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보낼 용기 -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
송지영 지음 / 푸른숲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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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겨우 열 일곱이었다.
한 가족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자 학교에서 친구들과 떠들며 웃기 바쁜 소녀가 세상을 등진 것은.
열 일곱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어리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을 때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단어들이 있다. 남편을 잃은 여자는 '과부',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애비',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
그러나 그 수없이 많은 단어들 속에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나타내는 단어는 없다.
그러한 사실이 오히려 더 슬픔을 체감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을까.

 열 일곱은 나에게도 상실의 시기였다. 태어나 눈 뜨고, 사물을 인지할 때부터 나와 함께 있었던 나의 친할머니.
우리 친할머니는 흔히들 아는 할머니와는 좀 달랐다. 가부장적인 사람에다가 우리 아버지가 늦둥이라서 그런가 더욱 더 옛날 사람이였다.
그런 막내 아들의 첫 자식이 '딸'이라서 흔히 말하는 차별을 많이 당했던 것 같다. 거기다 아마 예민한 나의 성정도 할머니와의 관계가 평탄치 않은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일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할머니는 맞벌이인 우리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는 날, 무서운 날 항상 집에 계셨기에 든든한 보호자 역할은 해줬던 것 같다.
물론, 중풍(뇌졸증)에 치매도 있으신데다 촌 사람이라서 성정이 곱지는 않으셨지만 말이다. 그래도 용돈을 모아 밤빵을 사간 날이나 좋아하는 감자떡을 드린 날
그리고 고사리 손으로 만든 엉터리 전을 다 드셔주실 만큼 당신도 손녀딸을 애정하긴 하셨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가 열 일곱, 춘 3월 어느 날 나의 세상에서 사라졌다.
물론, 우리 할머니는 요즘말로 하면 '호상'이다. 무려 여든아홉까지 사셨기 때문이랄까.
막상 돌아가실 시기가 되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장례식장에 간 그 날. 나는 내가 펑펑 울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 울어도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장지까지 다 다녀오고 꽤 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닌 날. 할머니가 떠올라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떠올리면 여전히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유일한 상실은 할머니들이였기 때문에 가끔씩 보고 싶냐고 물음을 던진다면
매일매일이 그리운 것은 아닌데, 그래도 가끔 계절마다 생각이 난다. 무서운 것을 보거나 밤 늦게 깨있는 날이면 항상 집에 계셨던 친할머니가.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배추전을 먹다보면 보드라운 노란배추 부분만 구워서 주셨던 외할머니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하지만, 이 책과 다르다면 그 분들의 마지막은 '노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삶의 끝이였다는 것이 아닐까.
인생에 태어남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죽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슬픈 이유는 당연하게도 '서진'이와의 이별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솔직히 이 책을 보고서 이러한 서평 글을 쓰는 것 또한 '기만'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한 사람과 한 가족과 더 나아가 한 일가의 '상실'의 아픔을 글로 표현한 것이자
그 아이와의 '이별'을 준비하고자 하는 한 어머니의 처절한 생을 향한 몸부림이기 때문은 아닐까.

 책의 제목인 '널 보낼 용기'. 이 글을 쓰면서 글의 저자는 얼마나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을까.
책을 읽을 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과 그 후의 삶을 생각하면,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끼리 유대하며,
그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기억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너무나 슬픈 이유는 겨우 열 일곱에 이별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글을 써내려가는 엄마의 문체가 너무나도 담담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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