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는 눈이 되고 있는 비라고도, 비가 되고 있는 눈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우산을 펼친 사람들에게는 그게 비였고 우산을 접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눈이었는데, 그 비율은 거의 반반이었다. 날씨도 추웠다가 따뜻해지는 것인지 따뜻했다가 추워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진눈깨비는 ‘아령칙하다‘ 라는 형용사에 어울리는 물질이다. 긴가민가하다면 그냥 진눈깨비라고 말하면그만이다. 비인지 눈인지 구태여 확인하고 싶다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염소한테 소지를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때, 누구나 자신이 어떤 종류의 영혼을 지녔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다.

미혼남에서 유부남으로 바뀌는 과정은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과 비슷하다. 유부남이 되면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중력이 여섯 배나 강해진다는 사실에 멍멍해진다. 하지만 달에서 지구로 바로 귀환할 수는 없다. 반드시 무중력 공간을 거쳐야만 한다. 신혼여행이 바로 그런 무중력 공간 에 해당한다.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법적인 미혼녀의 육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탐닉할 수 1있는 그 밀월여행은 확실히 무중력상태와 닮았다. 귀 안쪽에 있는 반고리관이 바뀐 환경에 적응 하지 못해 감각신호들이 달라지거나 뇌의 지시를 몸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등의 현상은 우주공간에서나 신혼여행지에서나 늘 일어나는 일이다.

일단 온 존재가 완전히 비워지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랑은 ‘나‘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질투로 몸이 달아 자살을 떠올 리는 심약한 청년이 되기도 하고 어떤 투정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너그러운 성자가 되기도 하고 청소차가 지나가는 새벽 거리를 비스듬히 누워서 바라보는 폐인이되기도 한다. ‘나‘는 레너드 코헨의 노래처럼 권투선수와 의사와 운전수가 될 수도 있고 안치환의 노래처럼 그대 뺨에 물들고 싶은 저녁노을이나 그대 위해 내리는 더운 여름날의 소나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면 이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다. 사랑의 종말이 죽음으로 비유되 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데, 그러면서 무한히 확장됐던 ‘나‘는 죽어버린다.

폭격으로 전기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무방비도시가 현대사회라면, 그 어둠 속에 혼자 고립된 채 살길을 찾아 나서는 게 바로 우리 삶이다.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일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현대인은 취향도 없고 견해도 없는 신원 미상의 군중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당신이 누구인지 삼십 초 안에 설명하시오"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일단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거들떠보는 데 아까운 이십오 초를 허비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머지 오 초 동안, 되도록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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