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 하버드 최고의 뇌과학 강의
제레드 쿠니 호바스 지음, 김나연 옮김 / 토네이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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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짙은 남색 표지 위로 점선으로 그려진 두 사람의 옆얼굴이 마주 보고 있고, 별이 흩뿌려진 듯한 배경 사이로 은은한 광택이 흐릅니다. 표지에 손을 얹는 순간 “꽤 묵직하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어요. 쪽수가 만만치 않고 두께도 상당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보다는 책상 위에 두고 며칠에 걸쳐 천천히 읽는 쪽이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제레드 쿠니 호바스 박사의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이야기예요.


이 책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대화법’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대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진단이에요. 그래서 호바스 박사는 커뮤니케이션의 토대를 ‘말솜씨’에서 ‘뇌과학’으로 옮겨놓습니다. 표지에 적힌 한 줄, “그 어떤 뛰어난 인공지능도 인간의 본성은 바꿀 수 없다”라는 문장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40대 후반에 접어들어 회의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진 제 입장에서, 가장 먼저 발걸음이 멈춘 곳은 5장 ‘일 잘하는 뇌를 찾아라’였습니다. 멀티태스킹은 환상이고 사실은 ‘작업 전환’이라는 이야기, 연습으로도 뛰어난 멀티태스커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단호한 결론이 나오는 장이에요. 저자는 카페에 앉아 ‘세상은 혼란스러운 곳이다’라는 문장을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옆 테이블의 수다,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 채드라는 남자가 떠드는 방과 후 활동 이야기까지, 그 모든 소음에도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해낸다는 거예요. 그 비밀이 ‘집중력의 필터’입니다. 3D 안경이 특정 파장의 빛만 통과시키듯, 뇌의 측면 전전두엽 피질에 ‘규칙 집합’이 탑재되면 필요한 정보만 들이고 나머지는 차단한다는 설명이지요. 1980년대 비디오 게임 카트리지에 빗댄 대목도 좋았습니다. 게임을 하려면 해당 카트리지를 끼워야 하고, 그제야 화면에 영웅과 악당, 무기가 떠오른다는 비유는 회의 자료를 펼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멀티태스킹에 초대하지 마라”라는 조언은 그대로 일터에 가져다 쓰고 싶었습니다. 발표 도중에 웹사이트 주소를 부르거나, 복잡한 그래프를 함께 풀게 하지 말 것.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스마트폰을 꺼두고 노트북 화면을 덮어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그동안 회의실에서 제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을 산만한 상태에 두고 발표를 시작했는지 떠올랐어요. ‘사건 제거’ 이야기는 또 어떻고요. 방에 들어서면서 내가 왜 들어왔는지 까먹는 그 흔한 순간을 뇌과학으로 풀어주는데, 책장을 넘기면 직전 문장을 잊어버리듯 출입구를 지나는 순간 뇌가 규칙 집합을 비워낸다는 설명에 헛웃음이 났습니다.


7장 ‘오류와 예측 사이’도 오래 머문 장이에요. 저자는 ‘I Love Paris in the the Springtime’이라는 삼각형 문장을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이 두 번 적힌 the를 알아채지 못하는데, 읽기에 대한 심성 모형이 워낙 강력해서 실제 단어가 아니라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읽어버린다고 해요. 일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이런 함정에 자주 빠지는 것 같습니다. 익숙함이 곧 정답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눈앞의 실제를 놓치게 되니까요.

저자가 심성 모형의 구식을 알아차리는 신호로 꼽은 것이 ‘오류’입니다. 오류는 그저 ‘모르는 것’과 다르고, 예측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알려주는 경보라고 해요. ‘오류 문화를 조성하라’라는 대목에서는 회사 생활을 한참 떠올렸습니다. 결과 중심 문화는 오류의 개인화로 이어져 위험 기피와 단절을 키우고, 과정 중심 문화는 노력과 실패, 성장과 숙련도를 강조해 협업을 끌어올린다는 정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활자로 읽으니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오류가 투명하게 받아들여질 때 사람들은 지식의 격차를 찾아내고, 호기심을 추구한다”라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비유도 따뜻했어요. 산타가 가공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존재가 통째로 지워지지는 않듯, 배움은 파괴적이지 않고 건설적이라는 것. 심성 모형은 대체되는 게 아니라 확장된다는 메시지는, 마흔 후반에 새로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한결 덜어주었습니다.


