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괴물!?

텔레비전에 대하여 ㅣ 동문선 현대신서 9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현택수 옮김 / 동문선 / 1998년 11월

텔레비전은 무엇인가? 또 왜 존재하는가? 텔레비전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가? 마지막 물음에는 'Yes'라고 답하는 사람이 상당수일 것이다. 하지만 앞의 두 물음에는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보이는 것만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져있기 때문에 사실 우린 텔레비전이 어떤 것인지 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분명하면서도 애매한 (인류문명이 발명해낸)이 엄청난 괴물의 내막과 저널리즘의 '장(Champ)'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도와주고 있는 책이 바로 천재사회학자 부르디외의 본저서이다.

경제원리와 정치권력의 검은 베일에 둘러싸여 언론매체(텔레비전을 포함한 신문, 잡지등..)의 본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체 권력형 비리를 묵살하고 진실을 외면하며 민주주의사회의 대중들이 행사할 수 있는 참여권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것에 대해 부르디외는 매우 걱정스러워하고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특히 텔레비전은 시청자와 출연자의 판단력과 발언, 심지어는 사상까지도 동시에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권'을 가진 엄청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란 개념은 고스란히 '국민'으로 환언되는 것이고 출연자 역시 일반국민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상기해볼 때, 한마디로 텔레비전이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난 거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부르디외는 경제력과 정치권력에 편승하여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기자들과 텔레비전 방영 뉴스의 안타까운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조작되고 편집된 뉴스의 정해진 멘트와 기자들의(무언가 구린내나는)조금은 가식적이고 허전한 기사들이 국민의 눈과 귀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텔레비전이란 것은 우리 생활의 편리함과 건전한 여가생활을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좋지 않은 면이 훨씬 많음은 인정해야만 한다. 물론 그 좋지않은 면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영원히 부정적인 모습으로 남겠지만 시청자와 출연자 및 관련업계종사자들이 모두(아니면 지식인들의 각성과 적극적인 의사표명으로) 텔레비전의 그 황당한 단점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책을 모색해 나간다면 언제나 '바보상자'로 매도되는 저 문명의'괴물'을 문명의'작품'하나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불꽃... 사랑의 불꽃...

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2차세계대전 후의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대치구도에서 소위 '우익'의 권력궤도에 들어서면서 민족적 의지와는 상관없이 추진되어 버린 대한민국의 남북분단... 일제해방의 감동이 체 가시기도 전에 정치라는 것의 불가피한 악령인 전쟁의 소용돌이가 다시 한번 한반도를 휘감은 후 대한민국은 철저한 자본주의시대로 접어들게된다.

그와 더불어 '현대판 봉건시대'라 할만한 빈익빈부익부의 법칙에 매몰되어 가는 가지지못한 자들의 쓰라린 고통과 절규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한목숨바쳐 불합리한 현실의 왜곡을 파헤치려 했던 청년노동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 '전태일'이다!

이 책은 22세의 '꽃다운'나이에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자본가들의 악행과 위선의 베일을 벗기려했던 한 노동자의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한평생을 조명하고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또 무엇이 투쟁이고 사랑인지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파고드는 조영래씨의 역작이다.

'감동의 물결'이란 상투적인 감탄사가 있다.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음은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이다. 비록 전태일에겐 끊임없는 굶주림과 고통과 고뇌의 나날들이었음을 상기해볼 땐 그 감동조차도 사치스러운 것이겠지만 그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우리 일반인들은(그는 결코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도저히 눈물샘을 계속 막은체 읽어나갈 수 없는 깊은 '감동의물결'이 이 책속에서 뚜렷한 하나의 줄기가 되어 흐르고 있기때문에 독자들에게 약간의 사치스러움이 필요함은 불가피한 것이라 사료된다.

