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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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넘기면 존 키츠의 시가 나온다.
 

 "성 나그네스! 아! 오늘은 성 아그네스의 밤 -

 허나 성스런 날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니."

 

 본 시는 "성 아그네스의 밤" 14연의 첫 구절이며 성 아그네스는 258년 혹은 340년에 로마에서 순교한 기독교 성녀로 축일은 1월 21일이다. '아그네스(Agnes)'라는 이름은 '순결한' 혹은 '성스러운'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하그노스(hagnose)'에서 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시와 본 소설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시에 나오는 아그네스라는 이름과 의미는 본 책의 제목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첫구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그네스가 죽었다. 한 편의 소설이 그녀를 죽였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은 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시작하자마자 끝 나버리는 이야기.

 

 주인공인 나는 논픽션 작가로 아그네스를 시카고 공립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호화 여객 열차에 대해 조사중이였지만 글은 쓰이지 않았고 아그네스와의 만남의 횟수는 조금씩 들어갔다. 격하게 감정적으로 쓴 문장이 아닌 짧고 담백한 문장에 나는 조금씩 매료되어갔다.

 

 아그네스와 그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그는 아그네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아그네스는 좀처럼 사적인 얘기를 하지 않았고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한 사적인 얘기 중 하나가 그녀를 사랑하는 허버트에 관한 것이었다.

 뉴욕에서 돌아오던 날, 아그네스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쓴 글을 그에게 보여주었고 그는 그녀에게 질투와 시기를 느끼며 비난의 말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그네스는 그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나에 대한 소설을 쓸 수 없어?'라며 묻는다. 그는 거절하지만 아그네스를 향한 사랑에 못이겨 쓰기로 마음 먹는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쓰이는 소설. 그가 소설을 쓰면 아그네스는 그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의 아그네스와 그의 생활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현실을 앞질렀다. 그가 쓴 소설을 읽으며 그와 그녀는 그와 같이 행동하며 지내기도 했다.

 그는 그녀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긴 했지만 호화 여객 열차에 대한 조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조사 과정 중에 풀먼 리스 사의 루이즈와 만나게 되었다.

 얼마 뒤 아그네스는 아기를 가졌고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녀는 집을 나갔고 그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어딘가 있을 자신의 자식에 대한 부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와중 아그네스가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받게 되고 며칠 뒤 찾아갔고 육센티미터의 태아였던 아기의 죽음을 알게 된다. 아그네스는 그 일로 힘들어 했고 그를 멀리했다.

 

 어떤 이야기든 끝이 있기 마련. 그의 소설도 어느덧 끝을 향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결말은 두개 썼는데 첫번째는 그가 원하는 결말, 소망하는 결말이었다. 쓴 자신조차 납득 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행복한 결말. 그런 결말을 소망하지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납득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이야기를 손질하며 결말 2를 이야기의 끝으로 했다.

 그리고 그가 루이즈가 초대한 신년파티에 간 사이 결말 부분을 읽은 아그네스는 그 결말에 맞춰 집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로비로 가 윌로 스프링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의 길고 긴 거리를 그녀는 걸었다. 추위에 감각을 잃은 그녀는

 

 -그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분말 같은 눈 속에 얼굴을 묻었다. 서서히 감각이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두발과 두 손에서, 그리고 다리와 팔에서, 점점 살아나는 감각이 어깨와 하반신을 통해 그녀의 심장에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온몸에 스며들었다. 눈 속에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녀 몸의 열기로 눈이 녹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었다.

 아그네스에 관한 이야기도 이걸로 끝이 났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는 국립공원에 하이킹을 갔을 때 아그네스가 찍은 비디오를 화면이 끊길때까지 본다. 그것이 끝이었다.

 

 아그네스는 죽었구나.

 

 첫 문장을 망각하고 있던 나는 마치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는 듯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하지만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왜 아그네스는 죽어야만 했는가. 그녀는 왜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 하는 것을 꺼려했던가. 그녀와 허버트와의 관계는 무엇이었는가. 그녀가 원했던 결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했던 걸까.

 

 호흡이 짧고 담담한 문체였다. 마치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사실만을 전하고 싶어한 것처럼.

 그가 아그네스와 보낸 일상은 소설화됨과 동시에 구분이 어려워져갔다. 일상이 소설로 되던 것이 소설이 일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아그네스는 죽었다. 그가 쓴 결말로 인해. 그의 이야기로 인해.

 

 위의 의문들은 답을 하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그네스는 아기를 잃어서 우울증을 앓았고 그의 결말이 그녀의 자살을 굳건하게 했다. 그래서 죽어야 했다.

 그녀의 유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고 그녀의 부모님과도 관계가 있어 자신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석사 졸업 파티에서 만난 배우였던 허버트는 사실 아그네스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아그네스의 환상일지도 모르기에.

 그녀와 원한 결말은 유산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를 낳아 그와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유산 한 후 집도, 도시도 두려워졌기에 이건 유산으로 인한 상실감에 기인한게 아닐까.

 

 이렇게 뭐든 답을 내려면 낼 수 있다. 하지만 답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쓰는 내내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도 들었고 저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가장 나를 즐겁게 하는 의문은 아그네스가 '정말' 죽었는가의 여부다.

 아그네스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는 아그네스를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 아그네스는 정말 소설을 읽고 그 소설 속 상황에 맞추어 죽으러 간 것일까? 그녀가 죽었다는 건 그의 생각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녀가 죽었다는 건 그저 상황증거에 의한 것일 뿐이다. 게다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그는 그녀를 찾으러 갔어야 하지 않았던가.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혹시 그는 아그네스가 자신의 소설에 맞춰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그럼 그는 왜 그런 것을 바랐는가?

 

 생각의 꼬리가 계속 이어져서 자꾸만 나아간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추리를 해나가는 기분은 무척이나 즐겁다. 어디까지나 모든 것은 나의 추측이고 상상일 뿐이지만, 세상은 그런 추측과 상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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