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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소설 [1984]의 세계에서는 모든 정보가 차단 혹은 왜곡되어 있었고,
문화나 생활양식은 통제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24시간 내내 감시당하는 상태로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영위해간다.
[고요한 밤의 눈]의 주인공들,
신상이 등록되지 않은, 사라져버린 쌍둥이 언니가 하던 상담실 일을 이어 하며
언니의 실종 이유를 찾는 D와
사고로 인해 15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기억을 잃기 전까지의 삶을 모두 부정당한 채
스파이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X와
스파이로서 여러 직업이 적혀있는 명함을 통해 자신의 진실 된 모습을 숨긴 채
스파이로 활동하게 된 X와 소설가 Z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 Y와
어느 순간부터 글이 써지지 않는 소설가가 되어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어버린 Z와
Y와 X의 상사로, 스파이 조직 내부에서는 중간 보스와 비슷한 역할을 맡은 B는
모두 소설 [1984]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라는 존재는, 대다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안락한 삶을 약속받은
일종의 특권계층이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이들은 감시 대상을 감시하고 (그들의 인생을)조정하는 대가로 부유한 취미생활을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같은 일을 하는 친구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통보 등을 받으면서 점차 체스판 위의 말로 사는 나날에 대해 조금씩 거부감과 의문을 가지게 되고,
이들은 “승자가 역사를 기록할 때, 패자는 진실을 기록한다. 슬퍼하기에 적당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지만, 슬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이제 멈춰야만 한다.”라는 마음가짐 아래 패자의 서를 목표로 앞으로 나아간다.
현대의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오직 ’매달 나가는 학자금 상환 금액에 대한 한탄, 취직 문제, 미래의 돈 걱정‘ 등 당장 없으면 불편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만 채워지도록 유도되고 있다.
중장년층에게는 ‘임금피크제’로 지칭되는 임금 제한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불안감을,
2-30대 젊은이들에게는 ‘자격증, 토익점수, 학점, 대학교 이름, 아르바이트 경력, 참신한 경험’으로 대표되는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감을 줌으로 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종의 ‘목적 없는 수단’을 얻기 위한 쳇바퀴를 계속 돌리게 요구함으로 해서 나라에서 내놓는 모든 불합리함에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상은 끝났다’라고 말하던 X가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기존의 체재를 비트는 이중스파이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 역시 X와 같은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세상에 대한 가능성 역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