중학교 과정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전태일의 '사상'과 '수기'들은 진정 '상아탑'속에서 휘황찬란한 어휘들로 몇백 페이지를 육박하는 절대진리를 외쳐대는 철학대가들의 그것에 뒤지지않는 '현실적인 철학'(철학의 최고경지가 바로 '현실과의 조화' 아니겠는가!) 바로 그것이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겪고 분노하고 갈등하면서 자문했던 그 모든 것들을 기록해놓은 그 '낙서'들을 제3삼자인 우리가 볼 땐 그 역시도 '노동철학자'임에 틀림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전태일의 글들은 구구절절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과 바램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의 죽음은 분명 이후의 노동자들에게 많은것을 깨우치게 했고 지금까지도 그의 정신과 영혼은 수많은 노동조합단체들의 외침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으며(일부 귀족노조나 이해관계에만 급급한 사이비노조는 제외하고), 우리 인간들에겐 사랑과 정의의 실천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예수'였다고도 감히 언급할 수 있을 법하다.

만약 맑스(Karl marx)가 살아있었다면, 전태일과 그가 만날 수 있었다면(너무나 엉뚱한 가상이긴 하지만) 아마 맑스는 그를 무척이나 대견해 했을 것이다. 맑스의 두뇌와 전태일의 '행동의 지성'이 하나되어 지금까지도 억압받고 소외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그늘에 한줄기 빛이 되길 소망해본다. 그만큼 전태일의 업적은 영원히 기릴만한 역사적인 것이다!!

인간생존본능의 완성을 보여주는 소설!!

로빈슨 크루소 - 드림북스 53
다니엘 디포우 지음 / 홍신문화사 / 1999년 11월

타고난 '역마살(?)'로인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젊은 혈기에 먼바다로 항해를 떠난 로빈슨크루소라는 한 청년이 불의의 사고로 26년여동안을 무인도에서 혼자 지내게되는 기괴한 운명을 다룬 이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생존에 대한 끈질긴 본능과 삶에 대한 철학이 디포의 조금은 주관적인 필설로 전개되어나가는 장편소설이다.

솔직히 이소설을 읽다보면 중반까지는 매우 지루한것이 사실인데, 그 지루함의 가장 큰 원인은 번역이 너무 난해하다는데 있겠다. 전체적인 번역이 의역이 아닌 직역위주로 되어있어 문장이나 단어의 배열이 어색한 부분이 눈에 많이 띄였으며 지나치게(물론 단어의 뜻을 정확히 하기위한 방편이긴 하지만) 과대포장된 한자어들은 읽는내내 소설자체를 경직되게 느끼게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나마 번역하기에 무난한 언어인 영문소설인데도 번역의 수준이 이정도임에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역시 그러한 번역의 난해함속에서도 세계적인 소설다운 카리스마는 여전히 빛을 발하여서 책을 덮고나서 밀려오는 상념들은 겉잡을 수 없으리만큼 많은것을 우리에게 안겨 줄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자신이 무인도에 갇혀버린다면?' 이라는 진부한 가정부터 '삶은 무엇이고 우린 무엇을 이루며 살아가는가?' 와 같은 철학적 성찰도 떠올릴 수 있을것이고, '인간의 본능은 과연 어떤것이며 인간자체는 또 어떤것인가?' 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자체에 의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여지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소설이 바로 소설 <로빈슨 크루소>이다.

당당한 삶을 위한 또하나의 쟁점과 방법을 제시하는책!

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 니체의 잠언과 해설
박찬국 지음 / 동녘 / 2001년 6월

니체의 저 유명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받았던 충격과 어리둥절함에서 벗어나지못한체 이전에 구입했던 이 책을 다시금 펼쳐보게된것은 이 책속에 녹아있는 그 잔인한 진리들과 세상을 꿰뚫어보는 니체의 방대한 시야를 다시한번 배워보고자함이었다. 마치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는듯한 철학이란 학문자체의 일반적오해를 나 혼자서라도 벗어던져보려고 발버둥치듯이말이다.

니체의 유명한 저서들 가운데 눈여겨볼만한(물론 그의 모든 언급은 수식어하나까지도 가치가있겠지만)잠언들을 주제별로 정리하여 글쓴이(박찬국씨)가 일반적으로 난해할 수 밖에 없는 그것들을 다시금 풀어쓰며 독자들의 복잡한(?)의식을 환기시켜주고있어 니체철학의 핵심과 그 본질을 이해하기위한 입문서로는 매우 유용한 책이 되지않을까하는 생각이든다.

이 책속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그 모든 불문율들에 독자적이고 적나라한 의문을 제시하는 니체의 잠언들을 대할때마다 한 인간으로서 그의 물음들앞에서만큼은 당황해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아니라고 뿌리치려해도 벗어날 수 없는 또 다른 '절대진리'가 바로 니체의 사상이기때문이다.

