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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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으로 있어줘』는, 여섯 가지의 독립적인 사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일부는 전작을 알아야만 후작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동료 교사인 이와타, 그의 후배 시키, 대학 친구 미사키 등 등장인물이나 배경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맥락은 치매에 걸려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이성적 추론과 판단력을 잃지 않는 할아버지를 통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손녀 가에데가 들려주며 함께 추리해가는 내용이다. 결정적으로 형사나 경찰이 등장하는 부분은 없지만, 프랭크 리처드 스톡턴이 구사한 서술 트릭 미스터리이자 리들 스토리 <미녀일까, 호랑이일까?>처럼 사건 발생 뒤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듯하다.


가에데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루이소체 치매(DLB)'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를 병문안한다. 그녀는 유년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주변 사물을 보며 가설을 세우고 스토리를 짓고 한편의 동화를 만드는 것을 놀이처럼 즐겼다. 1970년 전후, 할아버지는 수많은 미스터리 작가와 평론가를 배출한 대학 동아리 '와세다 미스터리 클럽'의 주요 멤버였다. 지금의 할아버지는 환시를 볼 때를 제외하곤 - 그 환시조차 논리성을 갖춘 환시로 나타나곤 해 - 여전히 변함없는 지성을 발휘한다. 손녀의 이야기를 먼저 경청하고 모순점을 하나씩 짚어내고 꿰맞춘 뒤 변주하는 전형적인 안락의자형 탐정의 모습, 오류가 전혀 없는 완벽한 스토리로 말이다.


제1장 진홍색 뇌세포

가에데를 해외 고전 미스터리 소설의 팬으로 만든 - 할아버지가 속했던 대학 동아리 출신의 미스터리 문예 평론가 - '세토가와 다케시'의 유작을 중고 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래된 헌책이지만 독자의 애정이 곳곳에 묻어난 점과 그 속에서 발견된 작가의 부고 기사들이 의아함을 준다. 그토록 애정하면서도 책을 왜 팔아버린 걸까?


제2장 요리주점의 ‘밀실’

도쿄 도내 요리주점 '하루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장소는 남자 화장실이고 죽은 남성의 등엔 칼이 꽂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화장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바닥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현장이 발각됐다. 범인은 사장이 쓴 표음문자의 오류, '메뉴의 수수께끼'에 있다.


제3장 수영장의 ‘인간 소실’

마치 쇼와 시대 미녀를 연상케하는 초등학교 여선생이 서른 명의 반 아이들 앞에서 홀연 사라졌다. 그것도 학교 내 수영장에서. 힌트는 마지막 20분간 주어진 자유시간과 1층에 위치한 교장실, 그리고 최상의 벼슬이나 직위가 남성이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제4장 33인이 있다!

공립 초등학교 교사인 가에데의 교실에는, 분명 32명이 있었는데 갑자기 33명이 되었다. 전쟁 때 학교 근처 방공호에서 죽은 여자아이의 혼령일까? 졸업을 앞둔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선생님의 슬픈 환시일까? 그도 아니라면, 등교를 거부하던 여학생의 등장일까?


제5장 환상의 여인

이와타가 매일 운동하던 산책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그가 범인으로 몰렸다. 이를 전부 목격한 여인은 구급차도 부르지 않고 곧바로 도주했다. 더 이상한 건, 매번 산책로에서 운동하며 인사하던 그 여인을 모두 모른다고 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방불케 하는 사건이다. 목격자가 손수건으로 감싼 음료에 해답이 있다.


종장 스토커의 수수께끼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상대로부터 가에데는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그 행동이 점차 대범해졌고 이내 생명의 위협까지 도달했다. 가에데에게 전화를 건 그는 대체 누구인가? 그녀의 연락처를 공개한 곳은, 할아버지 집안 벽에 붙은 비상연락처.. 간병인들과 케어 매니저를 제외한 언어 청각사와 물리치료사만이 남성이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명탐정으로있어줘 #고니시마사테루 #베가북스 #일본소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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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녀
사카모토 아유무 지음, 이다인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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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하시 란, 2014년 교제 기간 4개월, 후타의 블로그 구독자, 2017년(사망?)

