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아비투스
박치은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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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택배 상자를 열고 한 권을 꺼내 든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검정 띠지의 “대한민국 최상위 0.1%는 이 사람을 곁에 둔다”라는 한 줄이었어요. 금빛 대칭 문양이 만다라처럼 펼쳐진 표지 위에 그 문장이 얹혀 있으니, 마치 쉽게 열어볼 수 없는 시크릿북을 건네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저 안에 그들만 알고 있는 무언가가 담겨 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 그게 가장 먼저 찾아온 인상이었어요.


<하이엔드 아비투스>는 연매출 330억 규모의 아울디자인을 키워낸 박치은 대표가, 일용직 노동자에서 출발해 상위 0.1%의 세계로 발을 들이며 직접 체득한 통찰을 풀어낸 도서입니다.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에 왜 격차는 더 벌어지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요. 저자가 내놓는 답은 분명합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정보가 아니라 ‘아비투스’, 즉 몸에 밴 태도와 감각, 그리고 관계를 설계하는 힘이라는 것이지요.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정보’를 모으는 일에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유튜브를 켜면 누구나 비슷한 인사이트를 떠들고, 검색 한 번이면 어지간한 노하우는 다 나오는 시대잖아요. 그런데도 왜 어떤 사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어떤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걸까. 이 책을 집어 든 건 그 답답함에 대한 작은 단서를 얻고 싶어서였습니다.


가장 마음에 오래 머문 챕터는 ‘수천억 부자들의 밀실: 그들은 정보가 아니라 아비투스를 거래한다’ 였어요. 저자는 매출 100억 이상이라야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자리에 발을 들이면서, 게임의 룰이 통째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적습니다. “바닥에서는 내가 얼마나 일을 꼼꼼하게 잘하느냐, 하는 본질로 승부가 났다면, 꼭대기에서는 ‘내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관계가 모든 판을 결정짓는다.” 이 문장에서 한참을 멈췄어요. 회사 실무진이 몇 주를 매달려도 풀리지 않던 비즈니스의 빗장이, 골프장에서 이너서클 멤버의 전화 한 통으로 풀려버린 일화. 저자가 다음 모임을 자청해 청담동의 한 스테이크 하우스를 통째로 예약하고 600만 원을 결제했다는 장면. 처음엔 ‘저런 세계가 따로 있구나’ 싶었는데, 다시 읽다 보니 결국 핵심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먼저 내어주는 태도’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어 읽은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는 당신이 평생 가난한 이유’ 챕터에서는 마음이 따끔했어요. 저자가 모셨던 사수의 일화가 등장하는데, 업계의 디테일을 완벽하게 꿰고 있던 에이스였지만 “야, 빨리 집에 가자. 어차피 통장에 꽂히는 월급은 똑같은데 뭐 하러 뼈 빠지게 일하냐? 적당히 해, 적당히”라고 말하던 사람. 저자는 그 사수를 불과 6개월 만에 앞질러 버렸다고 적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비슷한 풍경을 자주 봐요. ‘월급 받은 만큼만’이라는 말이 어느새 세련된 처세술처럼 통하지만, 그 안에 어떤 한계가 숨어 있는지 저자는 매섭게 짚어냅니다. “월급은 회사가 정해주는 것이지만, 내 몸값은 내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며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이 멈춰있으면 10년을 일해도 1년 차와 똑같은 결과물만 찍어낼 뿐이다”라는 대목에서는, 저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됐습니다.


세 번째로 펼친 ‘AI가 기획서를 3초 만에 쓰는 시대, 끝까지 살아남을 대체 불가함’ 챕터는, 요즘 회사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화두이기도 했어요.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 보면 “이러다 우리 자리도 AI한테 다 넘어가는 거 아니냐”는 말이 농담처럼 오갑니다. 저자의 답은 단호해요. 마우스로 도면에 선을 긋고, 시키는 대로 문서를 타이핑하고, 매뉴얼대로 결과물을 찍어내는 수준이라면 정말 AI에게 잡아먹힐 거라는 것. 하지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오가는 진짜 판에는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합니다. 정서적 교감과 불안의 해소, 안목과 디렉팅 능력, 그리고 ‘비합리적인 미련함’. 특히 마지막 대목이 오래 남았어요. 러브하우스 프로젝트의 기획안을 AI에게 결재 올렸다면 “수익 창출 모델 없음, 회수 불가능, 당장 폐기하십시오”라는 차가운 답이 돌아왔겠지만, 인간이기에 그 미련한 결정을 기꺼이 내렸고 그것이 결국 협회를 탄생시킨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 “기계적인 스킬의 장벽이 커져가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것들의 가치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세 챕터를 다 읽고 나니, 저자가 말하는 ‘하이엔드 아비투스’가 한 줄로 모이는 듯했어요. 본질은 태도에서, 관계는 먼저 내어주는 자세에서, 영향력은 AI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무게에서 자란다. 거창한 비법서를 기대하고 펼쳤다가, 오히려 가장 단순한 자리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물론 모든 독자에게 똑같이 다가오는 도서는 아닐 거예요. 저자의 사례가 인테리어 업계와 사업가의 시점에 집중되어 있어서, 일반 직장인의 일상에 그대로 옮겨 쓰기엔 거리가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어요. 다만 ‘업의 본질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직군과 상관없이 같은 자리에 서게 되더군요. 회사에서 후배들과 회의를 하다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자료에 한 줄을 더 채워 오는 사람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 한 줄이 결국 그 사람의 ‘몸값’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또렷하게 느꼈습니다.


