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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평점 :

'국민윤리'세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윤리 선생님이 칠판을 땅땅치며 "에피쿠로스는?" 하면 영점오초만에 '쾌락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머리통을 딱딱 맞게 된다는 사실을....
그당시 쾌락이란 말에 괜히 얼굴 빨개지며 몸을 배배 꼬던 그시절, 변태같은 철학자에 이상한 학설이라고 치부하고 말았다.
현대지성 클래식은 원본 텍스트를 완역해서 꾸준하게 양서를 내놓고 있는 곳이다. 이번에는 2400년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활동했던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다. 완역본답게 각주가 많이 매달려 있다. 본문과 각주가 반반인 장도 수두룩하다. 일단은 각주없이 본문만 속도감 있게 읽어나간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면 그제서야 각주를 참고해 보았다. 그 옛날 점토판이나 파피루스, 혹은 귀한 양피지에 기록했을 저작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300여편의 저서중 세편의 편지글만 살아 남았고 유명한 디오게네스가 정리한 글이 같이 실려 있다. 첫장은 솔직히 좀 지겹다. 디오게네스가 쓴 <에피쿠로스의 생애>인데 당시 교류하던 학자, 유행하던 학설이 장황하게 쓰여 있다. 다음장부터 에피쿠로스가 직접 쓴 편지글이 진짜다.
"하지만 현상들과 일치하는 여러 이론 중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한다면, 자연학에 관한 탐구에서 완전히 이탈해 신화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서신 중-
물리, 천문 등 자연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미지의 영역을 신화나 종교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또한 "천체들의 공전 운동이 규칙적인 이유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에서 볼 수 있는 회전 운동의 규칙성에서 유추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신적 존재를 끌여들여서는 안 되고, 신적 존재를 이런 일로부터 해방시켜 완전한 행복의 상태에 있게 해야 한다." 라면서 올바른 과학적 탐구의 자세를 설명한다. 오로지 관찰과 유추에 근거해서 과학적 사실을 끌어내야 하며 여타 신적존재의 개입을 막을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고대의 분화되지 않은 자연학을 연구하며 동료와 후배 자연학자들에게 과학하는 방법을 세심하게 설명하는 에피쿠로스는 참고할 문헌이나 관측이나 실험을 위한 장비도 없는 인류가 호기심과 지적욕구만으로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머리통을 얻어 맞으며 배웠던 물리, 지구과학, 생물 등의 시간을 현재 에피쿠로스 선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교실에 앉아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놀랍지만 아주 귀여운 표정을 지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