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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8년의 동행(Have a Little Faith)>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13년만의 감동실화
생각해 보니까 꽤 오래되었다. 미치 앨봄을 만난 것 말이다. 5년 전쯤, 편안한 직장에서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주어져서 철마다 캠퍼스를 누비면서 손에 잡히는 책들을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때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도 있었고, 나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나'도 있었다. 책은 그저 감동이었던 것 같고, 나는 나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얘기대로 한다면, 이런 나에게 하나님은 돌풍을 한 방, 두 방, 세 방,...빵! 빵! 먹여주신다. 뭣 좀 알고 살라는 계시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래서인지 지금 내가 참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이 드신 분들의 인생 이야기다. 그저 그런 시시한 이야기, 뻐기는 이야기, 잘난 이야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듣자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들도 재미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그런 시시한 이야기라는 건 아니고.

1995년 정도였을까... 루게릭이라는 병으로 죽어가는 모리 교수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책으로 낸 것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다. 당시 미치 앨봄은 죽음에 직면한 성숙한 모리 교수의 이야기에 깊이 동요되어서 인생의 성공 정의를 새롭게 쓰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배워가야 하는 부족한 사람들 아닌가. 이번에는 모리 교수를 보내고 난 몇 년 뒤, 유대교 랍비 앨버트 루이스가 이미 종교에 등을 돌린 미치 앨붐에게 추도사를 부탁하면서 8년간 그와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은 단순하게 말하면 랍비가 돌아가시기까지의 시간이고 좀 더 의미를 부여하면 미치 앨붐이 믿음을 되찾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에 미치는 "왜 나에게 추도사를 부탁하시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랍비는 위엄있고 완벽한 존재였으며 랍비 정도라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대리인 정도라고 여겼다.
여기서 잠깐,
'나는 누군가에게 추도사를 부탁(받을)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의 추도사를 써주기나 할지. 들려줄 내용이 있기나 할지. 사람들은 그런 거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잖아. 아니지... 추도사를 원하지만 그들이 들을 수는 없는 거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미치 앨봄도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곧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고까지 생각한 두려운 존재에 다가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도저히 랍비라고는 생각될 수 없을 것 같은 헨리 코빙턴이라는 사람에게도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그래서 이 책은 사실 종교 서적에 가깝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것을 갖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 준 두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쓰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동안 기독교 교회와 유대교 회당을 방문했고, 교외와 도심을 다녔으며, 사람들의 믿음을 분열시키는 '우리와 저들'이라는 사고방식도 경험했다. (이 책 '프롤로그' 가운데)
종교에 관해 내가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 뭐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봤던 몇몇 책에 따르면 잘난 종교인들이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경우를 본다. 모르긴 하지만, 그분들은 워낙 그 종교에 폭삭 빠져서 무모한지 어쩐지도 모르고 그냥 그러고 사는 것 같다. 분명히 종교 서적은 아닌데 한참 뭐라 뭐라, 예를 들면 끌어당김의 법칙을 기껏 설명해 놓고 마지막 에필로그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덕분입니다"라고 한다든지. 그럼 뭐라는 거야. 결론은 하나님을 믿으라는 얘기네. 안(못) 믿으면 안 되는 거야? 발전 가능성 없는 거야? 피식.
그 밖에도 발을 넓히기 위해서 특정 종교를 믿는 척하는 사람, 새벽마다 교회 다녀와서 출근하는 사람인데 못난 나만 보면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이런 말을 지껄였던(-죄송) 사람, 사귀는 사람이 교회를 다녀서 어찌어찌 교회를 다니게 됐는데 "교회 다니는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너를 위해서지."라고 말했던 사람, 나이가 꽉 찬 분인데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 아니면 만나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닫아건 사람... 등. 자신이 믿는 것과 믿는 바를 행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미치 앨봄 덕분에 만나게 된 랍비 앨버트 루이스라는 분은 하나님을 믿는 분이긴 하지만 많은 부분 그것에서 초월하신 것 같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에 들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느껴서(感) 내 마음이 둥둥둥 울렸다는 것(動)이다.
남의 허점을 보고 나는 그로부터 배울 점이 참 많아, 라고 하며 자기 인생의 교과서를 하나 둘 늘리지만 말고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할 때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격려 한 마디라도 건네줄 줄 아는 마음 따스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종교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일, 좀 생뚱맞지만 내가 아직 결혼 전이므로 아내와 여자의 차이점에 대한 것, 어쩐지 조금 식상해지기도 한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과 자세, ...물론 종교에 대한 것까지. 이런저런 깨달음과 감동을 준 이 책이 참 좋았다. 예약 판매도 있었고 해서 실제보다 홍보가 더 화려한 책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아예 없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고마운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