10장 ‘이야기로 랜드마크를 만들어라’는 발표와 보고가 잦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줄을 그어가며 읽게 될 장이에요.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속 에펠탑과 같다”라는 문장이 특히 좋았습니다. 휴대용 지도와 GPS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에 높은 탑이나 동상을 세워 방향을 가늠하는 랜드마크로 삼았는데, 이야기는 기억의 미로 안에서 그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쇼생크 탈출>을 보며 우리는 단지 수감 생활을 간접 체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한 감옥에서의 자유로운 탈출을 꿈꾼다는 대목, “이야기는 심리적·감정적 시뮬레이션을 주도한다”라는 문장은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왜 오래 남는지를 신경과학의 언어로 풀어줍니다. 옥시토신과 ‘신경 결합(neural coupling)’ 설명도 인상 깊었어요. 청중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면 그들의 뇌 패턴이 화자의 뇌 패턴을 모방하기 시작하고, 그 순간 서로에게서 배우며 호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자가 “최고의 작가는 최고의 스토리텔러임을 잊지 마라”라며 동시에 전문가에게는 이야기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균형을 잡아주는 부분도 신뢰가 갔습니다.

11장과 12장은 책의 후반부를 담담하게 닫아주는 장이에요. 저자는 ‘감정’과 ‘느낌’을 구별합니다. 감정은 심장의 두근거림과 가쁜 호흡 같은 몸의 신호고, 느낌은 그 신호에 대한 마음의 해석이라는 설명이 명료했어요. 같은 두근거림을 두려움으로 해석할지 설렘으로 해석할지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 ‘지식과 기억에 다양한 감정을 연결하라’는 대목은 한 가지 감정에만 묶여 학습한 정보가 평소엔 잘 꺼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회사에서 받은 교육이 막상 현장에서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어요.

12장의 망각 곡선 이야기는 위로에 가까웠습니다. 저자는 망각을 ‘사라지는 구름’으로 떠올리는 비유가 정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기억은 오히려 밀림 속 오두막과 같아서, 발길이 끊기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거예요. 수십 년 동안 잊고 있던 고등학교 졸업 파티가 어떤 연상 하나로 생생히 떠오르는 것처럼, 흐릿해진 기억도 작은 신호 하나면 다시 길을 낼 수 있다는 문장은 마흔 후반의 독자에게 든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이야기, 24시간 뒤 70퍼센트를 잊고 일주일 뒤에는 20퍼센트만 남는다는 결과, 그리고 핵심은 ‘얼마나 외우느냐’가 아니라 ‘연습 시간을 어떻게 짜느냐’라는 결론은 자기계발서의 표지 카피보다 훨씬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니, 두께와 무게가 새삼 손에 남았습니다. 한 번에 끝낼 책이 아니에요. 시간 여유를 두고 한 장씩, 천천히 곱씹어야 제 몫을 합니다. 출퇴근길의 가벼운 읽을거리로는 권하지 않겠어요. 주말 오전 책상 앞에서, 메모지와 함께 펼쳐두기를 권합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으라면 그 정도. 그 외에는 흠잡을 곳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먼저, 발표와 보고, 교육과 코칭처럼 ‘사람을 가르치고 설득하는 자리’에 자주 서는 직장인에게 . 슬라이드를 어떻게 짤지, 회의를 어떻게 열지, 후배에게 피드백을 어떻게 줄지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가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기억력과 집중력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안고 있는 40대 이후의 독자에게도. 망각을 사라짐이 아니라 ‘가려짐’으로 다시 정의해 주는 12장의 비유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값을 합니다.


5월 끝자락, 창문을 열면 초여름의 더운 공기가 슬그머니 밀려 들어옵니다. 한낮의 햇살이 점점 진해지는 이 무렵, 진한 커피 한 잔과 두툼한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려두는 시간은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져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회의실의 풍경과 보고서의 문장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일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신경과학의 언어로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설득의 자리에 자주 서는 직장인을 위한, 담담하고 단단한 뇌과학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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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진짜를 보는 눈 - AI 디지털 리더로 성장할 실전 가이드북
최서연.전상훈 지음 / 미디어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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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회사에서 일하는 풍경이 꽤 많이 달라졌어요. 엑셀로 자료를 정리할 때도, 협력사에 보낼 상품 제안서를 만들 때도 직원들 대부분 AI를 켜 두고 작업합니다. 한두 해 전만 해도 “써 봐야 하나” 망설였던 도구가, 이제는 안 쓰면 손이 느리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일상이 되었어요. 저 역시 제안서 초안을 잡을 때 자연스럽게 챗봇을 먼저 열게 됩니다. 편하긴 한데, 가끔은 결재 올린 표현이 제 것인지 AI가 다듬어 준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10대를 위한 진짜를 보는 눈>. 표지 위에 픽셀이 무너지듯 흩어지는 옆얼굴과 FAKE, FACT가 계단처럼 어긋난 그래픽이 한참 눈에 머물렀습니다. 처음에는 ‘10대를 위한’이라는 부제 때문에 자녀가 떠올랐는데, 책을 펼쳐 보니 아이에게 권하기 전에 제가 먼저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요즘 가짜 뉴스가 워낙 정교해져서, 어른이라고 잘 가려낼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니까요.

