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 하버드 최고의 뇌과학 강의
제레드 쿠니 호바스 지음, 김나연 옮김 / 토네이도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짙은 남색 표지 위로 점선으로 그려진 두 사람의 옆얼굴이 마주 보고 있고, 별이 흩뿌려진 듯한 배경 사이로 은은한 광택이 흐릅니다. 표지에 손을 얹는 순간 “꽤 묵직하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어요. 쪽수가 만만치 않고 두께도 상당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보다는 책상 위에 두고 며칠에 걸쳐 천천히 읽는 쪽이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제레드 쿠니 호바스 박사의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이야기예요.


이 책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대화법’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대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진단이에요. 그래서 호바스 박사는 커뮤니케이션의 토대를 ‘말솜씨’에서 ‘뇌과학’으로 옮겨놓습니다. 표지에 적힌 한 줄, “그 어떤 뛰어난 인공지능도 인간의 본성은 바꿀 수 없다”라는 문장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40대 후반에 접어들어 회의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진 제 입장에서, 가장 먼저 발걸음이 멈춘 곳은 5장 ‘일 잘하는 뇌를 찾아라’였습니다. 멀티태스킹은 환상이고 사실은 ‘작업 전환’이라는 이야기, 연습으로도 뛰어난 멀티태스커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단호한 결론이 나오는 장이에요. 저자는 카페에 앉아 ‘세상은 혼란스러운 곳이다’라는 문장을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옆 테이블의 수다,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 채드라는 남자가 떠드는 방과 후 활동 이야기까지, 그 모든 소음에도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해낸다는 거예요. 그 비밀이 ‘집중력의 필터’입니다. 3D 안경이 특정 파장의 빛만 통과시키듯, 뇌의 측면 전전두엽 피질에 ‘규칙 집합’이 탑재되면 필요한 정보만 들이고 나머지는 차단한다는 설명이지요. 1980년대 비디오 게임 카트리지에 빗댄 대목도 좋았습니다. 게임을 하려면 해당 카트리지를 끼워야 하고, 그제야 화면에 영웅과 악당, 무기가 떠오른다는 비유는 회의 자료를 펼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멀티태스킹에 초대하지 마라”라는 조언은 그대로 일터에 가져다 쓰고 싶었습니다. 발표 도중에 웹사이트 주소를 부르거나, 복잡한 그래프를 함께 풀게 하지 말 것.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스마트폰을 꺼두고 노트북 화면을 덮어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그동안 회의실에서 제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을 산만한 상태에 두고 발표를 시작했는지 떠올랐어요. ‘사건 제거’ 이야기는 또 어떻고요. 방에 들어서면서 내가 왜 들어왔는지 까먹는 그 흔한 순간을 뇌과학으로 풀어주는데, 책장을 넘기면 직전 문장을 잊어버리듯 출입구를 지나는 순간 뇌가 규칙 집합을 비워낸다는 설명에 헛웃음이 났습니다.


7장 ‘오류와 예측 사이’도 오래 머문 장이에요. 저자는 ‘I Love Paris in the the Springtime’이라는 삼각형 문장을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이 두 번 적힌 the를 알아채지 못하는데, 읽기에 대한 심성 모형이 워낙 강력해서 실제 단어가 아니라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읽어버린다고 해요. 일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이런 함정에 자주 빠지는 것 같습니다. 익숙함이 곧 정답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눈앞의 실제를 놓치게 되니까요.

저자가 심성 모형의 구식을 알아차리는 신호로 꼽은 것이 ‘오류’입니다. 오류는 그저 ‘모르는 것’과 다르고, 예측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알려주는 경보라고 해요. ‘오류 문화를 조성하라’라는 대목에서는 회사 생활을 한참 떠올렸습니다. 결과 중심 문화는 오류의 개인화로 이어져 위험 기피와 단절을 키우고, 과정 중심 문화는 노력과 실패, 성장과 숙련도를 강조해 협업을 끌어올린다는 정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활자로 읽으니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오류가 투명하게 받아들여질 때 사람들은 지식의 격차를 찾아내고, 호기심을 추구한다”라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비유도 따뜻했어요. 산타가 가공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존재가 통째로 지워지지는 않듯, 배움은 파괴적이지 않고 건설적이라는 것. 심성 모형은 대체되는 게 아니라 확장된다는 메시지는, 마흔 후반에 새로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한결 덜어주었습니다.