철학은 인간들이 삶을 쉽게, 또는 가볍게 만들 수 없게끔 조언하고 반추해주는 고마운 가르침이다. 겉으로 드러내지않고 각자의 속내에 들끓는 분노와 질투, 이기심, 격정과 고통... 그리고 겉으로 드러내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격상시키는 배려와 동정, 도덕과 사랑의 허상적베일... 우린 여전히 우리 스스로 만든 틀속에 우리를 가둔체 살아가고있다. 니체는 전체가 아닌 인간개인의 자체적인 깨달음과 고양을 지향하고 감상적이고 가식적인 인간의 '선의의 가면'을 혐오한다.

그는 '초인'을 가르친다. 그 완벽한 인간의 전형을 제시한 니체사상을 탐닉하는것은 이 책을 구입하실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려있는 하나의 특권이다!

그립다... 그 꿈같았던 설레임...

첫사랑 ㅣ 혜원 월드베스트 12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 혜원출판사 / 1997년 11월

첫사랑... 청춘의 혈기와 호기심을 벗삼아 보석같은 추억으로 누구의 가슴속에서나 숨쉬고있을 그 설레이는 생명력... 당신들의 첫사랑은 어떠했는가... 뿌쉬낀은 말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걸..' 사랑할 수 밖에 없기때문에 사랑하는것... 이것이 바로 첫사랑이 아닐까?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 언급한 '첫사랑'은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라는 한 40대중년의 첫사랑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된다.

으레 첫사랑이란것이 그렇듯 블라디미르 역시 지나이다라는 21세 처녀에게 '첫눈에'반하게된다. 하지만 당시 그의 나이는 16세... 이제 막 가정교사의 손길에서 벗어난 풋내기였던것이다. 나이라는 현실의 장벽앞에서 그는 한없이 고뇌하고, 좌절하며 그녀의 곁을 맴돌게되는데...

같은 남자로서 참을 수 없었던부분은 지나이다라는 여자는 참으로 활달한 거만함으로 남자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즉, 가지고노는) 좋지못한 버릇같은것이 있었는데 블라디미르역시 그러한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못한체 행복한 발버둥을 쳤다.. 다가올 그 비참한 사건들에 대해선 한치앞도 내다보지못한체...

한 인간이 가장 순수할 때, 가장 혈기왕성할 때, 가장 감성적일 때 첫사랑은 완성되기마련이다. 그래서 블라디미르 자신의 아버지와 지나이다의 관계(그의 연적은 다름아닌 자신의 아버지였다!)를 알게되면서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그 거대한 충격의 파장이 블라디미르에겐 평생 잊지못할 상처와 추억을 선물한것이다. 역시 첫사랑이란것은 이루어질 수도 없고, 잊혀질 수도 없는 운명임엔 틀림없나보다...

그의 아버지는 45세라는 나이에 요절하게되는데 그는 죽으며 아들에게 이런말을 남긴다.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하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하라...'라고.. 결국 블라디미르 자신의 아버지도 자기가 철저하게 농락당했던 지난시간들처럼 지나이다의 그 '독'에 질식당한것이던가! 셰익스피어가 말했었다. '약한자여, 그대이름은여자..' 하지만 첫사랑의 달콤함앞에서 약한자는 '남자'라는 이름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나면 '첫사랑'이란것도 마냥 설레이고 마냥 좋을 수만도 없다는 이면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지나이다.. 그녀 역시 해산중에 사망한다!) 그래도 감미로운것으로부터 비극을 이끌어낸 투르게네프는 그것의 본질에대한 (소설의내용과 비교해볼때)역설적인 '첫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느끼는 모든 것에는 무엇인지 모를 새롭고 말할 수 없이 감미로운 여자에 대한 예감 - 알 듯 모를 듯하면서도 수줍은 예감이 숨어 있었다'

'오, 첫눈에 불타오르던 애정이여, 감동한 영혼의 부드러운 음향이여, 그 아름다움과 그윽함이여, 첫사랑의 감격에 감미로운 기쁨이여 - 그것들은 어디 있는가. 아, 지금은 어디있는가..'

아! 나의 설레임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