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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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작가를 사랑하고 열렬한 팬을 자처하기를 주저하진 않지만, 이번 작품엔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 특유의 아이러니와 언어유희는 더 긴 호흡의 장편 소설 가운데에서 툭툭 튀어나와야 그 매력이 더 극대화된다. 


장편 한 권을 채워서는 다소 지루하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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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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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작가를 사랑하고 열렬한 팬을 자처하기를 주저하진 않지만, 이번 작품엔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 특유의 아이러니와 언어유희는 더 긴 호흡의 장편 소설 가운데에서 툭툭 튀어나와야 그 매력이 더 극대화된다. 장편 한 권을 채워서는 다소 지루하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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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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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의 데뷔 단편집인 이 작품은 미국 문단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미니멀리즘과 앤 비티의 감수성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대부분 미국 교외의 중산층을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들은 극적인 사건보다는 사건이 지나간 후 남겨진 '잔상'과 '침묵', 그리고 기억의 왜곡을 다룬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중 상당수는 성인이 된 화자가 과거(주로 청소년기나 20대)의 특정 시점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화자들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과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교외의 삶 이면에 도사린 불안, 알코올 의존, 불륜, 그리고 소통의 부재를 주 소재로 한다. 인물들은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정서적으로는 표류하고 있다.



우리는 왜 지나간 빛을 복기하는가



어떤 소설은 사건을 기록하고, 어떤 소설은 사건이 남긴 파문을 기록한다. 『빛과 물질에 대한 이론』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책의 표지처럼, 이 소설집 안에서는 비명을 지르거나 가슴을 치는 통곡이 들리지 않는다. 대신 방금 무언가가 깨졌음을 직감한 사람이 깨진 조각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그 조용한 찰나의 정적만이 감돈다. 작가는 인간의 고독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은 채 물리학자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냉정하고도 섬세하게 관측한다.


우리는 왜 지나간 일을 복기하는가. 과거를 수정하기 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지나간 시간을 회고한다. 그들은 현재의 안정된 삶-혹은 그렇게 보이는 삶- 속에서, 과거의 어느 한 지점을 끊임없이 뒤돌아본다. 그래서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대체로 과거를 회상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판초콜릿을 똑똑 잘라내듯이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녹은 초콜릿을 부으면 끊기지 않고 이어지듯이 이어져있다. 결국 현재의 내 슬픔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그 좌표를 확인하고 싶다면, 과거를 더듬는 수밖에 없다. 내가 겪는 고통의 출처를 정확히 아는 것이 슬픔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보다는 이유를 아는 고통을 견디는 일이 조금 더 수월하다.



앤드류 포터의 문장은 아름답다. 다만 상처를 장식하거나 고통을 미화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감정을 서술하기보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의 풍경을 묘사한다. 텅 빈 수영장, 늦은 밤의 현관 불빛, 눈 덮인 도로 같은 이미지들은 인물들의 내면보다 더 많은 말을 건넨다.


우리는 흔히 문학이 우리를 위로해주기를 바란다.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해피엔딩을 약속해주기를. 그러나 『빛과 물질에 대한 이론』은 그런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삶은 원래 불완전하며,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었고, 잃어버린 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앤드루 포터의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나의 지난날을, 내가 놓쳐버린 손들을, 내가 외면했던 구멍들을 정직하게 응시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과거라는 실험실에서 실패한 실험들이다. 우리는 빛을 꿈꿨으나 물질에 갇혔고, 영원을 맹세했으나 찰나에 무너졌다. 그러나 그 실패의 기록들이 모여 비로소 한 인간의 인생이라는 이론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실패에 대한 기록이자, 실패함으로서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진실에 대한 헌사다.


그 진실은 우리를 구원하지도, 파멸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를 조금 더 깊은 사람으로, 타인의 침묵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 불확실한 빛과 무거운 물질의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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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소년 - 미시마 유키오 단편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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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섬세한 문장을 느낄 수 있는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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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 2021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죽이고 싶은 아이 (무선) 1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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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님 작가의 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를 읽었다.

청소년 소설이란 장르가 내가 청소년 시절에도 있었는가 떠올려보면, 그때에도 주인공이 학생인 소설이 제법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나 전동조 작가의 『묵향』, 그리고 임무성 작가의 『황제의 검』 같은 작품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정작 청소년 소설을 읽어야 할 시기에는 읽지 않고 뒤늦게 청소년 소설을 뒤적여봤다.

뒤늦게 청소년 소설이란 장르에 호기심을 갖게 된 건 최근에 읽은 기사 때문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5515106



백은별이라는 고등학생 작가가 최근 1억원을 기부하면서 최연소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었다는 기사였다. 중학생 때 데뷔작인 『시한부』를 썼다는 건 유명해서 알고 있었는데, 그 책으로 이 정도의 기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세를 많이 받았다는 게 신기했다. (천박하게도, 금전적인 이유로 호기심이 생긴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요즘 아이들이 책을 그렇게 안 읽는다는데, 요즘 아이들이 주소비자인 청소년 소설이 그렇게 많이 팔린다고?' 같은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우리가 흔히 아는 세계 명작, 현대 소설 이런 분야이고 사실 자신들의 관심사를 다룬 '청소년 소설'은 많이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짐작에서부터 청소년 소설을 조금 알아봤다. 추후에 백은별 작가의 책도 읽을 생각이지만, 우선은 지금 제일 핫한 청소년 소설 작가인 이꽃님 작가의 『죽이고 싶은 아이』부터 읽어보게 되었다.




      이꽃님 작가는 『죽이고 싶은 아이 1,2』로 스타덤에 오른 작가이다. 또한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등을 펴냈고,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통해서는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내가 없던 어느 밤에』를 발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여고생 '서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주연'이 서은을 살해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소설은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범죄 수사물의 틀을 가져온 이 작품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지는 듯하면서도 다시 멀어지게 만들어 내내 뒷장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자 결말이 어쩐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읽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는 다소 맥이 빠지는 결말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진짜 우리의 삶 역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테면,  『죽이고 싶은 아이』가 폭로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은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진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내 교차되는 다양한 시선들은 하나의 사건을 보고 말하고 있지만, 각각 처한 위치와 입장, 시각에 따라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작중 주인공인 주연도 그러한 해석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상을 통해 우리는 진실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불쾌하게 상기하게 된다. 아무리 억울함을 토로한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점 역시도. 


     다만 소설은 대체로 예방 접종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되겠다.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가 믿는 것이 정말로 믿을 만한 것이어서 믿는지, 아니면 단지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인지를 되돌아 보고 스스로를 점검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길 바라는 게 작가의 진심 아니었을까. 


     작년에 『죽이고 싶은 아이 2』가 발간되었던데 근시일 내에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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