도오야마 미사키, 2015년 교제 기간 5개월, 펫 페어에서 만남, 2018년(사망)

하야시 에미리, 2016년 교제 기간 3개월, 모리의 집에서 만남, 2017년(행방불명)

p97



"내 생각에는 후타가 만났던 사람들이 차례로 사라진 게 아니야."

"사라질 예정이었던 사람들이 너와 만난 거야."

p101






어린 시절부터 여자에게 일종의 공포감을 갖고 있던 '마키시마 후타'에겐 의외로 찬란했던 연애 시절이 있었다. 연애라곤 잼병이었던 그가 세 명의 여인들을 연이어 사귄 것이다. 연애 기간은 각각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헤어지면 곧바로 다음 여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그중 한 연인이 '상중 엽서'라는 갑작스러운 부고를 전한다. 그리고 곧이어 발견된 또다른 연인의 블로그 메인 화면에는 죽음이 예약 설정돼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한 사람은? 그 연인 역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들과의 인연이 소중한 추억이었기에, 후타는 그들의 지인과 가족, 이웃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이나 하듯 후타에게 더없이 냉정하게 굴었고, 과거 연인들이 거주했던 집과 졸업한 학교에서는 그녀들의 이름이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인 걸까? 8년 동안 월급쟁이로 일했던 회사를 그만 두고 펫 시터를 시작한 지도 6년째 접어든 별볼일없는 자영업자 팻시터인 후타에게 대체 무슨 허세가 필요하다고? 세 사람의 공통점은 후타와 사겼다는 것, 도쿄에서 만났다는 것, 나이가 서른 전후라는 것. 그리고 최근 2년 사이에 연달아 죽거나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혹여 후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수작은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후타에게 자신도 모르는 살인 본능을 가진 범죄자 DNA가 있는 걸까? 그녀들의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걸까?



이에 후타는, 유기견 보호활동을 하는 여자사람친구 '난바라 유키에'와 에이오대학병원에서 시스템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동창생 '히로타 유이치로'와 함께 베일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나선다. 16년 전, 갓 스물이었던 후타는 에이오대학병원에 정자를 기증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리고 에미리의 친구였던 '모리'가 유이치로가 다니는 에이오대학병원의 직원이었으며, 세 명의 연인이 모두 이 병원의 환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제했을 당시 그녀들은 모두 다 생기있고 건강했다. 대체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어째서 후타와 헤어진 직후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던 세 사람은, 과학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그 진실의 뒷편에는 과학이 가져다준 절반의 기회와 가치에 환호했지만 절반의 부작용이라는 막대한 리스크로 죽음에 몰리는 현실을 비춘다. 실제로 전 세계가 리스크는 고려하지 않고 경쟁하고 있는 iPS)를 활용한 재생의학의 상용화와, 암치료에 효과적인 유전자 자체를 편집하는 게놈 편집 기술이라는 '크리스퍼 캐스 9'를 소설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의학의 발달이 가져온 양날의 검은, 의도치않게 기습 눈물을 쏟게 만든다. 병상에서 맞이한 네 번째 인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살짝 언급하자면, 후타의 정자 기증이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던 셈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사카모토아유무, #환상의그녀, #이다인, #해피북스투유,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일본소설, #소설추천, #미스터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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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독서의 기적 -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는 아이로 자라는
김종순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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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 경력의 독서논술샘이 알려주는 아이의 공부저력을 길러주는 결정적 독서법

아이가 책을 멀리하지 않게 하려면 아이의 독서 수준이 어느 단계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1장에서 안내한 <문해력 알아보는 읽기 능력 단계>를 적용해서 아이의 독서 수준부터 진단하자. 단계가 낮더라도 아이를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를 관찰하면서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피드백을 해주면서 안계별로 안내된 책을 읽혀야 한다. p126

