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무기가 될 때 - 평범했던 그들을 최고로 만든 단 하나의 습관
허성준 지음, 한진아 옮김 / 생각의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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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나 습관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인 명성을 얻거나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비범한 노하우가 있는지 작은 습관 하나까지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습관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에서, 얼마만큼 발현하느냐에 따라 결과도, 관점도 달라진다.

    

 

사실 이 책에는 긍정적인 색안경을 끼고 봐야 겨우 이해할까 싶은 습관들도 있다. 불필요한 고민을 줄이기 위해 다른 선택지를 아예 두지 않는 것은 굉장히 효율적이지만 인생을 사는 즐거움을 논하기엔 다소 밋밋해 보인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도가 넘는 독설을 퍼붓는 사례는 습관이 아닌 인성문제라고 짚고 싶을 정도다. 이 사람들이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그저 단벌신사, 악덕기업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습관 하나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들이 평범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성공에는 타고난 기질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기질을 꾸준한 습관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대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16개 국어를 통달한 롬브 커토나 중요한 데이터를 모조리 암기해버리는 워런 버핏을 예로 들기엔 사실 너무 넘사벽이긴 하지만 자신이 흥미를 가진 주제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어도 노력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다.

 

성공한 그들도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최악을 생각하거나 자신이 바보라고 자책하기도 하고 지인의 의견에서 찬스를 얻기도 하는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매일 매순간 아무렇게나 흘러갈 수 있는 습관을 직시하고 업무나 자기개발에 활용했다는 점이 그들을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게끔 뒷받침해주었다. 나를 뒷받침 해주는 습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주기 위한 지지대가 아니어도 내 삶이 조금 더 견고해질 수 있는 습관은 찾아보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습관은 자신에게 가장 편한 방법으로 물드는 것이다. 어쩌면 작은 행동하나에 자아가 형성되면서 생긴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묻어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신중히 돌아보자. 나의 습관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나 자신에게 해로운 점은 없는지, 어떻게 개선하면 더 좋을지.

 

내가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은 다시 나를 만든다. 그리고 좋은 습관은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다. 습관이 무기가 되어 나를 공격할지, 위기상황에서 방패가 되어 줄지는 지금의 고민에 달려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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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 읽고 쓰고 만나는 책방지기의 문장일기
구선아 지음, 임진아 그림 / 해의시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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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완벽의 범위, ‘때로가끔의 빈도는 개인의 성향과 능력,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등 수 많은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 ‘이만하면 완벽하지 뭐’, ‘이건 별로 안 중요하니까 미뤄도 돼라는 주관적인 결정들이 타인과 반드시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당당하게 자신만의 길을 갈 필요가 있다. 내가 갈 목적지도 아닌데 남들이 타는 기차에 덜컥 올라탈 이유는 없으니까.

    

 

<명함 대신 어떤 내가 되기>_39p

내겐 아직 이전 직장을 그만두며 기념으로 남겨둔 두 세 장의 명함이 있다. 그 곳에 미련이 남아서도, 그 때의 내가 너무 멋져서도 아니다. 어떤 목표를 위해 누군가와 미팅을 하고, 외부출장이나 회의에 참석하면서 명함을 내밀던 그 순간의 나를 잊고 싶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명함을 들고 있는 나는 표정도, 태도도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마치 특정 기관의 이름을 단 배우같이 명함과 함께라면 그 때가 아니면 쓰지 않을 단어와 주제들을 대사처럼 읊었다. 진짜 내 모습 속에 명함이 보여준 나도 분명 존재한다. 내가 남겨둔 명함은 어떻게 보면 지금은 잠자고 있는 나의 또 다른 자아다. 명함은 자신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며 삶의 과정 중 하나이다. 당장 사각형 속에 찍힌 로고와 글자 몇 개에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희생하기에는 이 세상에 내가 보고 느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명함 밖의 모습에 집중하는 당신의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길.

