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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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읽었다. 내가 딸이라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친구처럼 자매처럼 지내는 딸과 엄마에게 갈등이 일어나는 그런 소설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정말 아니었다. 진짜 예상하지 못했던 소설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 집에서 직장에 다닌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다. 김혜진의 소설은 반대다. 엄마의 집에 딸이 들어왔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니 딸의 부탁들 들어준다. 겨우 집 하나 남았는데. 사정도 못하겠고.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까. 모든 게 갈등이다. 딸이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그런데 엄마는 딸이 아니라 딸의 동성애인이 싫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딸이면 좋았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생각은 자연스럽게 딸애에게 옮겨 간다. 딸애는 서른 중반에. 나는 예순이 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그리고 딸애가 도달할, 결국 나는 가닿지 못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나을까. 아니, 지금보다 더 팍팍할까. (p.22~23)


엄마도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건 이해한다. 그래도 동성애인은 아니다. 동네 사람 보기도 창피하고. 어디다 말할 수도 없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엄마는 딸의 미래가 걱정이다. 엄마가 돌보는 치매 환자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도 불안하다. 딸이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는데. 자꾸 문제만 생긴다. 평범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 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p.169)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서 평생 모를지도. 나이드는 엄마를 생각하고 불안한 내 미래도 생각한다. 소설에서 만난 동성애자, 소수자,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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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감기 걸릴까 무섭구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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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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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좋을지 망설이는 사이, 언니가 먼저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우산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비였다. 언니는 이내 우산을 접더니 비를 쫄딱 맞은 채 나에게 빗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는 폭우 속을 달렸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지않아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해가 날 거라는 사실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처럼. (시간의 궤적 중에서)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 그렇지 않다. 일상을 그린 것 같지만 또 아니다. <시간의 궤적>에서도 배경이 프랑스다. 프랑스란 나라, 이국적인 상상을 한다. 그런데 소설은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만난 언니와 나의 우정을 다룬다. 이해할 수 없지만 또 이해하게 되는 사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기억에 대해서. 참 묘한 거구나. 과거의 좋았던 일들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고. 백수린의 단편은 이런 설정이 많은 것 같다. 여름의 빌라>는 휴가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추억만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에서 그건 아니었다. 주어진 현실, 슬픔, 역사 같은 게 어우려졌다. 좀 어려웠다. 안타깝기도 했다. 


긴 세월의 폭력 탓에 무너져내린 사원의 잔해 위로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나무.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여름의 빌라 중에서 )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십대 소녀의 반항처럼 느꼈다. 물론 그런 내용은 아니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경험하는 묘한 감정이라고 할까. 매일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길에서 보게 된 붉은 벽돌집이 허무는 과정을 본다. 그 일을 하는 남자들을 보게 되는데. 알 수 없는 욕망을 경험한다. <흑설탕 캔디>는 할머니를 추억하는 소설이다.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를 기억하는 이야기. 나는 할머니와 추억이 크게  없다. 그래서 좀 색다르게 읽었다. 외국에서 아들과 손자손녀를 돌보는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도 통하지 않고.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는 표지랑 제목이 넘 예쁘다. 여름에 읽고 싶었는데 가을이 되었다. ㅎ 백수린의 단편집은 처음 읽는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와 문학동네 젊은작가수상작에서 만난 게 전부다. 대신에 장편과 번역한 작품을 읽은 기억도 있긴 하다. 이번 작품집을 통해서 백수린의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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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0 소설 보다
강화길.서이제.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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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을 읽으면서 우리집 제사 풍경을 생각했다. <가원>도 재밌다. 강화길 장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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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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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아침에 길가에 놓인 국화 화분을 봤다. 벌써 이렇게 꽃이 피었나 생각했다. 바빠서 한 번도 꽃이나 나무에 눈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옥상에도 화분이 있고 집 베란다에도 엄마가 관리하는 게 있는데. 괜히 미안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표적으로 피는 꽃만 본 것 같다. 내년에도 또 피니까. 별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근데 피오나 스태퍼드의<덧없는 꽃의 삶>을 읽으면서 좀 다르게 보였다. 이런 부분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


꽃들은 놀라움을 실어 나른다. 해마다 꼭 같은 장소에 피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꽃들이 해마다 새롭게 보이는 요령은 쉽다. 실제로 새롭기 때문이다. 꽃들의 연약함은 그들의 투명한 꽃잎, 섬세한 덩굴손, 금빛 꽃가루로 충분히 드러난다. 그토록 많은 꽃들이 해마다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p.15)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그 자리에 똑같이 꽃을 피울까. 제 집이라는 걸 아는 걸까. 항상 그 자리에 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진짜 놀랍다. 피오나 스태퍼드가 소개하는 15개의 꽃 중에서 흔하고 익숙한 꽃도 많은데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엘더플라워, 폭스글러브, 피나무 꽃 같은 이름은 처음 들었다. 자주 보지 않았지만 엉겅퀴는 그 빛이 고왔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놀라갔을 때 본 기억이 있는 것 같다. 사진첩에는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꽃 옆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진짜 기념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꽃이 있었다.


꽃들은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늘 우리와 함께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선물로, 결혼식에서 신부를 돋보이게 하는 부케로, 죽은 자와 무덤까지 동행하는 화환으로, 애도자를 위로하는 추모의 꽃으로. 꽃들은 특별한 의식의 의미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의 경로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리고 중대한 사건이 기억과 앨범으로 자리 잡은 뒤에는 사라지기 위해 호출된다. (16쪽)


저자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다양한 공군 기지로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하면서 항상 정원을 가꿨다고 한다. 어디든 꽃과 함께 해서 꽃과 자연,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력으로 이런 책을 쓴 게 아닐까. 저자가 들려주는 꽃 이야기가 동화처럼, 옛날이야기처럼 재밌고 흥미롭다. 명화 속에서 만나는 그림도 다시 보니 색다르다. 고흐의 해바라기도 그랬다. 노란 해바라기가 슬퍼 보인다. 우리 주변 곳곳에 꽃들이 가득한 것 같았다.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로 꽃을 표현한 방법도 좋았다.


꽃이 피고 지는 게 당연한데 <덧없는 꽃의 삶>이란 제목이 너무 슬펐다. 꽃 대신, 다른 단어를 써도 그럴 것 같아서다. 뜨겁던 사랑, 악착같이 모은 돈, 인간의 삶도. 이제는 꽃을 좀 더 자세히 볼 것 같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란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피오나 스태퍼드의<덧없는 꽃의 삶>으로 만난 꽃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덧없는꽃의삶, #출판사클, #꽃책, #식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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