《하루 1%》(이민규 글, 끌리는책)의 저자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규정하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그와 일치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므로 넓게 규정해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중략… 성장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생각 대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게 해야 한다. …중략… 성장하는 동안 모든 아이는 무한대다. p145

아이들이 커갈수록 책읽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세상 읽기' 능력이다.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뉴스를 접하게 해주려고 '1분 말하기'를 활용했다. 1주일 동안 발생한 사건 중 하나를 선택해 육하원칙에 맞춰서 1분 동안 발표하는 활동이다.…중략…가능하다면 어린이 종이 신문을 구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p257-260

먼저 '하브루타'는 짝을 이뤄 질문하고 대화하며 생각을 나누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대화법이자 공부법을 이르는 말로, '하브루타 독서 수업'은 책을 읽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한 뒤 글로 정리하는 것을 뜻한다. 하브루타 질문 놀이는 모든 곳에서 매순간 이루어지며, 질문의 주체가 교사가 아닌 아이들이란 점에 있어 새로운 사고전환을 가져다준다. 아이와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상의 대화, 가족 간의 소통을 습관화하는 것이 하브루타의 첫걸음이다. 정해진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생각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질문한다. 하브루타 독서 수업의 세 가지 목표는 비판 능력, 가족과의 소통, 독해력과 글쓰기의 힘을 꼽는다.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닌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변화시키고 배움을 성장시키는 공부법이다.

아이는 한창 배우고 성장하는 단계인만큼 책을 읽다가도 모르는 낱말이 자주 발견된다. 문장에서 낱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준 뒤 짧은 글짓기 놀이를 통해 어휘력을 향상시켜 뇌에 각인시킨다. 주로 곁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낱말을 알아가지만 아이 스스로 국어사전에서 색인을 보고 낱말을 찾아 알아가는 것이 좋다. 아이의 문해력 수준이 궁금하다면 문해력 측정 무료 검사 사이트(한글 또박또박, 웰리미 한글 진단 검사)를 통해 확인해 보는 것도 좋다. 편독을 한다면, 균형 잡힌 사고를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3대 1 비율(통상적으로 문학 vs. 지식정보)로 이끌어 준다. 학년별 권장도서보다는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을 읽도록 한다.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면 학년과 상관없이 초등 3학년 수준의 동화책 한 쪽을 줄줄 읽을 때까지 반복해 읽으면서 모르는 어휘를 익히도록 한다. 문해력이 낮으면 사고의 흐름이 막혀서 어떤 공부든 쉽게 포기하기 때문이다. 유난히 읽는 속도가 느리다면, 서너 단어 이상씩 의미 단위로 끊어 읽기를 권장한다. 익숙해지면 길게 끊어 읽는다. 독후활동은 책의 줄거리를 글로 정리하고 내용을 물어 사실 질문을 확인하도록 한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생각을 끌어내는 질문을 유도한다(중급단계). 독서와 글쓰기는 바늘가 실처럼 함께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5분 낭독법(책읽기를 녹음한 것을 토대로)으로 문해력을 개선하고 글도 정교화한다.

메타인지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판단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교육방송 EBS에서, 성적 차이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메타인지를 높이려면 인지적 전략을 배우고(어떻게 하면 기억할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시험, 요약, 토론, 서평 쓰기), 인지 과정을 공부(심리학, 뇌과학, 경제학 등 전문 분야)해야 한다. 하브루타 질문법은, 책 내용에서 답을 찾는 '사실 질문',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더 알고 싶은 질문이나 핵심어를 찾아 사고를 확장하는 '생각 질문', 책의 내용을 내 상황에 적용해 변화를 추구하는 질문을 던지는 '적용 질문'으로 나뉜다.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려면 시간의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하며 《플래너 쓰기》를 제안한다. 1단계는 '오늘 플래너'로, 자신이 하루 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파악한다. 1시간 단위로 그날 한 일을 모두 적게 한 뒤 유용하게 쓴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 총학습한 시간과 그중 주도적으로 학습한 시간을 분류한다. 2단계는 '내일 플래너'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나 전날 밤에 스스로 계획을 세운다. 내일 할 일을 1시간 단위로 쪼개서 적고 지키지 못한 일에는 빨간 펜으로 표시한다. '자유 시간'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쓴다.