이 책은 AI 리터러시 전문가인 최서연 박사와 전상훈 박사가 함께 쓴 디지털 생존 가이드입니다. 표지에 적힌 한 줄, “AI가 정해 준 답이 정말 내 생각일까?”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물음이에요. 1부에서 ‘AI 시대 인간의 자리’를 묻고, 2부에서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실전 기술을 다루며, 3부는 AI 활용의 윤리와 기준을, 4부는 디지털 리더로 성장하는 길을 그립니다.


가장 먼저 마음에 박힌 대목은 책 초반에 등장하는 유치원생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방송에 나온 아이가 자기 기분을 친구의 말이 아니라 “재생하시겠습니까.”, “X가 없습니다.”, “글자를 더 입력해 주세요.” 같은 기계 안내 문장으로 표현하더라는 일화예요. ‘조금 더 놀고 싶다’는 마음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기계의 어투로 옮기고 있었다는 부분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어요. 바로 이어지는 페이지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가 인용되는데, 챗GPT가 자주 쓰는 격식 있고 다소 딱딱한 단어들이 2022년 이후 사람들의 일상 대화에서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AI가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는 게 과제였는데, 이제는 사람이 AI를 닮아 가는 역전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진단이에요.

같은 챕터의 ‘잠깐, 내 생각 점검!’ 박스가 특히 뜨끔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는 “오늘 날씨도 좋은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뭐 좋아해?”인데, AI와의 대화는 “서울 강남역 인근, 평점 4.5 이상, 파스타 맛집 3곳 추천해 줘.”라는 비교. 어느 순간 회사에서 후배에게 업무를 부탁할 때도 제가 ‘조건’부터 정리해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효율은 분명히 올라갔는데, 감정과 맥락이 빠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한 번쯤 들여다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가짜 뉴스 이야기로 넘어가는 2부도 인상 깊었어요. 거짓이 오히려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탈진실 현상을 짚은 뒤, 결정적인 관점 전환이 등장합니다. “진짜일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해 가짜를 찾는 방식은 더 이상 최고의 검증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대신 가짜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해 진짜를 찾아가는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는 가족 단톡방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영상과, 회사 메신저에 떠도는 출처 모를 자료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어요.

이어서 디지털 리터러시 전문가 마이크 코필드가 정리한 팩트 체크 4단계 SIFT가 소개됩니다. 멈추고, 출처를 조사하고, 더 나은 보도를 찾고, 원문까지 추적하라는 흐름인데요. 그중 1단계 ‘멈춰라’의 안내가 특히 실용적이었습니다. “정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약 2초 정도 여유를 가지고 눈에 보이는 문자만이 아니라 이면과 맥락을 살피는 것이 중요해요.” 분노, 충격, 공포, 흥분 같은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을 ‘관심 경제’의 함정이 노린다는 설명까지 읽고 나니,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던 손가락이 조금 느려졌어요. 자녀에게도 “2초만 멈춰 보자”는 말은 충분히 건넬 수 있겠더라고요. 도메인 주소로 매체의 성격을 가늠해 보라는 조언, 그리고 “최소 세 곳 이상의 서로 다른 매체에서 어떤 내용을 전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권유도 회사에서 자료를 다룰 때 그대로 적용할 만했습니다.

가장 오래 곱씹은 챕터는 책의 마지막 장에 자리한 ‘10년 후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였어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이 한동안 책장을 덮지 못하게 했습니다. “21세기의 문맹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잊고 다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이 나이에 또 배워야 해?” 싶다가도, 어느새 손이 가는 이유가 이 말 한마디로 설명되는 기분이었어요.


이어지는 흐름도 좋았습니다. “10년 후 여러분의 가치는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라는 권유, 그리고 “공부는 단순히 점수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이라는 말. 자녀에게도, 그리고 일터에 매일 나가는 저에게도 똑같이 유효한 이야기였어요.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을 구분한 대목에서는 “소프트 스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꾸준한 경험과 반복을 통해 서서히 길러지는 것이 특징”이라는 부분이 오래 남았습니다. AI가 아무리 빨라져도 이 결만큼은 결국 사람의 몫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다정한 위로가 된 부분은 챕터 후반의 ‘태도’ 이야기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한 끗이 바로 ‘태도’입니다. 태도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능력은 일을 시작하게 하고, 동기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태도는 얼마나 잘 해낼지를 결정하며 완주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시험 점수가 기대보다 낮게 나왔을 때 “난 역시 안 돼.”라며 포기하는 마음과 “어디서 틀렸는지 확인하고 다음에는 맞히겠다.”라고 다잡는 마음이 결과를 다르게 만든다는 비교는, 사실 회사 회의에서 보고가 막혔을 때 제가 저 자신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덮고 가장 단단하게 남은 생각은 이런 거였어요. AI는 점점 더 똑똑해질 텐데, 그 똑똑함에 제 생각까지 슬그머니 얹어 보내지는 말아야겠다는 것. 회사에서 자료를 빠르게 정리해 주는 도구가 고마우면서도, 결재란에 들어갈 한 줄의 판단만큼은 제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 자녀에게 “스마트폰 그만 봐”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잠깐 멈추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것. 청소년을 향해 건넨 말들이 어느새 어른에게도 똑같이 가닿는 책이었어요.


