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김지현 / 레드스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이전까지는 ‘애가 좀 밖에 많이 돌아다니네.’ 라거나 ‘더럽게도 다니네, 좀 씻고 그러지.’

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정신적 학대 피해자-혹은 방치아-로 판명된 사건들이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육체에 흔적이 남는, 직접적인 폭력행위만이 학대의 징후로 여겨지고는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적 학대나 방임 쪽도 제대로 인지만 되지 않았을 뿐

육체적인 것만큼-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하게-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학대로 인식되기 시작해서이리라.

[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에서의 주인공 그레이스 역시 방치아들 중 한명이다. 어머니는 존재하나 그 어머니가 약물 중독으로 인해 등하교 시 동행과 같은, 법적인 의무로 명시되어 있는 의무들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다른 어른들을 통해 부모가 변하기를 기대하나 자신이 당장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른들은 대부분 자기와 부모를 떼어 놓으려는 목적뿐이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학교에 가는 대신 자신이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있기 시작했고, 이는 자기 자신만 알던 남자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실제로는 신체적 문제로 인해 도움만 받고 살던 할머니 / 공황 장애로 인해 10년 이상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던 아저씨 등 그녀와 똑같이 변화를 원하나 주변에 이를 지지해 줄 사람이 없던 다른 어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현실에서도 그레이스와 같이 무책임한 부모에 의해 방임,

학교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사라져 버렸다거나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예를 들면 이상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모습이라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복장,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한 비정상적인 반응 등)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신호를 인지하더라도 무시하며 아이들을 밀어낸다.

도움의 대부분은 개인이 행하는 것이고, 따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자 장난감. 그런데 왜 너네는 그 장난감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야? 나에게서 장난감을 함부로 빼앗아 가지마.’ 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향하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는 부모에게 아이를 다시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누군가와 연결될 여지 자체를 끊어버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것과 같이 아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과 연대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튼튼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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