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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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라는 책을 본 적 있다.


그 책에서는, 과학이 아직 그렇게까지 발달하지는 못한 중세시대까지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신화나 초상화 등을 통해 죽음 그 자체를 찬양하거나

(ex. ‘자살은 가장 고귀한 죽음 중 하나’라거나, ‘사랑이 있다면 죽음조차 능가할 수 있다’며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 자체를 아름답다고 역설하는 식으로)

문화적으로 즐기거나

혹은,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음만이 불가피한 선택이다,

죽음 이후에는 모두 구원받을 것이다‘, 라는 논리를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왔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것은 가장 공포스러운 대상이 되어 있다.

짧게는 노동력의 감소라거나 특정 집단의 존속을 위협하기 때문이었고,

길게는 죽음 이후에는, 자신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대에는 종교를 만들어냈고,

중세시대에는 마녀 사냥을 만들어 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죽음 그 자체를 터부시 해왔던 것이리라.


[슬픈 불멸주의자]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파생되는

특정 개념에 대한 의존성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 사람들은 미술작품이나 연극 등의 문화·예술작품들을

(ex. 파우스트, 맥베스, 죽음의 무도)감상하거나 활발한 신체적 활동을 해서 공포심을 이겨내거나 /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작품들을 만들어 냄으로 해서, 혹은 자신의 육체 자체를

냉동보전 함으로 해서 죽어서까지 자신의 무언가가 이승에 남아있도록 노력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우리는 동물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동물들처럼 본능에 충실한 존재들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받기 위해서 전족이나 지나친 다이어트, 코르셋 등을 통해 몸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방식을 취해 왔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멸을 추구하지만, 신체의 유한함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번지점프 같이)죽을 수도 있는 활동이나 특정한 신체적 특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지, 죽음의 공포를 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것을 믿음으로 해서 이겨내는지’ 등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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