이 책은 두 부류의 독자에게 특히 권하고 싶어요. 먼저 10대 자녀와 함께 스마트폰, 유튜브, 챗봇 사용을 두고 자주 부딪치는 부모님들. 잔소리 대신 이 책을 슬쩍 건네는 편이 훨씬 부드러운 대화의 출발점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AI 없이는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 환경에 들어선 직장인들. 도구가 빨라질수록 자기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 점검하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거예요.


오월의 끝자락, 햇살은 점점 길어지고 바람에 초여름 기운이 섞여 듭니다. 창을 열어 두고 이 책을 다시 펼쳐 보니, AI가 답을 척척 내어주는 시대일수록 천천히 멈춰 생각하는 시간이 더 귀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빠르게 흐르는 정보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책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2초, 그 작은 여백이 결국 ‘진짜를 보는 눈’을 만들어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AI가 답을 대신해 주는 시대에, 끝까지 질문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건네는 따뜻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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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환율 공부
최호영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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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달러가 1,500원을 ‘터치했다’는 말이 며칠 걸러 한 번씩 흘러나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는데, 지난주 마트에서 수입 과자 가격표를 보다가 멈칫했어요. 작년 이맘때 사 본 기억이 있는 물건인데 슬그머니 천 원 가까이 올라가 있더라고요. 환율 뉴스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 <최소한의 환율 공부>는 그런 마음으로 펼쳤어요. 평소 잘 들르는 북유럽 카페에서 책 소개를 보고, 제목에 ‘최소한의’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서 부담 없이 한 권쯤 읽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솔직히 월급쟁이 입장에서 거창한 투자서는 좀 멀게 느껴지거든요. 아이 키우는 또래들 만나 보면 다들 비슷한 말을 합니다. 투자할 돈이 어디 있냐, 통장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요. 그래도 돈의 흐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고 싶었어요. 자산을 굴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흐름을 모르고 가만히 깎이는 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택배를 풀어 책을 꺼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생각보다 작네’였어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핸드북 사이즈라, 들고 다니기 편하고 읽어 내려가는 데도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잘 읽어 내려가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출퇴근 가방에 쏙 들어가서, 지하철에서 한두 챕터씩 끊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저자 최호영은 매크로 경제와 주요 지표를 다뤄온 금융 전문 기자 출신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책 전반에 차분하게 정리된 결이 흐릅니다. 어려운 용어를 멋있게 쓰려는 욕심보다, 독자가 따라올 수 있게 비유로 풀어주는 자리가 더 많아요. 1장부터 6장까지 환율의 기초 원리, 달러 패권의 역사, 원화의 숙명, 그리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환율 습관까지 이어지는 구성이라 처음 환율을 공부하는 사람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비유는 25쪽의 ‘환율은 전 세계가 매일 하는 돈의 인기 투표다’라는 표현이었어요. 시소처럼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이 내려가는 원리로 고환율과 저환율을 설명한 단락(26쪽)도 직관적이었고요. 그동안 환율을 그저 오르고 내리는 숫자로만 봐 왔는데, 매일 전 세계 자본이 어느 나라를 더 신뢰하는지 점수를 매긴 결과라는 시각으로 바꿔 읽으니 뉴스 헤드라인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8쪽의 밀가루 비유도 한참 들여다봤어요. 환율이 1,000원에서 1,500원으로 뛰면 같은 1달러짜리 밀가루를 사 오는 데 500원을 더 얹어야 한다는 단순한 예시인데, 결국 그 차액이 빵값과 라면값으로 옮겨와 제 월급의 구매력을 깎아내린다는 이야기잖아요. ‘환율 공부는 내 자산의 가치를 지키는 생존 전략이다’라는 단락의 마무리가 가볍게 읽히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4장에 들어서면 책의 결이 한층 묵직해집니다. 원화를 글로벌 경기의 ‘카나리아’로 진단하는 대목(126쪽)이 특히 그랬어요. 과거 탄광에서 유독가스를 먼저 감지하던 새처럼, 원화는 세계 자본이 위험을 느낄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통화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위기 시 한국 시장이 글로벌 펀드들에게는 ‘ATM’처럼 작동한다는 표현(128쪽)도 씁쓸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웠고요. 그동안 외국인 자금이 빠진다는 뉴스가 막연하게 들렸는데, 그 메커니즘의 이름을 처음 또렷이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 130쪽에서 한 줄을 만났어요. ‘환율이 흔들릴 때, 우리 경제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환율이 오를 때마다 막연히 우리 경제가 안 좋아지나 걱정만 했는데, 그것이 세계 돈의 방향을 보여주는 정보 자산일 수 있다는 시각은 처음이었거든요. 135쪽의 ‘환율은 이제 외국인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 선택의 결과다’라는 진단도 같은 결로 읽혔습니다. 서학개미와 연기금이 해외 자산을 늘려가는 흐름이 곧 환율을 움직이는 우리의 선택이라는 시각은 묘하게 정신이 들게 합니다.

