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
릴리 출리아라키 지음, 성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은행나무 x 오월의봄 크로스 리뷰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처음 이 책의 표지만 보고서 섣불리 아, 이건 추리소설이 분명해! 라고 생각하면서 이벤트에 참가했습니다. 운 좋게도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읽으려고 보니 아, 이건 소설이 아니구나, 지식전달이 목적인 ‘책’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버렸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지식 전달이 목적인 책을 읽다 보니까 제대로된 배경지식도 없이 섣불리 읽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과, 그래도 읽으면서 이해를 해 보려고 하면 할수록 아, 이건 책에 밑줄 긋기 싫어하지만 이해를 하고 문맥을 놓치지 않으려면 그어야 하는구나 하면서 펜으로 밑줄도 쫙쫙긋고, 한편으론 이런 책의 서평은 도대체 어떻게 써야될까 등등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였습니다.

1장은 어째서 피해자성인가, 2장은 과거에는 누가 피해자였나, 3장은 오늘날에는 누가 피해자인가, 4장은 피해자성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역시 <그러므로,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를 구분하는 질문 대신,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해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 특정한 고통의 주장이 특정한 자아를 피해자로 여겨지게 하는가? 이런 자아는 어떤 권력의 입장에서 발언하는가? 이드의 주장은 이들에게, 이들이 호명한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안기는가? 이런 주장은 어떤 종류의 배제를 전제p하고 공고히 하는가?>_72p

어떻게 본다면 이 책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는 2018년 9월 27일, 팔로알토대학교 교수 크리스틴 블래시 포드가 당시 연방대법원 대법관 지명자였던 브렛 캐버노가 30년 전 고등학교 시절 파티에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증언한 사건이나 그 후에 브렛 캐버노가 반격하면서 그는 가해자에서 결국 피해자로 변신하고, 블래시 포드의 강력한 증언 이후 다른 세 여성이 비슷한 증언을 했음에도 브렛 캐버노는 결국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선출된 것. 이 사건은 오늘날 피해자성의 문화적 지위에 관한 1st. 피해자성 주장은 서구 문화권 전체의 관심을 사로잡는 포괄저긴 사안이라는 통찰과 2nd 피해자성 주장이 곧 권력에 대한 주장이라는 피해자성의 문화적 지위에 관한 핵심적인 두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피해자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말해서 피해자성은 17세기까지는 종교적인 맥락에서 ‘희생제물’을 의미하다가 점차 ‘피해를 입거나 죽임을 당하는 상태’라는 세속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 19세기 넘어서는 ‘억압당한 자, 상해나 불운에 시달리는 자 또는 단순히 이용당하는 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변화하게 되었다._38p

또한 피해자성과 권력에 대해서 보여주는 예시들이 미국 남부전쟁에서 나타난 교전 규범의 선택적 사용과 백인 중심의 화해의 서사,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으로 참전했던 피식민 전사자에게 개인 무덤, 심지어는 묘지마저 할애하지 않은 처사, 베트남전쟁에서 흑인 병사의 참전 시간이 더 길고 그들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나타난 ‘부수적 피해’를 향한 무심함. 이 모두가 긴 세월 속에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 적극적인 인종주의적 망각 행위의 증거이다._126p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서구문화권이라서 그런지 예시들이 인종주의적으로 치우치거나, 아니면 흑백 논리처럼 남성과 여성으로 가해자나 피해자를 나뉘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시대적 흐름이나 그 공간적 요소들을 살펴본다면 가장 권력적이면서도 ‘가해자’는 ‘백인 남성’이 될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으로 ‘여성’이나 ‘흑인’이 ‘피해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랄까. 하지만 이게 인도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정치’나 ‘권력’과 엮인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역전’되는 상황이 일어난다. 그 예시가 책에서도 말하는 ‘백인 경찰이 흑인 남성을 총살할 사건’인데 그 누구보다도 중립을 유지해야 할 ‘판사’가 배심원들의 의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피해자들을 ‘피해자’라고도 부르지 못하게 할 때. 바로 그러한 모순이 생겨나고야 마는 것이다.

이러한 예시를 동양권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든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당연히 신분제가 있던 시대로 간다면 겉으로 보이는 ‘가해자’는 양반이, ‘피해자’는 노비같은 천민계급이 될 것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타파된 상황에서도 일반 국민과 ‘백정’같은 여전히 천시받는 계층으로 나뉠 것이고, 지금은 아마도 ‘가해자’는 정치인 같은 ‘권력’을 가진 계층이, 피해자는 노동자 중에서도 ‘경비원, 청소용역’같은 분들이 아닐까. 물론 이 또한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강력할까. 이 책을 읽을수록 ‘피해자’와 ‘가해자’는 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서 ‘무고죄’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서 ‘성범죄’가 일어났다고 한다면 아마 당신도 무조건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마 중년의 남성을 가해자로 젊은 여성을 피해자로 말이다. 게다가 만약 ‘젊은 여성’이 자신이 성범죄를 당했다고 주장한다면 아마도 그 말의 진위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수사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설마 거짓이겠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수사에 들어가서 그러한 증언이 거짓이라고 밝혀지더라도 이미 ‘가해자’로 사회에 낙인 찍혀진 ‘피해자’의 무고함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다를 지도 모른다. 그러나 크게 본다면 ‘무고죄’ 이것만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뀜을 잘 설명할 수 있는게 있을까.

솔직히 이런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책 한 권에 꾹꾹 눌러 담기엔 주제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짤막짤막하게 거론된 단어라도 그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제대로 이해하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또 저자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장벽이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책은 필요하다. ‘도파민’, ‘힐링’, ‘마케팅’, ‘투자’ 그리고 ‘에세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깊은 고민에 잠기게 할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러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물론, 책에 너무 감화되거나 무조건 덮어두고 맹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런 ‘정치’색이 짙은 책일수록 ‘중립’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책 한 권으로 ‘나’의 신념이 변하진 않겠지만 또 모르지 않을까.


#가해자는_모두_피해자라_말한다
#릴리_출리하라키
#은행나무
#피해자성은_어떻게_권력자의_무기가_되었나
#은행나무출판사
#서평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