10장 ‘이야기로 랜드마크를 만들어라’는 발표와 보고가 잦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줄을 그어가며 읽게 될 장이에요.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속 에펠탑과 같다”라는 문장이 특히 좋았습니다. 휴대용 지도와 GPS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에 높은 탑이나 동상을 세워 방향을 가늠하는 랜드마크로 삼았는데, 이야기는 기억의 미로 안에서 그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쇼생크 탈출>을 보며 우리는 단지 수감 생활을 간접 체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한 감옥에서의 자유로운 탈출을 꿈꾼다는 대목, “이야기는 심리적·감정적 시뮬레이션을 주도한다”라는 문장은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왜 오래 남는지를 신경과학의 언어로 풀어줍니다. 옥시토신과 ‘신경 결합(neural coupling)’ 설명도 인상 깊었어요. 청중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면 그들의 뇌 패턴이 화자의 뇌 패턴을 모방하기 시작하고, 그 순간 서로에게서 배우며 호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자가 “최고의 작가는 최고의 스토리텔러임을 잊지 마라”라며 동시에 전문가에게는 이야기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균형을 잡아주는 부분도 신뢰가 갔습니다.

11장과 12장은 책의 후반부를 담담하게 닫아주는 장이에요. 저자는 ‘감정’과 ‘느낌’을 구별합니다. 감정은 심장의 두근거림과 가쁜 호흡 같은 몸의 신호고, 느낌은 그 신호에 대한 마음의 해석이라는 설명이 명료했어요. 같은 두근거림을 두려움으로 해석할지 설렘으로 해석할지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 ‘지식과 기억에 다양한 감정을 연결하라’는 대목은 한 가지 감정에만 묶여 학습한 정보가 평소엔 잘 꺼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회사에서 받은 교육이 막상 현장에서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어요.

12장의 망각 곡선 이야기는 위로에 가까웠습니다. 저자는 망각을 ‘사라지는 구름’으로 떠올리는 비유가 정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기억은 오히려 밀림 속 오두막과 같아서, 발길이 끊기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거예요. 수십 년 동안 잊고 있던 고등학교 졸업 파티가 어떤 연상 하나로 생생히 떠오르는 것처럼, 흐릿해진 기억도 작은 신호 하나면 다시 길을 낼 수 있다는 문장은 마흔 후반의 독자에게 든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이야기, 24시간 뒤 70퍼센트를 잊고 일주일 뒤에는 20퍼센트만 남는다는 결과, 그리고 핵심은 ‘얼마나 외우느냐’가 아니라 ‘연습 시간을 어떻게 짜느냐’라는 결론은 자기계발서의 표지 카피보다 훨씬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니, 두께와 무게가 새삼 손에 남았습니다. 한 번에 끝낼 책이 아니에요. 시간 여유를 두고 한 장씩, 천천히 곱씹어야 제 몫을 합니다. 출퇴근길의 가벼운 읽을거리로는 권하지 않겠어요. 주말 오전 책상 앞에서, 메모지와 함께 펼쳐두기를 권합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으라면 그 정도. 그 외에는 흠잡을 곳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먼저, 발표와 보고, 교육과 코칭처럼 ‘사람을 가르치고 설득하는 자리’에 자주 서는 직장인에게 . 슬라이드를 어떻게 짤지, 회의를 어떻게 열지, 후배에게 피드백을 어떻게 줄지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가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기억력과 집중력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안고 있는 40대 이후의 독자에게도. 망각을 사라짐이 아니라 ‘가려짐’으로 다시 정의해 주는 12장의 비유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값을 합니다.


5월 끝자락, 창문을 열면 초여름의 더운 공기가 슬그머니 밀려 들어옵니다. 한낮의 햇살이 점점 진해지는 이 무렵, 진한 커피 한 잔과 두툼한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려두는 시간은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져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회의실의 풍경과 보고서의 문장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일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신경과학의 언어로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설득의 자리에 자주 서는 직장인을 위한, 담담하고 단단한 뇌과학 안내서.

#사람은어떻게생각하고배우고기억하는가 #제레드쿠니호바스 #토네이도 #뇌과학책 #뇌과학교양서 #직장인독서 #북유럽카페서평단 #서평 #서평블로그 #독서기록 #신경과학 #멀티태스킹 #집중력 #기억력 #학습법 #커뮤니케이션 #리더십책 #초여름독서 #책추천 #BOOKULOVE서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