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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평점 :
* 이 서평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로 꼽히는 줄리언 반스의 신작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읽었다.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국에 소개되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 제목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따라,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로 제목의 결을 맞추고 있다.
줄리언 반스는 초기작인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시작했던 '픽션,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형식을 다시 한 번 빌려와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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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의 첫 장을 펼친 독자는 예상치 못한 당혹감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흡사 뇌과학서나 심리학 개론서를 펼친 듯한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1장은 인간의 기억에 대한 깊이감 있는 고찰을 담고 있다.
불수의 자전적 기억(IAM: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 HSAM 등등의 전문 용어와 읽기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이 출몰한다. 이 장을 읽어나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기억에 대한 기억'에 압도당한 모습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한 철학자 친구가 나에게 지적한 대로 뇌는 자신이 처리하고 지나가는 모든 것을 일일이 우리에게 알려줄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압도당할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에 파묻혀, 우리는 바들바들 떨며 훌쩍거리는 동물이 되고 말 것이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36~37쪽.
줄리언 반스가 밝혔듯이,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설을 써온 40년이 넘는 여정을 함께해 준 독자들을 향한 '작별인사'다. 이를 드러내듯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애틋함과 섭섭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서야, 나는 1장의 의미를 겨우 헤아릴 수 있었다.
1장에는 줄리언 반스가 왜 이토록 아름답지만 쓸쓸한 작별 인사를 준비해야 했는지 그 이유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인내심을 갖고 이 난해한 첫 관문을 통과해야만 작가가 설계한 이야기의 본질에 닿을 수 있다. 1장의 의미는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의 전체적인 뼈대는 '스티븐'과 '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다. 대학 동기였던 세 사람은, 줄리언 반스를 통해서 친해졌고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졸업할 무렵, 헤어졌고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하게 되면서 소설은 본궤도에 오른다.
"너는 한 번도 없어?" 그가 물었다.
"한 번도 뭘?"
"돌이키려 한 적."
"있지, 한 두번. 마누라가 죽은 뒤에. 어쩌면 세 번."
"그래서?"
"늘 나쁜 생각이었어. 아니, 그건 진실이 아니군. 한 번은 좋은 생각이었고, 한 번은 그럴 뻔했고, 한 번은 나쁜 생각이었어."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114~115쪽.
노련한 이야기꾼인 줄리언 반스는 독자로 하여금 궁금하게 만든다. 과연 관계를 돌이키려는 시도가 '좋은 생각'이었을지, '그럴 뻔했을지', 아니면 '나쁜 생각'이었을지.
분명 두 연인은 이 중에 하나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다 읽고나면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이 뻔하디 뻔한 연애소설은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작가가 평생을 통해 길어 올린 삶의 진실을 건네는 고백에 가깝다. 특히 상실에 대한 다음 문장은 오래도록 곱씹게 된다.
모든 죽음은 2차 피해를 준다. 죽어가는 사람은 곧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슬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앞으로 긴 세월 동안 그 영향을 받게 된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94쪽.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역시 『나란 무엇인가』(21세기북스)에서 '상실의 2차 피해'를 '분인(分人)의 죽음'으로 설명한 바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앞에서만 가능했던 나의 분인의 삶도 끝난다.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고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 수 없다."
그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없는데 그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182쪽.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종종 인간관계에 지칠 때마다 되새기는 생각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아끼는 온도와 누군가가 나를 아끼는 온도는 다르다는 것. 비극은 거기서 시작한다고. 줄리언 반스는 그 사실을 아름답게 빚어 한 편 소설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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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기는 작품을 유작이라고 한다. 대체로 소설가들은 무엇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임을 공공연히 말하지 않는다. 단호하게 절필을 선언한 김승옥 작가가 예외적인 사례다.
'유작'을 대신하는 '작별 인사'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쓸쓸함을 품고 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읽는 내내, 소설이 작별인사가 될 수 있는가, 어떤 형식이 작별 인사에 어울릴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질문은 이 소설의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의문과 결합된다.
1장을 읽어나가면서, (당연하게도) '떠난 것'이 기억이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4장까지 읽어나가면서도 감을 잡기 어려웠다. 마침내 5장에 이르러서야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글을 발표한 지 44년이 지나니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하기 시작하고, 똑같은 낡은 비유와 밈으로 돌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좋아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심지어 (실제로는 아니기를 바라지만) 내 우스개마저 반복한다는 느낌, 또는 생생한 두려움도 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247쪽.
떠남은 대개 도착에 이른다. 물론 한 번도 항구를 떠난 적이 없던 저 프랑스의 시적 몽상가들을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역, 버스 터미널, 공항에서 우리는 출발과 도착 알림판을 본다. 우리는 가고, 우리는 도착하고, 우리는 귀환에 나서고, 다시 집에 다다른다. 우리는 그런 타성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그런 궤도는 더 크고 더 모순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우리 삶에서는 도착이 먼저 오고 떠남은 마지막에 온다. 도착으로 이어지지 않는 떠남이지만.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215쪽.
책의 원문 제목을 확인했을 때, 사소한 의문이 있었다. 원문 제목은 'Departure(s)'다. 그저 출발, 떠남 정도를 의미할 뿐이다. 위의 문장에도 나오는 '공항'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의문은 위 대목에 이르서야 해소되었다.
삶을 도착으로 시작해, 떠남으로 끝나는 과정으로 본 줄리언 반스는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이다.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던 시인처럼. 그러니 이 소설은 인생의 황혼기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가 될 것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소풍」
작중 '진'의 입을 통해 줄리언 반스는 스스로를 '어쩔 도리가 없는 X 같은 소설가(117쪽)'라고 자조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독자를 위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작별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