책을 덮을 무렵 가장 오래 머문 자리는 6장이었어요. ‘부의 격차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먼저 보는 습관에서 시작된다’는 194쪽의 문장, 그리고 ‘부의 격차는 지능이나 운이 아니라, 바로 아침의 1분에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한다’는 199쪽의 마무리가 직장인 일상에 가깝게 닿았습니다. 출근길에 휴대폰을 켜고 SNS 피드를 넘기는 그 1분을 달러 인덱스 확인으로 바꿔 보자는 권유였는데,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따라 해 볼 만하다 싶었어요.

이 책이 저처럼 투자할 큰돈이 없는 월급쟁이에게 더 가치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환율 공부가 ‘없는 돈을 굴리는 기술’이 아니라 ‘있는 돈의 가치를 지키는 감각’으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203쪽의 ‘짠테크를 넘어 경제적 자유로 가는 소비 습관’ 챕터에서 환율 변곡점에 맞춰 직구나 여행 결제를 분할로 나눠 매수처럼 진행하는 팁은, 당장 큰 자본이 없어도 일상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결이라 더 좋았어요. 저자의 표현대로 ‘작은 돈을 아끼는 감각이 큰 돈을 지키는 근육으로 자라난다’는 말이 그냥 듣기 좋은 문장으로만 읽히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대목이 흡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5장과 6장 일부에서 ‘부의 격차’, ‘승자’, ‘부의 사다리’ 같은 표현이 반복되는 자리는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강조하려는 메시지는 알겠지만, 환율 공부가 곧 부의 도약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화법은 저처럼 빠듯한 가계를 운영하는 독자에게는 가끔 거리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책 전체가 ‘공포를 수익으로 바꾸는 역발상’이라는 큰 줄기를 일관되게 따라가고 있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옅어졌어요.

직장 생활을 해 오면서 가장 자주 하는 고민이 노후 자금입니다. 연금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숫자는 어떻게든 나오는데, 그 돈이 20년 뒤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질지에 대한 감각은 늘 흐릿했어요. 53쪽에서 ‘겨울이 올 것을 미리 안다면 따뜻한 옷을 준비하듯’ 외화 자산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권하는 단락을 읽으며, 그 흐릿함의 정체가 조금 또렷해졌습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권한 ‘자산의 20%를 달러로’라는 가이드(223쪽)가 모두에게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원화 하나에만 노후를 다 맡겨두는 것은 한 번쯤 멈춰 서서 생각해 볼 문제라는 자각은 분명히 남았어요.


이 책을 두 그룹에 권하고 싶습니다. 먼저 저처럼 큰 투자금은 없지만 경제 뉴스가 내 월급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한 40대 직장인입니다. 환율을 거창한 투자 도구가 아니라 구매력을 지키는 감각으로 처음 만나기에 좋은 책이에요. 다른 한 그룹은 사회 초년생 자녀를 두고 있거나, 곧 자녀 유학·해외 직구·여행 자금을 고민해야 하는 부모 세대입니다. 환율의 변곡점을 읽는 감각을 자녀와 함께 이야기 나눠 보는 것만으로도, 198쪽 표현처럼 ‘세상을 읽는 눈의 대물림’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환율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작아지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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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한 자루로 시작하는 별나라의 어반 스케치 - 드로잉부터 수채화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기초 입문
고은정(별나라) 지음 / 제이펍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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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은 출근길에 휴대폰만 들여다보다가 회사 문 앞에 도착하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매일 지나치는 골목의 간판 하나, 가게 앞에 세워 둔 화분 하나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펜 한 자루로 시작하는 별나라의 어반 스케치>를 받아 들고 가장 먼저 든 마음이 그랬습니다. 잠시라도 손에 펜을 쥐고 동네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나게 됐어요. 표지에는 오래된 세탁소 한 채가 펜선으로 또박또박 그려져 있고, 그 옆으로 초록 화분이 슬며시 번지듯 칠해져 있습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 떠오른 건 의외로 학창 시절이었어요. 교과서 귀퉁이에 작게 낙서하고, 연습장에 사람 얼굴이며 강아지, 고양이를 그려 보던 시절. 서툰 손이 그대로 낭만이 되던 때였습니다. 요즘은 AI가 그림을 대신 그려 주는 시대지만, 그 시절엔 연필 한 자루와 빈 종이 한 장이면 충분했어요.

