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 읽고 쓰고 만나는 책방지기의 문장일기
구선아 지음, 임진아 그림 / 해의시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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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완벽의 범위, ‘때로가끔의 빈도는 개인의 성향과 능력,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등 수 많은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 ‘이만하면 완벽하지 뭐’, ‘이건 별로 안 중요하니까 미뤄도 돼라는 주관적인 결정들이 타인과 반드시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당당하게 자신만의 길을 갈 필요가 있다. 내가 갈 목적지도 아닌데 남들이 타는 기차에 덜컥 올라탈 이유는 없으니까.

    

 

<명함 대신 어떤 내가 되기>_39p

내겐 아직 이전 직장을 그만두며 기념으로 남겨둔 두 세 장의 명함이 있다. 그 곳에 미련이 남아서도, 그 때의 내가 너무 멋져서도 아니다. 어떤 목표를 위해 누군가와 미팅을 하고, 외부출장이나 회의에 참석하면서 명함을 내밀던 그 순간의 나를 잊고 싶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명함을 들고 있는 나는 표정도, 태도도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마치 특정 기관의 이름을 단 배우같이 명함과 함께라면 그 때가 아니면 쓰지 않을 단어와 주제들을 대사처럼 읊었다. 진짜 내 모습 속에 명함이 보여준 나도 분명 존재한다. 내가 남겨둔 명함은 어떻게 보면 지금은 잠자고 있는 나의 또 다른 자아다. 명함은 자신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며 삶의 과정 중 하나이다. 당장 사각형 속에 찍힌 로고와 글자 몇 개에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희생하기에는 이 세상에 내가 보고 느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명함 밖의 모습에 집중하는 당신의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길.

    

 

<불행과 복숭아>_152p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는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빠 친구 누구라고 했는데 죄송스럽게도 지금도 성함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저씨는 아빠가 갑작스레, 저리 급하게 가신 것은 아마 가족들에게 있을 앞으로의 불행까지 싹 다 가져간 것 일거라 하셨다. 지금 당장 내 눈 앞에서 아빠가 사라졌는데 앞으로 있을지 없을지 모를 불행 따위 가져갔다한들 나에겐 아무 의미 없는 위로였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어느 날이면 항상 저 말이 생각난다. ‘아빠 덕분에 내가 이렇게 행복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어쩌면 아빠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불행에 더 강한 면역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남은 날들이 모두 장밋빛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어른이다. 그래서 더더욱 행복과 불행이 한 끗 차이로 사다리를 타는 매순간 생각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누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 위안이니까. 작가는 갑작스러운 불행이 찾아올 것 같은 날 복숭아를 산다고 했다. 복숭아를 구할 수 없는 계절에도 작가의 불행을 중화시킬 수 있는 대체품은 24시 편의점에 존재한다. 되도록 가까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각자의 방패막이를 만들길. 그렇게만 된다면 어딜 가도 든든한 내 편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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