 위한 내 일>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지금 현재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담아내고 우리에게 정해진 길은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꿈이 참 많았던 어린 시절이 있다. 온갖 것들을 하고 싶었고, 온갖 이유로 좌절했고, 온갖 이유로 실패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잊었고, 이제는 지난 날의 꿈을 잊으며 그저 성공한 사람을 동경하는 것에 머물렀다. 현실에 멈춰서 그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눈을 돌렸다. 할 수 있는 것에만. 나에 대한 기대를 점점 줄여나가고 내가 나의 가능성을 천천히 제한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책 속 많은 사람들이 ‘앞길이 훤히 보였던 것은 아니며, 우회하는 동안 많은 실패의 과정을 거쳤으며, 어떻게 하면 된다고 재단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p7),’라고 말한다. 도입부의 글로 시작해 마지막 인터뷰까지 읽고 나서 나는 이 인터뷰가 정말 내가 원하던 성공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하고, 처음에 원했던 길이 아닐 수도 있고, 그저 하다보니 자리잡게 된 것도 있고.


인터뷰는 내게 위안을 준다. 모두가 이러한 고민을 하고, 모두가 헤맨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길을 찾지 못해 갈등한다. 어쩌면 순탄하게 풀릴 때도, 어떤 때는 막힐 때도 있다. 그 헤매는 과정에서 생각을 다져가며 자신의 길을 걸으면 된다.


큰 위안이 되었다. 인터뷰이들의 직업과 걸어온 길을 엿보는 것도 좋았지만,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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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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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그때를 떠올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때를 떠올립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날의 갑갑함을 느낍니다. 우리 말을 쓸 수 없고, 우리 글을 읽을 수 없는, 나라를 빼앗겨 일제 치하에서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배우고 말하는 그때를 이렇게나마 느낍니다.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계월과 희덕이 이끌어나가는 이야기. 우리를 지키기 위한 이야기. 제가 초점을 맞춘 것은 이들이 살아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바느질할 공간을 마련해준 ‘계월’과 그 공간에서 수업이 발버둥치고 공부하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나간 사람들. 소설 속에 자연스레 녹아나는 그때 그 시절에 마음이 아립니다.

등장인물들 중 저는 누구일까요? 계월일까요, 희덕일까요? 희덕의 든든한 룸메이트, 독립운동까지 했던 단일까요? 아니면 언니 둘? 경성대학교를 다니며 독립운동을 하던 일균? 화란?

저는 아마도, 그때의 조선의 평범한 아녀자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떠한 자부심도 없이 그저 살아갈 사람일것입니다. 아, 어쩌면 일균의 아버지처럼 나라를 팔아먹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가난한 농민이 되어 어떠한 관심도 표출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에 급급했을까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갑니다. 저는 희덕과 함께 경성여자보통학교를 거닐며 계월이라는 사감선생님을 만나고, 그녀의 비밀을 알아내고, 조선의 양립하는 부를 바라보고 일제의 치하에서 발버둥치고 함께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당신도, 곧 이 시대에 발을 뻗게 될 것입니다. 이 속에 녹아있는, 유쾌함 속에 뻗어있는 그 당시의 칙칙한 어둠 속으로.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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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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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 스노볼



※ 책 내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책을 읽고 느낀점을 소설 형식으로 쓴 글로, 개인적인 생각을 반영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로 이루어져있다. 작은 선택하나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고심해 선택을 하게 된다.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최악의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 아인은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운 질문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러니까- 최근 시작한 RPG게임 캐릭터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1. 당신은, 당신보다 더 나은 환경을 가진 이의 삶을 대신 살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아인은 최근에 읽은 책, <스노볼>을 떠올렸다. 평균기온 영하 40도에 사는 전초밤에게 날아든, 아주 평온하고 따뜻한 스노볼에서 삶을 선택할 기회. 만약 나라면 그 선택을 받아들였을까. 남의 삶을 빼앗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대답은, 그렇다. 아인은 깊은 고민 없이 YES, 버튼을 눌렀다. 나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남의 삶을 대신하더라도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것도, 삶을 빼앗긴 그 애에게 큰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는데.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그 남은 삶을 더- 편안하게 쓸 수 있으니까. 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릴 지도 모르니까. 아인의 대답 이후, 새로운 질문이 화면에 떠올랐다.


  1. 내가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아인은, 당연히, 분노하지-, 하고 중얼거렸다. 다만 중얼거리지만, 그래도 전초밤과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배새린에게서 삶을 빼앗아오겠지.’

전초밤의 행동은, 영웅적이라고 생각했다. 모두를 위한 선택, 모두를 위한 복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인은 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전초밤보다는 배새린에 어울렸다. 스노볼에서 가장 주목받는 삶을 위해, 당연히 대타의 대타의 자리를 되찾는 사람. 솔직히 말하면, 배새린에 좀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더 공감가기도 하고. 얼마나 간절한 자리였으면, 다른 이와 함께 아무도 몰래 그런 음모를 꾸몄을지. 그리고 잠깐이나마 그 자리를 빼앗았으니, 얼마나 강단있는가?

컴퓨터 화면 속 캐릭터는 어쩌면 배새린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을 떄, 세번째 질문이 화면에 떠올랐다.


  1. 당신은 스노볼과 외곽 중 어디에서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스노볼이지. 물론, 액터가 아니라 디렉터 쪽이지만. 모든 삶이 촬영되는 액터의 삶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갑갑할 것이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아인은 지독한 집순이라 그녀의 삶에서 드라마틱한 요소를 뽑아내기는 힘들것 같았다. 굳이 따지자면, 액터를 조금 더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디렉터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더 즐거울 수 있는.


세 질문을 모두 선택하자, 캐릭터는 그저 아인이 되어있었다. 그저, 아인. 마치 <스노볼> 속 고해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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