하브루타 독서 실전에서 소개된 <존 아저씨의 꿈의 목록>에서, 존 고다드 아저씨는 127가지의 꿈 목록을 적었다고 한다. 꿈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인데 나를 포한한 어른들은 직업에 대입시켜 아이의 꿈을 좌절시키곤 한다. 어찌나 뜨끔하던지. 꿈은 꿀 수 있을 때 꾸는 것이 좋고, 실천하고 성취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라. 문제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태다! <지리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도 무척 유익했다. 여기서 역사 공부는 지리 공부와 함께 하라고 권한다. 우리 아이의 경우, 다른 책읽기는 수월한데 유독 사회와 역사를 꺼려하는터라 고민하던 중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회과부도>를 받으면 제일 먼저 '세계지도 그리기'부터 시작해 5대양 6대주, 방위표를 그리게 해야겠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녀의 도서 문제를 진단해 보고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하브루타 독서법의 실천 가이드를 통해 구체적인 실례를 제시한다. 아이와 실생활에 접목시키고 싶은 내용이 구체적인 내용이 많아서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줄을 그어가며 읽고 사진을 찍어 저장해 두었다. 다행히 올해 5학년이 된 우리 아이는 글씨를 모르던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현재까지도 1일 1독을 실천하고 있으며 간단히 독서카드라는 글쓰기로 정리하고 있다. 매일 저녁에 산책을 나설 때마다 그날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등을 즐겁게 얘기해 주고 있어 우리 아이도 이미 하브루타를 실천하고 있었음에 흐뭇해진다.

#하브루타독서의기적 #동양북스 #독서법 #김종순 #메타인지 #독서논술 #공부저력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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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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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사건과 맞물려 애정결핍에 시달린 또다른 아이를 유괴해야만 하는 엄마의 심정은 얼마나 절실할까요. 보이지 않는 내면의 고통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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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소녀
세라 페카넨.그리어 헨드릭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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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소녀』는, 누구보다 돈이 필요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시카가 한 대학 심리학 교수의 설문조사에 참여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소설은 제시카와 실즈 박사의 시점을 서로 번갈아 교차시킨다. 실즈 박사의 진술은 제시카에게 구두 형식으로 전하는 편지에 가깝고, 제시카의 시점은 일인칭 주관적 서술에 해당한다. 제시카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가장 깊은 고민을 실즈 박사에게 털어놓은 대가로 고액의 돈을 지불받는다. 하지만 실즈 박사는 제시카의 비밀을 미끼로 그녀를 점차 위협하고 막다른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이 시험에 통과하면 그녀는 살아 남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제시카는 물론 그녀의 가족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실즈 박사의 치밀하고도 지능적인 두뇌는 제시카보다 항상 한 발 앞서있다. 어떻게 해야 제시카는 박사의 약점을 잡고 실권을 쥘 수 있을까? 11월 16일부터 성탄절인 12월 25일까지 40일간 벌어지는 이 심리 게임에, 독자들도 흠뻑 빠져들 것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심리 스릴러 중 최고봉이자, 가장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연구에 더 깊이 참여해보시겠습니까? 보상이 훨씬 더 커질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당신에게 요구하는 바도 훨씬 더 많아질 겁니다.] -p79

그 별 볼 일 없는 여자는 바로 나처럼 실즈 박사의 연구에 참여했다.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여자는 죽었다. -p362


스물 여덟 살의 '제시카'는 고향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으로 수년 전 집을 떠나 뉴욕에서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여동생 베키에게 특히나 헌신적이다. 학교 댄스파티를 준비하는 뉴욕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십대와 화려한 자선행사에 나가는 그들의 엄마가 주요 고객층이다. 여느 때처럼 메이크업을 하던 중 뉴욕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실즈 박사'가 주관하는 '윤리 및 도덕성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라는 두 번의 설문조사에 참여하면 500달러가 지급된다는 소식을 접한다. 항상 돈에 쪼들려 왔던 제시카는 경제적 도움을 받을거란 희망에 고객의 이름을 자신 것인냥 둘러대고 52번 피험자로 설문조사에 응한다.


