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물고기는 내 평생 듣도 보도 못했단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구나. 이럴 땐 인간이별을 죽일 필요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노인은 생각했다. 날마다 사람이 달을 죽여야 한다면, 아마 달은 달아나 버리겠지. 또 날마다 해를 죽여야 한다.면, 그건 얼마나 큰 사건이 될지 모르는 것이고, 그러니 인간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이가. P33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노인은 말했다."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물고기를 죽인 것이 좀 후회스럽군, 노인은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더 큰 시련이 닥쳐올 텐데, 나에게는 작살마저없으니. 마코상어는 대부분 잔인하고 힘이 세며 영리해. 하지만 내가 그 상어보다는 더 영리했어. 아, 내가 더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다만 저들보다 무장이 잘되어 있었던 것뿐이라면 큰일이군."쓸데없는 생각일랑 말라고, 늙은이."노인은 스스로를 꾸짖었다."상어가 나타나면 그때 상대할 일이지, 벌써부터 걱정은 왜 하고 있담." P45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은 죄다. 지금은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지금은 죄 말고도 얼마든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또한 죄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죄가 뭔지 잘 모르겠고 또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그렇더라도 아마 그 고기를 죽인것은 죄가 될 거야. 내가 살기 위해서, 또 여러 사람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야. 하지만그렇다면 무엇이든 죄가 아닌 게 없을 테지. 아무튼 지금은 죄를 생각하지 말자.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너무 늦었어. 그리고 돈을 받고 죄에 대해 생각해 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죄에 대해 실컷 생각하라지.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나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성 베드로도 디마지오의 아버지도 한때어부였어.노인은 자신과 관련한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노인에게는 읽을 책도, 라디오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는 죄였다. 너는 다만 살기 위해서라든지 팔기 위해서 물고기를 죽인 것은 아니다. 긍지를 위해서, 또 어부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죽인 것이다. 너는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도 사랑했고, 죽은 뒤에도 역시 사랑했다. 만약 진정 고기를 사랑한다면 죽이는 것는 죄가 아니야. 아니, 오히려 죄보다 더한 것이 되는 걸까?"늙은이, 자네는 생각이 너무 많군."노인은 소리 내어 말했다. P46
"명색이 십대 소녀들의 감성과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세븐틴인데, 고독의 재발견이라니까 무슨 학술잡지의 공맹사상 특집 같은 소리처럼 들리네요?"수석기자이자 편집부의 청일점인 정수가 말했다."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면서 다들 소통이니 연결이니, 이런 말들 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 같지만 오히려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편집장님이라면 또 모를까, 요즘 애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인데 과연 피로감을 느낄까요?""그래도 유부남보다는 내 감각이 좀더 젊지 않을까? 내 말은 이런 뜻이야. 휴대폰이나 대형 마트나 DMB 따위를 없앤다면 뭐가 남을 것 같아?"윤경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챘는지, 기자들은 다들 대답이 없었다.- ‘"책 같은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야. 원래 그 자리는 고독의 자리였 어. 혼자 존재하는 자리.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고독은 흔했지만, 지금은 디지털 기기에 밀려일상에서 고독이 사라지면서 고독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어. 21세기에 우리에게 허용된 고독의공간이란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루트, 혹은 코타키나발루 고급 리조트의 모래사장 같은 곳이지. 관광산업이 정교하게 관리하는 이 고독을 경험하려면 몇 달 월급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고독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질 거야." P72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값싸게 즐길 수 있는 고독이란 게 없어. 돈을 지불하지 않은 고독은 사회 부적응의 표시일 뿐이지. 심지어는 범죄의 징후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선생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서 지내는 학생에게서 자살이나 학교 폭력의 가능성을 읽고, 이웃들은 친구나 가족의 왕래가 없이 살아가는 1인 가구의 세대주가 잠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만 하잖아. 우리 시대의 고독이란 부유한 자들만이누릴 수 있는 럭셔리한 여유가 된 거야. 고독의 재발견이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고독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요가나 명상 같은 프로그램이나 오가닉 상품들이 뭐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윤경이 말하는 동안에도 기자들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고독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금 당장 인터넷을 검색할 기세였다. 