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한국 정부는 낙태를 음성적으로 권장하던 시기에도, 낙태금지를 실질적으로 고려하는 시기에도 계속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사자인여성은 항상 배제되었습니다. 이 예민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여성이왜 낙태를 선택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그 고통스러운 당사자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
이런 연구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몸에 새겨진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일수록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태아나 막 태어난 아이가 굶주리는 것은 같은 기간 성인이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테니까요. 우리가 인간의 몸과 질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속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하지요.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때로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오래전 사회가 남긴 상처가 인간의 몸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금연에실패할 경우, 그 원인은 개인의 금연 의지 부족일까요, 아니면 금연 의지를 좌절시키는 위험한 작업환경일까요? 물론 둘 다 중요한 원인이고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자는 개인의 역할이고 후자는 작업장과 회사와 국가의 책임이지요. 한국사회는 전자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질문해봅니다.
이런 결과는 경제위기를 겪을 때 국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보다 구체적으로는 ‘효율‘이라는 이름하에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이행을 요구하는 IMF의 권고사항을 국가가 얼마나따랐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결핵 사망률이 달라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는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에 투자하는 비용이 감소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스템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지 않고서는 IMF가 요구하는 경제적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알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는 이후 출판된 다른 논문에서 이러한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이유로, 의료 인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노동시장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사회안전망이 축소되고, 빈곤층이 늘어나고, 질병 감시체계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줄어드는 것 등이 언급됩니다.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 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금연하지 못하는 건설노동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 시골 지역에서 AIDS로 사망한 여성도, 동유럽의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던 나라에서 결핵에 걸린 어린이도, 개개인만을 바라본다면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 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의사결정 과정을 지켜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한, 결론에 도달하는과정이 정당했는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사회에서, 앞서 이야기한 과학적 합리성의 세 가 지 요소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해고를 당했을 때, 한국사회가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그 위기를 대비하고자 각자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는 그동안 여러 참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요. 저는 세월호 생존 학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 발생했던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놀라울 만큼 기록이라 할 만한 게 없었어요. 간혹 발견되는 신문기사 말고는 그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간에대해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던 국가는그 아픔을 개개인에게 넘긴 채, 계속 정권이 바뀌며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 다. 세월호 참사까지 기록 없이 이렇게 지나간 사건으로 남겨둘 수는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참사의 연쇄 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80년대 민주화운동에 그토록 적극적이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절반만, 아니 그 반의반만이라도 그때 열정의 10퍼센트를 가지고,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소득과 시간의 10퍼센트를 소외된 약자를 위해 쓰고 있다면, 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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