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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
한민 지음 / 저녁달 / 2024년 11월
평점 :
한국인의 종교성에 대해 탐구한 책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의 저자 한민은 스스로를 멸종위기 1급 토종 문화심리학자라고 소개한다. 현재에는 각종 유튜브 채널에 얼굴을 비추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삼프로TV>에 나온 그의 영상을 보고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호모 피델리스(Homo fidélis)'는 라틴어 'Homo'(인간)와 'fidélis'(믿음이 있는, 신앙심이 있는)가 결합된 말로, 숭배하는 인간, 즉 믿음을 가진 인간 또는 신을 믿는 인간을 뜻한다고 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있는 신앙 등에 대해 면밀하게 탐구한다. 세계 각국의 신화와 종교의 역사를 톺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이 고래로부터 가져온 신앙에 대해서 살핀다. 특히나 한국 고유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무속 신앙’을 중심에 놓고 현대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인 ‘기독교’, ‘불교’, 그 외의 신앙과 종교에 대해서 다룬다.
저자는 최근 20여년 간, 한국의 무속인 수가 약 20만 명에서 약 80만 명으로 급증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무속 신앙의 흥미로운 점을 밝힌다. 신의 세계에 들어가 무아경에 빠지는 북방 시베리아 샤머니즘 계열의 무속인들과 다르게 우리 한국의 무당들은 신을 불러 내리고, 신은 기꺼이 내려온다. 하늘의 신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을 어여삐 여겨 이 땅으로 내려왔다는 우리의 건국 신화만 보더라도 이러한 특징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신을 이 땅으로 모시는 과정이 곧 ‘굿’이다. 신이 오실 곳을 정화하고, 신에게 산해진미를 대접하고 흥을 돋우고 난 후에야 신에게 근심거리를 털어놓는다. 그러면 흥이 오른 신은 차마 인간의 청을 외면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게 우리 조상들의 믿음이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우리가 흔히 아는 장군신 등에게만 음식을 대접하는 게 아니라 잡귀들도 대접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훼방을 놓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책에 의하면, 일부 학자들은 북방 유목민족의 신인 ‘텡그리’가 제사장을 의미하던 ‘단군’의 어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제사장으로서의 ‘단군’은 일부 지역에서 무당을 일컫는 말인 ‘당골’로 변화했고, 이 당골에게 자주 찾아가던 사람들로 인하여 ‘단골’이라는 말이 오늘날의 ‘단골손님’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무속 신앙에서 모셔지는 신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존귀한 신분을 가지고 태어날 것.
고난과 고통을 겪을 것.
죽음 후에 재생할 것.
이로 인하여, 고려 최후의 충신 최영과 같은 인물이 자주 신으로 추앙되며, 중국의 관우 등도 신으로 모셔진다고 한다. 어쩌면 인천 지역에서 종종 모셔진다는 맥아더도 이러한 맥락에서 신으로 모셔지는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재밌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성웅 이순신 장군을 모신다는 무당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신으로 모셔지는 조건을 토대로 개신교가 어떻게 한국에서 이처럼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느냐를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백미였다고 할 만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지녔으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고난과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해 재생을 해냈다. 그러므로 예수를 신으로 받아들이는 건 한국인의 정서에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해석이다.
물론 단순히 그러한 이유에서 개신교가 한국에 널리 퍼진 것은 아니다.
개신교는 개화기 시절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포교되었다. 이는 당시 식민 지배와 함께 무너져 내린 구체제, 즉 유교와 왕조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로써 선택된 점이 분명히 작용한다. 식민 지배, 한국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한반도에 미국이라는 강력한 힘과 함께 개신교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한국의 극우 집단은 성조기를 둘러메고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극우 집단이 성조기를 드는 것을 얼추 이해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기를 드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하나의 설명을 제시한다. (영국의 처신으로 인하여 분명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가 있지만) 이스라엘의 유대 민족은 자신의 땅을 잃어버렸다가 오랜 시간 후에 그 땅을 되찾았다. 이 점이 개신교가 유입되던 식민지 시절 나라를 빼앗긴 한국인들에게 상당한 동질감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국기를 들고 나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지적하다시피 유대인들은 개신교와 달리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또한 무속 신앙은 한국사회의 주류 종교가 된 개신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달 밝은 밤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건강이나 먼 길을 떠난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은 친숙하다. 이는 기복신앙의 원형이다. 이러한 전통이 새로운 종교였던 개신교와 결합해 현대 한국 개신교의 특징 중 하나인 기복신앙적 성격을 낳은 것이다. 새벽 기도나 특별기도회 등은 전통적인 한국 민간 신앙의 형태와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사이비를 분별하는 방법은 특기해둘 만 하다. 새로운 종교를 가지게 될 경우, 저자가 예리하게 분석한 상기의 사항들을 명심하고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1.특정인의 주장이 유일한 진리라는 주장
2.교주 등 특정 개인을 신성시
3.교주 및 교단의 주장에 의문을 용납하지 않음
4.신도의 권리를 무시하고 착취
5. 신도의 사회적 적응을 저해
6. 신도의 지적·인격적 성장을 저해
7. 사회적 상식과 지식을 무시
8. 법질서 무시, 시스템 농단 등 사회에 저해되는 일을 함.
9. 이를 정당화하도록 신도들을 가스라이팅
10. 그러한 일을 하게끔 교단이 조직
11. 교단과 내부 인사들의 통제, 자정작용 없음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는 무속신앙에서부터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자리잡은 종교성, 신앙에 대해 밝힌 책이다. 친절하고 쉬운 어조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평소 종교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일독을 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