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경을 추악한 살인자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녀의 두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 또한 오히려 살인자의 싹이 사그러졌다고 좋아하겠지.하지만 과연 그녀가 평온하던 주말 그것도 사람들이 붐비는 마트에서, 사랑하는 자식들 앞에서 칼부림을 일으켜 한 사람을 살해하기 까지그녀를 몰아간 '사회'와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겠지. 과연 그녀가 '살인마'가 되어버린 것에는 누구의 책임이 있을까. 하경은 누구보다 순종적인 사람으로 자라날 수 밖엔 없었다.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이며 보수적인 그녀의 집안환경.남동생에게 치이고 부모님에게 치이고 그녀는 빨리 '결혼'을 해서 자신의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그러한 그녀 앞에 나타난 겉으로 보기에는 하경이 갖지 못한 '완벽한' 가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전남편 '주완'.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던 것은 완벽한 결혼생활이 아니였다.주완은 연애시절과 신혼 초에는 정말 완벽한 남자친구와 남편을 연기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었다.점차 드러나는 그의 '알코올 중독'과 '여성편력'. 그리고 이혼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완벽했던 가족의 진실을 말이다. 하경은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들 서진과 서준을 지키기 위해서 주완과 이혼할 수 밖엔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너무나 가혹하다.양육비는 커녕 재산분할할 재산마저 없는 전남편.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선 '워킹맘'이 될 수 밖엔 없다.그러나 아이들이 아플때마다 유치원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그녀는 누구보다 '죄인'이 된다. 아픈 아이의 곁에 온종일 있어 줄 수도 없고, 아플 때 병원에 들렀다 다시 유치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현실.퇴근 후에도 깨어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잠든 아이들을 보는 삶.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그늘이 아이들을 덮칠까봐 두려워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 했다. 이러한 순종적이면서 맹목적이었던 하경이 '살인자'가 되도록 만든 것은 과연 누구일까. 그녀가 칼부림을 일으키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만약 그녀의 아이들에게 문신남과 껌씹던 여자친구가 겉으로나마 '사과'를 했더라면 어땠을까.아니면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라도 하경이 분노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두 아들을 먼저 생각했다면.넘어진 아이를 지나쳐 '칼'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면.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책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변호사로 선임되었던 '호준'은 어떻게 본다면 그녀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하경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과연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이기에 그 순간의 선택이 그들의 결말을 바뀌게 한 것일까. 아마도 호준이 하경에게 끌렸던 것인 이성으로서의 호감 보다는 그녀가 그와 비슷한 존재.즉. '동류'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녀의 '결말'과 그녀의 두 아이의 비극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마지막 순간에 분노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실낱같은 이성을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물론, 하경의 곁에는 그녀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호준의 곁에는 그의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는 아내가 존재한다는 차이도 있다. 이 책이 과연 '하경'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본다면 현존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 책이 아닐까.사회는 자꾸만 저출산등의 이유로 출산을 장려하나 과연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기까지 정말로 안전한 사회인지는 많은 의문이 든다.제도적인 부분이나 부족한 산부인과라든지 아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큰 걸림돌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단순하게 출산 장려만 하면 다 해결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든다.📖 '찰나였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정상에 오르는 것도 언제나 그 찰나가 만들어 낸다.'_9p📖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는 것들이 있다.'_43p📖 '사람의 마음은 그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는 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_119p📖 '분노는 이성을 제압하는 법이다.'_151p#시스투스 #그늘 #그늘소설책#그늘중편선 #한국소설#주선미#학대 #아동 #칼부림 #분노#서평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