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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의사들에겐 별거 아닐 수 있는 수술이라도 수술을 받는 환자는 아프고 절망하고 힘겹다. 하지만 아무리 명의여도 겪지 않은 환자의 아픔은 헤아릴 수 조차 없어서 그런지 수술후 남의일 처럼 대하는 병원 분위기에 절대 다시 수술 받을 일 없기를 기도했었다. 이런걸 직접 겪은 의사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세상에 없거나 하니까. 의사가 되고 싶다면, 의사라면 꼭 한번 읽어 보면 좋겠다.
시체 해부는 엄숙하고 경건한 학생들이 냉정하고 거만한 의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56
의과 대학원 4학년이 되자 많은 동기들이 방사선과나 피부과 같은 덜 고된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어리둥절해서 다른 유명 의과 대학원의 경우는 어떤지 알아봤더니 별로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근무 일정이 좀 더 여유롭고 연봉은 더 높고 스트레스는 덜한, ‘느긋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전공 분야로 눈을 돌렸다. 입학 논술에서 그들이 내세웠던 이상주의는 물러지거나 아예 사라졌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예일 대학의 전통에 따라 우리는 졸업식 선서를 작성했다. 히포크라테스, 마이모니데스, 오슬러를 비롯해 위대한 의학계 선조들의 격언들을 섞어서 썼는데, 일부 학생들이 의사보다 환자의 이익을 중시하자는 표현을 빼자고 주장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이 논의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표현은 결국 끝까지 남았다. 나는 이런 자기중심주의가 의학의 본질에 상반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주장에 합리적인 면도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76
나는 모든 이가 언젠가는 마주치기 마련인, 삶과 죽음과 의미가 서로 교차하는 문제들은 대개 의학적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77
모든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는 동안, 신경외과의는 정체성이라는 혹독한 용광로 속에서 일한다. 모든 뇌수술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인 뇌를 조작하며, 뇌수술을 받는 환자와 대화할 때에는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뇌수술은 대개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며, 그래서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이 그렇듯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치명적인 뇌출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낮은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시력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작을 멈추려고 하다가 오른손을 못 쓰게 된다면?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78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82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부담감은 의학을 신성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100
(나는 브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크게 성공했음에도 미덕을 중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102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104
하이데거의 말처럼
"지루함은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는 것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106
(의사는…)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 기술에 정말 많은 게 걸려 있거나, 불과 1~2밀리미터 차이로 비극과 성공이 갈릴 때에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107
희망(hope)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영어에 등장한 건 약 1,000년 전으로, 확신과 소망을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소망하는 것(삶)과 확신하는 것(죽음)은 달랐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131
의사는 병에 걸리는 느낌이 어떤지 추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랑에 빠지거나 아이를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 거기에 따라오는 수많은 서류 작업이나 사소한 일들이 별로 반갑지 않다. 예를 들어, 정맥 주사를 꽂고 있으면 주사액이 스며들기 시작할 때 실제로 소금 맛이 느껴진다.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11년 동안 병원에 몸담으면서도 나는 고통의 구체적인 느낌을 전혀 알지 못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책, 그 이상의 가치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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