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 -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6가지 문화심리코드
김헌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6가지 문화심리코드

언어Language | 정보Information | 돈Money | 이익Interest | 시공간Time-Space | 선택Selection
요즘 재미있는 심리서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마음을 위로해 준다든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알려준다든지, 남녀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솔깃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 나의 기대는 단연 재미였다. 그런데 웬걸...부제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6가지 문화심리코드'에서 '문화심리'라는 것이 이렇게나 학문적인 것이었나? 책의 재미나 내용 여하를 떠나서 이 책과 나의 기대가 어긋났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심리를 기대했는데 심리보다 문화 연구에 치중한 심리라고 할까. 덧붙여서, 문화심리학의 탈을 쓴 경제행위와 소비연구서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이 동(動)하는 심리를 기대했는데 이 책은 마음보다 뇌쪽에 많이 가까운 과학에 치중한 심리라고 할까.
'...라고 할까 '라는 불명확한 표현을 쓴 것은 내가 심리학(學)을 공부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쪽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주류 경제학인지 뭔지에서 말하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너무나 뻔한 사실인데 이 책에서는 마치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는 듯이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사고하고 선택한다면서... 이걸 참 어려운 말로 알려준다.
"집단과 무리의 영역에서 영향을 받는 개인들의 판단과 선택의 문제는 주류 경제학이나 행태경제학, 신경제학에서 잘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단지 독단적인 개인의 효용이나 이익이 아니라 무리 속 생존의 문제기 때문이다." (278쪽)
역시 같은 얘긴데 다른 쪽에,
"따라서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개인 단독의 판단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찰나적이고 즉흥적인 판단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뇌 과학이나 신경경제학, 행태경제학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296쪽)
삐딱하게 보고자 하는 게 아니라 무슨무슨 학(學) 분야를 아무렇지 않게 열거하고 이 책은 그런 것들과 차별을 둔다고 하는데 글쎄...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이겠지만,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래도 "책"이라는 거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인간의 진짜(?) 욕망을 꿰뚫어본다는 여러 사례와 연구 결과를 재미나게 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 결론은 인간 마음은 아무도 몰라, 며누리도 몰라, 귀신도 몰라 정도 되시겠다.
이 책을 보면서 심리학자님들 참 많은 연구를 하고 계시구나... 참 다양한 사고와 감정을 지닌 사람이 있구나... 를 새삼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최근 출간된 『소유와의 이별』, 『굿바이 쇼핑』이나 『무소유』라는 책 제목들처럼 "난 소비 별로야. 없이 사는 거야"를 주장하고 예찬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소비라는 것을 인생에 있어서 없으면 큰일 나는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이 책과 내 기대(심리)가 어긋나는 점이 한 가지 더 추가가 되네.
소비는 낭비나 소모가 아니라 창조다. 어떤 것을 소비해야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의 창조는 소비를 통해서 이룩된다. 인간은 소비하며 창조하고, 창조하며 소비하는 존재다. 노자의 말대로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창조의 재료는 결국 소비를 통해 얻는다. (...)
소비하는 사람의 마음은 항상 움직인다. 사람의 마음은 문화다. 문화는 움직인다. (이 책 '머리말' 가운데)
이 책에서는 인간을 소비하는 존재로 보고 소비를 인간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지름신은 고독한 사람에게만 강림한다(203쪽)'라는 부분에서 여성의 쇼핑 행위는 자기실현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맞긴 한데 왠지 좀 서글프다. 이런 딱딱한, 과학(學)적인 책들이 재미없어지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너무 들이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불안정한 수입은 비합리적인 소비를 만든다(117쪽)'라는 부분에서 남성들 직장이 안정되어야(=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어야) 결혼을 하고 가족계획을 세우는데 그게 안 되니까 결혼도 미루고, 한다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두 사람이 결혼해서 최소 두 사람은 낳아야 현상 유지가 된다. 그런데 하나만 낳거나 그 이하이므로 인구의 현상 유지도 힘들다."(118쪽) 맞긴 한데 왠지 많이 서글프다.

글이 자꾸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사실 재미있는 연구들도 참 많았다. 내가 특히 수긍하고 키득거리면서 본 심리 현상은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다. 아니라고 하면서 하는 것들, 싫다고 하면서 하는 것들, 알면서 하는 것들, 물으면 딴 얘기하고 뒤에 가서 정작 즐기는 것들, 귀찮음을 핑계로 무의식 속에 쏙쏙 집어넣는 것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나도 나를 몰라"라고 하지만 사실 다 알면서 그런다. 알면서 모르는 척해주는 것도 미덕(?)인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오래전에 따분하게 본 책, 『대중문화의 겉과 속(강준만 저)』(전 3권)과 참 많이 닮았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이 중딩인지 고딩, 필독서인지 추천도서였던 것 같은데 나로서는 왜 이 책을 어린 학생들이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추천이유를 잘 살펴봐야겠다.
문화심리학을 공부하는 합리적인 학생, 경제행위와 소비에 관해 관심이 많은 마케팅부서 직원들, 잘 속아 넘어가서 소비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학문적인 대중이 보면 좋은 책이다. 독후감은 이렇게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하고 많은 심리연구와 학(學)의 발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에서는 외국인 연구 사례가 거의 99.8%에 가까워서 철학자 김용옥 님의 말씀이 너무 튀었주셨다. 원래도 튀는 분이긴 한 것 같지만 말이다.
"단순히 해외 심리학 실험 결과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국내 현실, 한국인의 문화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다만, 완결된 이론적 구조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제공에 큰 무게를 두려 한다." (이 책 '머리말'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