하긴…… 회의를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윤경은 생각했다. 자신이 고립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이런 사회에서스마트폰이란 얼마나 요긴한 도구인가. 스마트폰 덕분에 우리는 고립에서 벗어나 24시간 누구에게든 연결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검지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몇 센티미터만 움직여도 놀라운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지금 누가 어느 맛집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막 무슨 소설을 읽었으며 별점은 몇 개인지, 여행지에서 자신이 맞닥뜨린 놀라운 풍경은 무엇이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그 신세계에 고독을 위한 자리는 없다. 홍합돌솥밥 따위를 찍어서 친구들을 위해 트위터에 올릴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들과 나는 이 사진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되므로 나는 무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구입니다. 친분으로 연결되는 이 세계는, 그러므로 투명하다. 각자는 ‘우리’로 연결된다. ‘우리‘는 기억도 공유하며, 판단도 함께 내린다. ‘우리‘는고립되지 않는다. ‘우리‘는 절대로 자살하지도 않는다. P73
"나는 인생의 불행이 외로움을 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불행은 불량한 십대들처럼 언제나 여럿이 몰려다니죠. 1987년 6월 이후,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노동환경이 크게 개선됐지요. 그건 어머니에게 좋은 일이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중국과 베트남에 비해서 부산의 인건비는 크게 상승했기 때문에 OEM 방식으로 신발을 만들던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어머니의 공장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머니는 폐쇄된 공장 문 앞에서 부당 해고와 임금 체납에맞서 투쟁했지요. 노동부로, 노무법인으로, 복지공단으로…… 운동 가요도 부르고 전경들과 대치도 하고 사지를 붙들려가며 눈물도 흘렸지요. 그러던 어느 밤, 어머니는 남동생에게 가슴이 아프다고,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러곤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한 뒤 돌아가셨어요. 그런 날에도 나는 불평과 비관과 읍소의 문장들만 담긴 국제우편을 쓰고 있었습니
어쩜 이리 아픈이야기만 쏙쏙 골라 써 놓으셨습니까 ...
진눈깨비는 눈이 되고 있는 비라고도, 비가 되고 있는 눈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우산을 펼친 사람들에게는 그게 비였고 우산을 접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눈이었는데, 그 비율은 거의 반반이었다. 날씨도 추웠다가 따뜻해지는 것인지 따뜻했다가 추워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진눈깨비는 ‘아령칙하다‘ 라는 형용사에 어울리는 물질이다. 긴가민가하다면 그냥 진눈깨비라고 말하면그만이다. 비인지 눈인지 구태여 확인하고 싶다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염소한테 소지를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때, 누구나 자신이 어떤 종류의 영혼을 지녔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다.
미혼남에서 유부남으로 바뀌는 과정은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과 비슷하다. 유부남이 되면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중력이 여섯 배나 강해진다는 사실에 멍멍해진다. 하지만 달에서 지구로 바로 귀환할 수는 없다. 반드시 무중력 공간을 거쳐야만 한다. 신혼여행이 바로 그런 무중력 공간 에 해당한다.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법적인 미혼녀의 육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탐닉할 수 1있는 그 밀월여행은 확실히 무중력상태와 닮았다. 귀 안쪽에 있는 반고리관이 바뀐 환경에 적응 하지 못해 감각신호들이 달라지거나 뇌의 지시를 몸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등의 현상은 우주공간에서나 신혼여행지에서나 늘 일어나는 일이다.
일단 온 존재가 완전히 비워지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랑은 ‘나‘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질투로 몸이 달아 자살을 떠올 리는 심약한 청년이 되기도 하고 어떤 투정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너그러운 성자가 되기도 하고 청소차가 지나가는 새벽 거리를 비스듬히 누워서 바라보는 폐인이되기도 한다. ‘나‘는 레너드 코헨의 노래처럼 권투선수와 의사와 운전수가 될 수도 있고 안치환의 노래처럼 그대 뺨에 물들고 싶은 저녁노을이나 그대 위해 내리는 더운 여름날의 소나기가 될 수도 있다.하지만 사랑이 끝나면 이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다. 사랑의 종말이 죽음으로 비유되 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데, 그러면서 무한히 확장됐던 ‘나‘는 죽어버린다.
폭격으로 전기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무방비도시가 현대사회라면, 그 어둠 속에 혼자 고립된 채 살길을 찾아 나서는 게 바로 우리 삶이다.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일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현대인은 취향도 없고 견해도 없는 신원 미상의 군중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당신이 누구인지 삼십 초 안에 설명하시오"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일단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거들떠보는 데 아까운 이십오 초를 허비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머지 오 초 동안, 되도록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