저자 고은정(별나라)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12만 명 가까운 분들과 그림으로 소통하고 있는 분이에요. 책 전체의 어조가 영상 강의를 옆에서 듣는 느낌이라,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분이든 예전에 잠깐 그려 봤던 분이든 부담 없이 펼칠 수 있습니다. 단계별 안내가 워낙 친절해서,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망설일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예요.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마음이 놓였던 부분은 도구 챕터였습니다. 워터 브러시, 사쿠라 화이트 펜, 마스킹 테이프, 셀룰로스 스펀지, 라이터, 미니 스프레이까지. 어반 스케치라는 말만 들으면 거창한 장비가 필요할 것 같지만, 작가는 ‘고가의 피그먼트 펜 대신 모나미 네임펜 얇은 심을 자주 쓴다’고 솔직하게 적어 두었어요. 비싼 도구가 아니어도 손에 익은 펜 한 자루면 시작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려서, 책장을 넘기는 손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기초 클래스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은 33쪽의 한 줄이었어요. “선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선을 긋는 시간도 늘어나야 합니다. 초보자일수록 이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빠르게 그으려는 손목을 잠시 붙잡아 두는 한마디인데, 이상하게 이 문장이 일터에서 떠오릅니다. 보고서 한 줄도, 메일 한 통도 길어질수록 그만큼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 그림 이야기인데 일하는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대목이었어요.

38쪽에서는 세잔의 말이 인용됩니다. “모든 물체는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거기에 ‘기초 도형으로 단순화해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 그림이 훨씬 쉬워진다’는 해설을 덧붙여 두었습니다. 직육면체를 그릴 때 보이지 않는 뒷면까지 가상의 선으로 먼저 그어 보고, 그 다음에 그 선을 지운다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안 보이는 곳까지 한 번 헤아려 본 다음에야 보이는 부분이 자리를 잡는다는 뜻 같았거든요. 일도 사람도 결국 그런 식으로 이해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자연물 챕터의 덤불 그리기에서는 ‘자연물이므로 좌우 대칭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조언, 그리고 외곽선이 ‘너무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이 따뜻했어요. 행잉 식물 페이지에서는 잎의 외곽을 ‘세계지도를 그리듯 자연스럽게 만들어 달라’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정확함보다 흐트러짐을 허락하는 어조가 책 전반에 흐르고 있어서, 펜을 쥔 손이 자꾸 풀어집니다.

거리 요소 클래스는 표지의 세탁소 그림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장이에요. 에어컨 실외기, 환기 덕트, 목욕탕 간판, LPG 가스통, 버스 정류장 안내판처럼 평소엔 눈길 한 번 안 주던 사물들이 그림 소재로 줄지어 등장합니다. 환기 덕트 페이지에서는 굴곡진 원기둥 몸통을 ‘로봇 팔처럼 중간중간 분절되어 있다’고 묘사해 두었는데, 이 비유 하나만으로도 퇴근길 골목의 환기 덕트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LPG 가스통의 윗부분은 ‘아주 두꺼운 종이를 오래 말았다가 펼친 형태’라고 적혀 있고요. 동네 식당 앞에 무심히 놓여 있던 그 가스통도, 빛의 방향을 떠올리며 보면 입체가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인물 클래스에서는 188쪽의 팁이 가장 좋았어요. “얼굴의 캐릭터성을 살릴 때는 가장 특징적인 포인트를 강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자나 안경은 얼굴을 가리기 때문에 먼저 그리면 훨씬 쉽게 완성할 수 있습니다.” 닮게 그리려 애쓰기보다 그 사람의 한 가지를 골라낸다는 시선이 좋았습니다. 179쪽의 좌식 포즈 설명에서는 ‘다리가 다른 물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면 굳이 만들어 그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생략한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어요. 안 보이는 건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완벽주의로 자주 지치는 어른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후반부의 네거티브 스페이스 드로잉 장에서는 한 문장이 발을 멈추게 했어요. “주제를 살리고 싶을 때는 ‘무엇을 더 그릴까?’보다 ‘주변을 어디까지 덜어낼까?’를 먼저 결정해 보세요.” 더하는 일이 아니라 덜어 내는 일이 먼저라는 시선이에요. 이맘때쯤 되면 새로 쥐는 일보다 손에 든 것을 어떻게 내려놓을지가 더 큰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림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실전 클래스의 일본 주택 그리기 페이지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이어져요. ‘담벼락을 그리기 전에 나무 기둥을 먼저 그린다. 더 앞쪽에 있는, 가려진 부분이 없는 물체를 먼저 그리면 스케치를 훨씬 쉽게 완성할 수 있다’는 안내였는데요. 가까운 것부터 먼저 그린다는 단순한 원칙이, 일과 관계의 순서를 정할 때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싶었습니다.

따로 아쉬운 점이라 할 만한 부분은 없었어요. 굳이 한 가지를 적자면, 한 권에 워낙 많은 주제가 담겨 있다 보니 마음에 드는 챕터가 더 두꺼웠으면 싶은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라면 오히려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은 두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먼저, 학창 시절 교과서 귀퉁이나 연습장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게 좋았던 분들이에요. 그 시절의 손맛을 다시 꺼내 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분이라면, 도구부터 실전까지 한 권에 담긴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거예요. 다른 한 분은 매일 같은 출퇴근 길이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직장인입니다. 골목의 환기 덕트, 가스통, 정류장 안내판 같은 사물도 그림 소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익숙한 길이 조금은 새롭게 보이실 거예요.