설문조사와 관련해서는, 다른 사람과 해당 연구 내용을 발설하는 것을 금지하는 비밀 유지 원칙을 둔다. 본능적으로 제일 처음 떠오른 답을 솔직하게 쓰고, 완벽하게 작성하기 전까지는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없다. 해당 문제에 답을 입력하면 실즈 박사가 그녀의 답을 확인하고 반응한다. 이를테면, 외상성 뇌손상으로 성장이 멈춰버린 스물두 살 여동생 '베키'의 치료비를 내고 있는 상황에 "힘들겠군요."라는 메시지를 입력한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녀에 대해 이토록 많은 것을 궁금하게 여긴 사람이 없었으며,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얘기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위안을 얻고 진정이 된다. 실즈 박사는 52번 피험자가 제시카가 아닌 것을 알게 된 직후에도 제시카의 매력적인 외모와 다른 피험자와는 다른 신선하고 여과되지 않은 답변에 흥미를 느끼면서 깊은 실험을 진행해 나간다. 이전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질문자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건 사람은 5번 피험자 외에 제시카가 유일하다. 그리고 드러난 5번 피험자의 자살, 진정 그녀의 죽음은 자살이 맞을까?


실즈 박사는, 윤리 및 도덕성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실생활 연구로 발전시킬 계획이라며 제시카에게 이상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특별한 선물과 대접을 받고, 아픈 마음까지 어루만져주고, 거액의 돈까지 받게 되니 제시카는 실즈 박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처음 바에서 만난 유부남을 유혹하고, 도덕성 연구에 참여했던 여성들에게 무료 메이크업을 지시받고, 미술관에서 특정 남성에게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수치와 모욕을 경험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박사의 지시사항들이 앞뒤 맥락없이 수상하다. 제시카에게 일어난 일련의 모든 일들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지만, 박사와의 비밀 유지 원칙을 깨고 싶지 않다. 또다시 실즈 박사로부터 특정 미션을 지령받고, 이제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도덕성에 관한 학문적 연구를 실생활 연구로 발전시키겠다는 이 야심찬 실험이 제시카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젊은 여성만을 먹잇감으로 삼는 실즈 박사의 민낯, 박사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보인 실즈 박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걸까? 무엇을 위해 이토록 감정적 소모와 막대한 돈을 소비했던 걸까?




실즈 박사는 처음부터 제시카와 자신의 닮은 점을 발견했다. 살아온 배경은 달라도 두사람 모두 그들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비극적 결말을 맺은 여동생을 두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둘의 의도나 마음가짐은 달랐다. 실즈 박사는 여동생의 죽음에 만족했으며, 제시카는 여동생의 뇌손상에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렸다.실즈 박사는 과거 20년 전 동생의 죽음, 5번 피험자의 죽음을 모두 자신의 물리적 참여가 아닌 윤리적 타락의 결과로 돌렸다. 실즈 박사와는 관계를 끝내고 싶어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끝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멀리하는 낌새가 느껴지자마자 제시카는 직장에서 해고되고, 남자친구로부터 이별까지 통보받는다. 이 심리전은 처음부터 실즈 박사에게 유리한 게임으로 출발했다. 정직을 약속한 사람은 제시카이지 설문조사를 지시한 실즈 박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비밀을 캐내고 그 비밀을 칼처럼 휘둘러 절망감에 빠뜨리는 것이 실즈 박사의 목적이었다. 일축하자면, 이 모든 일이 병적인 집착과 미친 사랑 때문이다.

익명의 소녀, 그리어 헨드릭스, 세라 페카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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