    

 

<불행과 복숭아>_152p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는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빠 친구 누구라고 했는데 죄송스럽게도 지금도 성함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저씨는 아빠가 갑작스레, 저리 급하게 가신 것은 아마 가족들에게 있을 앞으로의 불행까지 싹 다 가져간 것 일거라 하셨다. 지금 당장 내 눈 앞에서 아빠가 사라졌는데 앞으로 있을지 없을지 모를 불행 따위 가져갔다한들 나에겐 아무 의미 없는 위로였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어느 날이면 항상 저 말이 생각난다. ‘아빠 덕분에 내가 이렇게 행복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어쩌면 아빠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불행에 더 강한 면역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남은 날들이 모두 장밋빛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어른이다. 그래서 더더욱 행복과 불행이 한 끗 차이로 사다리를 타는 매순간 생각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누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 위안이니까. 작가는 갑작스러운 불행이 찾아올 것 같은 날 복숭아를 산다고 했다. 복숭아를 구할 수 없는 계절에도 작가의 불행을 중화시킬 수 있는 대체품은 24시 편의점에 존재한다. 되도록 가까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각자의 방패막이를 만들길. 그렇게만 된다면 어딜 가도 든든한 내 편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에세이 #때론대충살고가끔은완벽하게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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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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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와 많이 닮았다. 생김새도 사투리도, 앉아있을 때 몸을 좌우로 흔드는 버릇도. 같이 살기 훨씬 전부터 나는 할머니가 좋았고 함께 있을 수 없는 지금도 물론 사랑한다. 엄마가 가끔 할머니한테 톡 쏘는 말을 할 때 난 할머니를 보호하고 싶었고, 할머니가 장롱 속에 내 인형을 숨겨놓고 버렸다고 거짓말 했을 땐 다시는 같이 안 잘 거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방에 가만히 계시기만 해도 할머니가 우리 집 어딘가에 있다는 게 든든했고, 쓰레기 무단투기로 벌금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 할머니가 기죽어하던 모습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일제 강점기에 학교에 다녔던 이야기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땅 문서를 훔쳐 도망갔다는 큰삼촌 이야기를 무한 반복할 때, 할머니가 해 준 음식에 머리카락 보이는 날이 잦아질 때 늙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싶었다.

    

 

소설 속 할머니들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희한하게도 나의 할머니를 봐 온 시선과 감정선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처해진 상황만 다를 뿐 할머니는 다 똑같다는 듯이.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해 볼 수 있었던 <어제 꾼 꿈>, 할머니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 지은 표정이 생각났던 <흑설탕 캔디>, 늙어감에 대한 모든 잔상이 아른거렸던 <선베드>, 진정한 유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 <위대한 유산>, 딸 둘 엄마 둘의 여행이 인상 깊었던 <11월행>, 가까운 미래 노인이란 이름으로 허용되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 <아리아드네 정원>.

 

가끔 딱딱한 세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나이 듦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의 고집과 아집이 세대 간 거리를 넓히는 경우도 많지만 보이지 않게 삐거덕거리는 사회 곳곳에서 나이 듦이라는 무기로 윤활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후자일 수 있을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노인이라고 다 같은 모습이 아니다. 내가 어떤 모습의 노인이 되고 싶은지 상상해보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책 속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어딘가 모르게 외롭다. 가족이 있지만 외롭고, 가족이 곁에 없어서 외롭다. 무언가를 하고자하는 의지는 때때로 내 의사와 상관없이 표출되고, 그 의지는 또 때때로 몸이 따라주지 않아 좌절되기도 한다. 세상이 점점 자신들을 배제하는 느낌이 서글프고,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가기가 버거워 소통은 일방적으로 흘러갈 때가 많아진다. 이 와중에 유연하기가 쉽지 않다. 노인으로 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언니에게 할머니는 나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늦게 깨달았다. 나에게 쏟은 애정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었음을. 사실과 상관없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할머니의 모습이 답답해 한껏 열 내던 내 모습이 부질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나이가 되고 나니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가 안쓰럽고 애처롭다.

 

책 덕분에 오랜만에 실컷 할머니 생각에 젖어있었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다. 지금은 없는 번호라는 안내멘트가 나오는 할머니 방 전화번호를 괜히 눌러봤다가 마음이 안 좋아졌다.

할머니가 세상에 태어나고, 할아버지랑 결혼해줘서, 아빠를 낳았기 때문에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할머니가 잊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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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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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그 어떤 순간에도 언제나 혼자다.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촉수로 다른 생명체와 교감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나의 생각과 감정을 100%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때때로 내 마음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언제나 속 깊은 곳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과 감정의 응어리들이 조금씩은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적당한 기회에 이 잔여 감정을 소진하지 못한다면 우울이라는 웅덩이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그 웅덩이를 빠져나갈 수 없는 늪이라고 생각하느냐,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마른 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함께라는 부사에 달려있다. 당신이 지금 웅덩이 근처에 서성이고 있거나 발을 담그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 세 가지만 생각해보자.