5월 끝자락, 해가 길어져 퇴근 후에도 한참 동안 골목이 환한 계절입니다. 가방 옆 주머니에 작은 스케치북 한 권과 펜 한 자루를 슬며시 넣어 두는 일, 올해 제가 시작해 보려는 작은 일과예요. 동네 한 모퉁이에 잠시 앉아 세탁소 간판이든 자판기든 한 장 그려 보는 저녁이 생긴다면, 그날 하루는 평소보다 한 박자 천천히 흘러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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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후의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 - AI 시대, 부와 권력이 재편되기 시작했다
제이슨 솅커 지음, 김익성 옮김 / 더페이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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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들어 AI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합니다.

뉴스에서, 회사 회의실에서, 점심 자리에서 동료들의 입을 통해서요. 그중에서도 자꾸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는 ‘없어지는 직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는 회계 업무가 줄어든다고 했고, 누구는 신입 채용 자체가 멈췄다고도 했어요. 그 말들을 흘려듣지 못한 채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앞으로 5년, 10년 뒤의 자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두려움 반 궁금함 반으로 펼쳐 든 책이 <AI 이후의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였습니다.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았어요. 표지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짙은 우주의 어둠 위로 푸른 빛이 길게 번지는 장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구의 곡선 끝에서 작은 점이 반짝이는 모습이, 어떤 변곡점을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AI 시대, 부와 권력이 재편되기 시작했다’라는 카피와 ‘THE FUTURE AFTER AI’라는 영문 타이틀이 겹쳐지면서, 책장을 열기도 전에 묵직한 긴장감이 전해졌습니다.

저자 제이슨 솅커는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 1위 미래학자이자 미국 국방부와 CIA의 전략 자문을 맡아 온 인물입니다. 그런 이력 때문일까요. 책의 어조는 막연한 낙관도, 무서운 공포도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담담한 진단으로 일관합니다. AI를 도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로 정의하면서, 금융과 에너지, 기술과 의료, 교육과 비즈니스, 도시와 안보에 이르기까지 스물네 개의 장에 걸쳐 변화의 윤곽을 그려냅니다.


처음 눈이 오래 머문 곳은 4장이었어요. 저자는 생성형 AI를 ‘디지털 신입 분석가’에 비유합니다. 50쪽에서 그는 이 신입을 두고 ‘수십 개의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에 견줄 만큼 역량은 뛰어나지만, 이제 막 입사한 상태’라고 적어요. 사람을 뽑아 일을 가르쳐 본 적이 있다면 단번에 그림이 그려지는 비유입니다. 똑똑하지만 현장 감각이 없고, 그래서 시니어의 검토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 채용 공고, 마케팅 문안, 제안서, 표준 운영 절차, 법률 문서 초안, 보도자료, 프로젝트 계획안, 이메일까지. 사무실에서 마주하는 문서 업무가 거의 망라되어 있어요. 그래서 56쪽의 ‘맨땅에 헤딩하는 무모한 시간(blank-page problem)을 줄여 준다’라는 표현이 더 와닿았습니다. 빈 화면 앞에서 첫 줄을 쓰지 못해 머뭇거리던 그 막막함을, 어쩌면 다음 세대는 모르고 살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책의 진짜 무게중심은 9장과 10장에 있다고 봤습니다. 9장의 제목은 ‘AI 이후, 관계가 경쟁력이다’예요. AI가 무대 뒤편에서 업무를 가속하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오히려 사람의 존재감이 더 중요해진다는 진단이 이어집니다. 96쪽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AI 이후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치는, 사람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관계를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에서 비롯될 것이다.” 같은 페이지에 인용 박스로 강조된 세 줄은 더 단정합니다. “AI는 존재감을 대체하지 못한다. AI는 친밀감을 대체하지 못한다. AI는 관계를 대체하지 못한다.”


이어지는 일화도 오래 남았어요. 2009년 창업 직후 종잣돈이 4,400달러까지 줄었을 때, 저자는 마지막 자금을 쥐고 수백 통의 봉투에 손수 주소를 적고 손글씨로 명절 카드를 써 보냈다고 합니다. 99쪽의 짧은 세 줄이 그 장면을 압축해요. “그 카드들은 자동화되지 않았다. 최적화되지도 않았다.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100쪽에서 마침내 이런 결론에 닿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될 세상에서, ‘관계’야말로 우리가 경쟁 우위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이다.” 책상 앞에서 메일을 보내고 자료를 만들며 보내는 하루 가운데, 이 부분을 읽고 잠시 고개를 들었어요. 회사에서 제가 오래 쌓아 온 것은 결국 무엇이었나, 하는 물음이 따라왔습니다.

