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 황석희가 번역 작업을 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와 함께, 번역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의 다양한 오역들, 번역가를 준비하는 이들을 향한 현실적인 조언, 사이버렉카의 공격으로 공황장애를 겪었던 일화까지도 풀어냈다. 독자들에게는 '일상의 번역가'라 이름 짓고, 일상의 오역이 가져다준 중량과 깊이를 물었다. 번역가이든 아니든 우리들은 일상을 번역하고 오역하고 깨닫는 지난한 과정을, 따분과 재미라는 양가적인 순환을 거듭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의역이 필요하며, 번역가에게 번역은 직역보다는 의역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통해, 오역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결국은 의역이며 그 속에서 '번역가의 촉'이 빛을 발했으리라. 종국엔 원작자의 의도대로 흘러갔겠지만.
20년째 베테랑 영어 번역가가 간단한 문장 하나로도 머리를 쥐어뜯는다는데 이토록 부단한 자기 검열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으리라. 분명 한국어로 번역한 문장이 한국어가 아닐 수도 있고, 사어(死語)일 때도 있다. 새삼 말(글)의 무게를 실감한다. 무심코 뱉는 우리의 말들이 얼마나 가벼운가. 번역가에게 있어 오역이 아예 없는 경우가 있다는데 원작자와 모든 문장을 같이 의논할 때라 한다. 그중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의 작가 '수 휴'는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라 오역된 원문을 번역으로 바로잡고, 원문을 새로 써 주는 수고까지 감수했단다. 겸손과 미덕을 갖춘 적극적인 협조자와 번역가의 직업정신이 더해져 좋은 결과물이 탄생했다.
번역체를 쓰면 정확한 뉘앙스가 전달되지 않아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해석 과정이 필요해 의사소통 속도가 저하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토착어가 가진 정서적 함의와 문화적 맥락이 탈각되기도 한다. p25
내셔널지오그래픽 작업을 전담했던 당시, 대부분의 번역가들이 다큐멘터리를 기피하는 탓에 일은 끊기지 않았지만 열망했던 드라마와 영화 작업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일을 할수록 자괴감이 들었고, 평생 다큐멘터리만 할 것 같아 500편 작업을 마친 뒤에야 그 자리를 벗어던졌다는데. 위안이라면, 이력서 경력에 한 줄이 늘어나는 것, 이 실질적인 증거와 한 줄씩 쌓아온 여정이 저자가 지치지 않고 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인의 인용구 상당수는 가짜라고 한다. 본디 의미에서 탈선한 문장이 여러 채널을 오랫동안 거치며 정역의 탈을 쓰면 문장은 물론이고 화자의 의도도 곡해된다. 경우에 따라 번역가의 번역을 곧이곧대로 수용하면 원문과 다른 메시지로 읽어 오독하기 쉬우니, 적절한 직독이 요구될 때도 있다.
폭스 채널의 《NCIS》 시즌1,2를 작업했던 당시 바쁜 이유로 시즌3가 다른 저자에게 맡겨졌다가 캐릭터 설정 문제로 저자가 다시 작업하게 되었다. 항의의 표시로 첫 편의 모든 자막을 위아래 두 줄의 바이트 수를 강박적으로 고정된 틀에 맞춰 보냈다는데, 번역가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번역에서 다뤄질 일 말고 뭐가 더 있겠는가. 자막의 질과 원문의 본질을 훼손했다지만 훗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으니 괜찮다! 영화 《데드풀》 번역의 오해는, 유머러스한 번역을 잘할 거라는 편견이란다. 하지만 그는 대본을 번역을 초월하는 이상의 창작은 꺼린단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번역가는, 대본에 숨은 위트의 패턴과 표현에 익숙하므로 과장과 의도를 살려 번역한다. 또한, 뮤지컬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번역가가 치환하는 언어의 한계는 배우의 연기가 만나면 반듯한 정역이 된다.
#황석희 #에세이 #오역하는말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번역체를 쓰면 정확한 뉘앙스가 전달되지 않아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해석 과정이 필요해 의사소통 속도가 저하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토착어가 가진 정서적 함의와 문화적 맥락이 탈각되기도 한다. - P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