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99%에서 한사상으로
최동환 지음 / 지혜의나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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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는 99%를 지배하고, 99%는 1%가 되기 위해 힘쓰고 때로는 99%가 1%를 배제하기도 합니다.

이때 이 99%가 1%를 배제하는 것으로 인해 중세 유럽에서는 노예제와 마녀사냥,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미국인들에 의한 인디언 토착민들의 학살, 근대에서는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 벌어졌고 현대에도 왕따라는, 다수의 소수 따돌림이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마녀사냥은 수컷은 본성적으로 우월하고 암컷은 열등하며 이것은 인간에게도 적용됨으로 해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의해 설득력을 얻고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말한 '마녀를 살려줘서는 안된다'란 구절은 이를 정당화 시켜줘 너넨 1%라, 그러니 죽어줘야겠어라는 주장과 이것이 세뇌된 군중과 마녀로 몰린 희생자의 '이중 정신병(한쪽의 광기가 다른 쪽의 망상을 강화시키는 것)'을,

유대인 학살의 경우 유대인들은 본디 기생민족으로 생존을 위해선 비유태인 숙주의 피를 늘 공급받아야 하며 따라서 생피를 마시는 의식을 신봉한다, 라는 거짓 주장이 여전히 퍼져있으며 이러한 주장은 나치가 독일을 지배하던 당시 1%였던 유태인을 수용소 및 가스실로 보내는 동기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월가에서 시민들이 1%의 부자들에 의한 빈부격차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우리는 99%'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수만을 존중하는 사회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1%와 99%가 서로 분열한 채 통합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결코 100%가 되어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며 다스림을 받는 것이 성사되는 사회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100%가 되어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며 다스림을 받는, 즉 과정적 민주주의를 보여준 사례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들고 있습니다.

본디 어떠한 공화국에서 강력한 폭력의 불이 붙게 되면 정의는 더이상 지켜지지 않고 생업이 중단되며 가정은 그 일상을 잃고 거리는 생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한 가족과 친구와 친지들 마저 순식간에 분열, 이는 서로에 대한 연민마저 위험하게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침묵을 하게 함과 동시에 모든 것이 극도의 혼란이 되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려움과 만나는, 절망에 빠진 맹인처럼 나아갈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광주에서만큼은 정반대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스스로 자기 조직화하여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그 광기에 맞섰으며 피의 진압이 끝난 이후에는 명예회복의 법적인 판결도 받아냈습니다. 또한 시대 권력의 폭력과 학살을 참다운 정의로, 속임수와 광기를 도덕으로 바꾸었으며 선정 및 선동을 올바른 중용으로 바꾸어 내는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1%와 99%는 서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5.18 민주화운동에서 보여준 모습을 지금이라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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