10장 ‘당신의 시간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는 더 개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102쪽에서 노동자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를 ‘시간당 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정의해요. 그리고 짝을 이루는 두 질문을 차례로 내놓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더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가치가 낮은 직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직무를 AI에 넘겨줄 수 있는가. 답을 내려면 자기 하루를 솔직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회의록 정리, 보고서 양식 채우기, 반복되는 메일 회신 사이에서, 정작 제가 가장 잘하고 가장 인정받았던 일은 어디에 끼어 있었는지 따져 보게 되었어요.


이 장의 마무리에 등장하는 표현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108쪽이에요.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이 구축한 네트워크(network)가 당신의 순자산(net worth)이 될 것이다.” 영문 발음이 비슷한 두 단어를 나란히 놓은 이 한 줄이, 40대 후반에 이르러 새삼 돌아보게 되는 ‘관계’라는 화두와 잘 맞물렸어요. 저자가 제안하는 실천법은 의외로 간결합니다.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 세 가지를 파악하고, AI로 저가치 업무를 위임해 일주일의 최소 10퍼센트를 확보하고, 그 시간을 다시 가장 가치 높은 활동에 투자하라는 것. 거창한 청사진이 아니라 ‘10퍼센트’라는 숫자로 내려앉는다는 점이 좋았어요.

3부와 4부는 시야를 한 단계 더 넓혀 줍니다. 17장에서는 B2B와 B2C를 지나 B2AI, B2A의 시대가 온다고 말해요. 169쪽의 단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래에는 당신의 고객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AI일 수도 있고, 디지털 에이전트일 수도 있으며,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일 수도 있다.” 회사 마케팅팀의 자료를 들여다보다가, 검색 엔진 최적화 다음 자리에 ‘AI 최적화’라는 단어가 놓이게 될 거라는 진단을 다시 곱씹게 되었어요.

22장 ‘리더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에서는 책의 어조가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저자는 미래 지향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자신조차 QR코드를 자연스럽게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솔직하게 적어요. 새로운 기술 앞에서 머뭇거리는 마음을 비웃지 않고, 오랜 습관과 부족한 시간 때문에 주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토닥이는 결이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단호해요. 209쪽의 소제목 그대로, ‘AI는 복잡하지 않지만, 선택 사항도 아니다’라고요. 211쪽에서는 저자가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신입 분석가에게 떠넘기던 업무를 이제 AI가 더 훌륭히,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해내고 있어서 몇 년째 신입을 채용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4장에서 시작된 ‘디지털 신입 분석가’ 비유가 여기서는 ‘실제로 신입을 뽑지 않는 회사’의 현실로 내려앉는 셈이에요. 이 대목에서 잠시 책을 덮어 두고 창밖을 봤습니다.


책의 끝자락에 자리한 PAR 프레임워크는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골프의 ‘파(par)’에서 영감을 얻은 이 모델은 준비성(Preparedness), 적응력(Adaptability), 회복력(Resilience)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220쪽에서 책은 비즈니스 리더의 핵심 과제를 세 줄로 압축해요. “AI 사용법을 익혀라. AI에서 가치를 뽑아내라. AI로 생산성을 끌어올려라.” 거창한 전략보다 이 단순한 세 줄이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읽는 내내 떠올린 사람들은 거창한 누군가가 아니었어요. 옆자리 동료, 작년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선배, 갓 입사한 후배.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여전히 어떤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을 저 자신이었습니다. 책의 메시지를 한 줄로 줄여 본다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으라는 협박이 아니라, 자기 시간의 무엇이 가장 값진지를 다시 들여다보라는 권유에 가까웠어요. 저가치 업무는 위임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 더 많은 시간을 쓰라는 조언은, 40대 후반의 회사원에게 오히려 다정하게 들렸습니다.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미국과 글로벌 시장의 사례가 중심이라, 한국의 산업 구조나 노동 환경에 곧바로 대입해 보기에는 더 많은 번역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큰 그림을 잡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어요.추천하고 싶은 두 그룹이 있어요. 한 그룹은 저처럼 앞으로의 자리가 막연히 걱정되는 40~50대 회사원입니다. 사라지는 직업의 목록 앞에서 불안해하기보다, 자기 업무의 어디에 시간을 다시 배분해야 할지 점검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에요. 다른 한 그룹은 작은 조직을 이끌고 있는 팀장이나 1인 사업자입니다. PAR 프레임워크와 ‘시간의 10퍼센트 재배분’ 같은 조언은 당장 다음 주 업무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라고 봤어요.


5월의 끝자락, 창밖으로 초여름의 기운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계절에 이런 책을 만난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어요. 다가올 변화가 두려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늘 하루의 시간을 어디에 흘려보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두려움 반 궁금함 반으로 펼쳤던 책장은, 결국 ‘무엇을 줄이고 무엇에 더 마음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 하나로 닫혔어요.


AI 이후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기술을 좇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시간을 다시 배치하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담담히 일러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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