첫째, 당신이 우울에 빠지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은 타인의 경험과 공통분모를 가지는가?

둘째, 스스로 고립되지 않도록 당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공유할 수 있는가?

셋째, 당신의 감정에 공감해 줄 수 있는 대상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혼자가 아닌 시간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나가야 한다. 저 세 가지 물음 중 한 가지라도 충족이 된다면 우리는 용기 내어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 그깟 웅덩이쯤 박차고 나올 수 있다. 혹시 너무 오래 지나버리면 나 스스로 더 깊이 파고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빨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아무리 큰 두려움도 맞서는 거야 / 아무리 힘든 문제도 털어놓는 거야 / 아무리 사소해도 인정하는 거야 / 침묵할수록 소란은 계속돼 / 외면하면 사라지지 않아 / 퍼져나가 삶을 송두리째 흔들지_54p

 

타인에게,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들을 보면 의외로 시작은 사소한 것인 경우가 많았다. 잠깐의 서운함, 그 변화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오해가 커지면서 점차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리 없다고 단정 짓고 갈등상황을 외면하며 점차 소통의 의지마저 꺾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하는 지름길이다. 글로, 말로 나누자. 우린 누구나 외롭고, 우울한 구석을 숨기며 살고 있다. 당신의 고백이 어쩌면 그들에게도 반가운 소통의 물꼬를 터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내면의 소란스러움, 그것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무언가를 터놓음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나도 누군가의 웅덩이를 들여다 봐줄 수 있길, 그 웅덩이에서 얼른 나올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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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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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티나가 1년 전 죽은 아들 대니를 보는 환영과 악몽에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 급격한 추위가 동반되고 죽지 않았어라는 섬뜩한 메시지를 전달받는 일이 점차 잦아진다. 마침내 이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대니가 현재 살아있고, 곤경에 처해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직접 알려주는 신호임을 확신하게 된 티나는 전직 군인이었던 엘리엇과 함께 아들을 찾아 나선다.

    

 

위험을 감지한 시점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은 인물과 비밀을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조력 관계를 맺게 되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모험을 시작하는 구성에 어느 하나 빈 공간이 없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장치 덕에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간다. 티나와 엘리엇이 대니를 찾아 나서는 여정, 그 추진력에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훼방을 놓는 악역도 장애물도 없다. 물론 티나와 엘리엣이 짧은 시간 견고하게 쌓아올린 사랑의 힘이 합동작전을 수월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티나의 모성애가 주는 무조건적인 확신과 엘리엇의 직감은 혹여나 느슨해질 흐름에 탄력을 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를 안전하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 아들과 그 신호를 놓치지 않은 엄마, 그 둘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도운 엘리엇의 판단력이 완벽하고 튼튼한 정삼각형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티나는 참을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지고 글자로, 음악으로 죽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 마다 밤과 그림자, 어둠의 눈’(249p)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혹시 진짜 살아서 보내는 대니의 울부짖음이 아닐까라는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더 이상 절망이 아닌 희망의 신호가 되었다. 아들의 간절한 외침이자 삶에 대한 열망을 본능적으로 느낀 엄마의 믿음은 때로 무모해보이기도 했다. 딘 쿤츠도 어쩌면 독자들이 이런 무모함을 느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모성애라는 것이 원래 가늠할 수 없이 거대하고, 계산적인 어떤 것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이니까.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에도 아들을 잃은 엄마가 등장한다. 전등이 제멋대로 켜지고 꺼지는 것을 사라진 아들 윌의 신호라고 여긴 엄마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윌의 메시지를 보기위해 알전구 아래 알파벳을 벽에 늘어놨던 엄마 조이스와 대니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지도 위에서 펜을 들고 기꺼이 최면에 걸린 엄마 티나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마치 미국판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시원시원한 문체와 전개가 가독성을 높인다. 특히 연구원 돔비의 증언에는 코로나 발원지일 가능성으로 회자되는 우한지역과 바이러스 연구라는 키워드가 등장하여 화제다. 무려 40년 전에 쓰여 진 소설임을 감안할 때 현재의 상황을 미리보기 한 것 같은 유사성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천연 항체 덕분에 바이러스에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무사히 엄마의 품으로 돌아간 대니. 우리는 천연 항체도 초능력도 가지지 못한 한없이 무력한 인간이지만 다시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 소설의 결말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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