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天) 5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이번 표지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 자세히 봤더니 정가놈이다. 이런. 정가라서 다시 싫어질판.

표지의 주인공답게 이번 5막의 핵심 역시 정가다. 구법사에서 한바탕 일을 벌이려던 정가를 이시경과 그의 무리들(?)이 훌륭히 막아내지만, 정가는 도망가고 또 다시 이시경과 정가의 대치상황이 이어진다, 가 이번 5막을 간단히 줄인 것. 하지만 이 간단히 줄인 내용 안에 얼마나 감동적이고 멋진 인물들이 많은지 모른다.

일단, 정가를 무찌르기 위해 나타난 전우치다. 전노사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이시경이 그렇게 찾아헤맸는데 드디어 등장했다!! 그 외에도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등장해 정가는 당황하면서 어쨌거나 패배. 하지만 쥐새끼같이 잘도 빠져나갔다. 쳇. 하지만 비록 정가의 편에 서서 싸웠지만 구법사에서의 전투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백두령이라 불리던 백만석. 정가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 아님을 깨닫고 과감히 돌아서는 모습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에서 찡했다. 이런 의인이 있나!

여하튼 정가를 무찌르고 이시경에게 전노사가 한 말은 정말 이시경도, 이 책을 보는 독자도 띵하고 울리는 말이었다.

"재주를 가진 넌 이를 알고도 모르쇠 놓을 테냐! 되고 안 되고는 하늘의 뜻이라지만, 하고 안 하고는 자신의 뜻이겠지."(p105)

이건 비단 이시경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조선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에도 적용가능하지 않을까. 못 본척하는 것도 모자라 외면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말이다.

본 것을 외면하고 못 본척 하고 없는 것처럼 만드는 일을 떠올리니, 뒤늦게서야 며칠전에 읽은 '도가니'가 떠오른다. 읽는 내내 화도 나고 슬프고 재판까지 갔을 땐 감동하고 그러면서 본 책이었다. 하지만 책 읽는 내내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화.슬픔.무기력.우울. 이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동 성추행,성폭력,폭력을 뻔히 보면서도 못 본척 하고 감싸고 위증하는 모습이 정말 이 사회는 썩어빠졌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외면하고 위증할 게 따로 있지, 이것들은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나, 싶은 것이 얼마나 화가 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던지. 에휴.

"스승님,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허물 많은 저는 눈물만 흐릅니다."(p108)

하지만 또 인상깊었던 대사는 화담스승님의 말이다.

"두 눈을 감은 채. 판수의 길을 걸으면서 난사람으로 살지. 두 눈을 뜨고. 구원의 길을 걸으면서 된사람으로 살지는 네 선택이지."

두 눈을 감은 것도, 그렇다고 뜬 것도 아닌 애꾸눈 이 시경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질문을 던져주는 좋은 대사였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그간 구법사까지 달려오면서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다. 그 난리통에 나는 고작 무능하게 뒷전에 물러나 있다 도망친 게 다구나. 내가 마음 고쳐먹고 점괘라도 하나 뽑아 앞장섰다면 그날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p129)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예언서를 쓰면 세상이 더 나아질까 싶어 쓰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결심하는 부분에서 드디어(!) 이시경이 멋져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예언서를 쓰며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이시경과 그의 딸 초희. 비록 친딸이 아님은 밝혀졌지만, 친딸 못지 않게 초희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왠만한 친부모보다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초희가 배워오는 이상한 노래나 단어들은 제외하더라고 말이다. (웃음)

정가는 세 유학자들을 본보기로 죽이려 드는 상황에서 마무리 된 5막. 마지막 여행이라하니 이제 이시경의 여행도 얼마 남지 않았나보다. 어쩐지 벌써부터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가랑 대치하는 상황을 계속 보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여하튼, 정의 구현이라하면 너무 거창해보이지만, 이시경이 예언서 작성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실현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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