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天) 6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포천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말투다. 생소한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보면 여기서 작가의 역량이 느껴진다.

 하지만 말투에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 또한 훌륭하다. 분신술에 대한 역사적 예시로 김시민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보여주고 조식의 죽음에 대한 것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이시경이 예언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재미난 것은 이시경과 정가의 대립과 그 대립 과정에서 번번이 부딪히는 사건들이 얽히고 얽혀 더 큰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 위에 교묘하게 거미줄을 쳐서 이시경이라는 인물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것은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한다. 다음은 무슨 사건이 벌어질까, 정가와는 언제 마주할까, 이시경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본 편에서는 정가의 암살 계획을 이시경이 막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조식에 이어 이황, 이이의 암살을 막는 것이었다. 이황의 안타까운 가정사와 성품, 학문에 대한 열정, 그리고 매화에 대한 사랑은 가슴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 낯익은 남인과 북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시경이 등장해 이황과 조식의 화해를 주선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또 새로이 등장한 관상이 심상치 않은 인물 정여립. 정도령과 이시경이 기축옥사의 중심에 있는 미래의 정여립을 본 것이다. 생귀라고(도는 오타인 것 같다.) 불리는 정잼이옵니다.(p93) 라고 이시경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암살을 막으며 신출귀몰한 그를 보면 자연스럽게 납득이 간다. 

 정도령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정감록과 격암유록이 세상을 흐리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초당 허엽에게 초희를 맡기고 헤어져 9년간 예언서를 쓰려고 하는 이시경의 모습에서는 점쟁이도 생귀도 아닌 아버지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이어서 정도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우치 문하에서 수법을 배워 사술에 능하고, 윤군평에게 연단술을 배워 늙지 않는다 한다.(p161)라고 서술하는데, 생각보다 더 미스터리한 놈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별하고 허씨 집안에 불운이 닥친다.  허봉의 죽음과 함께 등장한 초희는 어느덧 성숙한 여인. 갑작스럽게 초희를 시집을 보낸다는 말에 이시경이 나타난다. 하지만 초희(허난설헌)가 아버지라 부른 것은 허엽이었다.

 그림체가 기존의 만화들과 달라 낯설고 부담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다보면 인물 한 명 한 명이 개성이 넘치고 그림체 또한 획일적이지 않으며 개성이 넘친다. 또한 역사만화임에도 교훈보다는 소년만화처럼 선의 축과 악의 축이 대립하면서 엔터테이먼트와 작품성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사실 역사 장르가 기존의 다른 장르에 비해 턱이 높고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종의 계기로 접하게 되어 좋은 작품을 알게 되어 기쁘다. 역사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으니, 이시경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 즐겨주기만 해도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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