서평단으로 한 권을 받아 든 덕분에,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결의 도서를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시크릿북 같다’는 느낌은, 다 읽고 난 뒤에는 ‘다행히 늦지 않게 열어봤다’는 안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5월의 끝자락, 창문을 열면 초여름의 공기가 먼저 들어오는 계절이에요. 한 해의 절반을 앞두고 일과 사람을 한 번쯤 정리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하이엔드 아비투스>가 좋은 거울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매일의 출근이 익숙해져 어느 순간 ‘적당히’라는 말에 길들여진 분께, 그리고 AI 시대 앞에서 내 자리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막막해진 분께도 조용히 건네고 싶은 한 권이에요.


정보가 아니라 태도가 거래되는 세계가 있다는 것, 그 입구는 결국 내가 일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 열린다는 것. 이 도서가 남긴 가장 큰 울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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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는 감정의 비밀
판도라 킴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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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은 표지에 붉은 자물쇠와 열쇠가 박힌 한 권이 책상 위에 놓인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 평소와 조금 다르게 흘렀어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은 <운명을 바꾸는 감정의 비밀>은 보통 두께인데도 손에 쥐었을 때 묘하게 묵직했습니다. 사방으로 뻗은 별빛 같은 선들과 가운데 자리 잡은 자물쇠를 보고 있으면,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오래된 마법 서적을 받아 든 기분이 들었어요. 표지에 적힌 ‘감정의 비밀을 이해한 자만이 행복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는 문장도 그 인상에 한몫했습니다.


저자 판도라 킴은 감정을 ‘통제 대상’이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으로 다시 정의해요. 처음에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렸는데, 2장 ‘감정의 실체는 에너지다’를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자연 풍경 앞에서 까닭 없이 회복되는 느낌, 다정한 말 한마디에 심장이 따뜻해지는 감각,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에 가슴이 쿡 쑤시는 통증. 이런 일상의 장면들을 모두 ‘에너지가 닿거나 심장을 관통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풀어내는 대목에서, 막연하게 흘려보냈던 것들이 비로소 말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깊은 바닷속 해류가 저마다의 길로 움직이듯 감정 에너지도 허공을 흘러 다닌다는 비유도 오래 곱씹게 됩니다.


특히 ‘공간에도 감정 에너지가 쌓인다’는 설명에서 한참 멈춰 섰습니다. 회의실에 들어서기만 해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날이 있고, 별 이유 없이 진이 빠지는 자리도 있더라고요.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날의 공기가 어딘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게 가족 구성원이 살아오며 누적시킨 감정의 흔적이라는 해석은 새로웠습니다. 평소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분위기에 이름을 붙여 주는 안내서로 읽혔어요.


3장 ‘긍정 마인드가 위험한 이유’는 이번 도서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챕터예요. 흔히 자기계발서가 외치는 ‘좋게 생각해, 긍정적으로 봐’라는 권유를 정면으로 짚는 부분입니다. 저자는 좋은 감정이 우리를 용감하게 만든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무지성 긍정 마인드는 부정적인 감정을 거부하거나 억누르는 습관으로 이어진다고 말해요. 그 결과 감정이 보내는 직감의 신호를 놓치고, 이미 생긴 감정을 방치하고 저장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요.


저를 가장 멈춰 세운 건 ‘24시간 중 10분 동안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했다면 나머지 23시간 50분 동안 느껴버린 부정적인 감정은 어쩔 것인가’라는 대목이었어요. 직장 다니고 가정 돌보는 일과 속에서 종일 자기 생각을 감시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이 꽤 따끔하게 와닿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좋게 생각할게요’로 회의를 마무리한 뒤 퇴근길에 따라붙는 묘한 무거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NO를 삼킨 자리에 남는 찜찜함. 그동안 제가 다 처리했다고 믿었던 마음들이 사실은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었던 거예요.


이 챕터에서 가장 좋아하는 비유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섯 살짜리 아이의 울음에 빗댄 부분입니다. 드러누워 우는 아이에게 훈계부터 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니, 먼저 달래고 충분히 표현하도록 기다려 줘야 점차 비워지고 차분해진다는 설명이었어요. 머리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결심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이유를 이만큼 친절하게 풀어낸 글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저자는 ‘긍정적인 생각은 머리로 하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마음으로 느낀다’는 구분으로 이 대목을 마무리하는데, 두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 받아들여도 자신을 덜 다그치게 되더라고요.


5장 ‘자기혐오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에 이르러서는 책장을 넘기던 손이 한 번씩 멈췄습니다. 저자는 자기혐오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다루지 못해서 생긴다고 말해요. 원하는 것을 빨리, 쉽게 가지려는 마음 때문에 자신을 도구처럼 채찍질하다가, 결과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진단입니다. 빨리 해내라고 협박하는 것도 자신이고, 그 협박에 위축되는 것도 자신이라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췄어요.


40대 후반쯤 되면 ‘쓸모’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연봉이 그렇고, 인사평가가 그렇고, 또래와의 비교가 그렇고요. 어느새 스스로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숲 한가운데 피어난 작은 새싹에게 우리는 쓸모를 논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자연을 이루는 식물과 동물과 햇살 한 줌에 쓸모를 묻지 않듯, 한 생명에게 존재의 쓸모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얼마나 몰상식한지 일깨워주는 대목이에요. 자기사랑이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는 단언도, 평소 같으면 슬쩍 흘려들었을 텐데 이번에는 마음에 박혔습니다. 챕터 후반에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결의 자기 선언문도 등장하는데, 책상 앞에서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보게 되더라고요.


물론 모두에게 같은 결로 닿을 도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감정을 에너지로 풀어내는 시각이 어떤 분께는 신비롭게, 어떤 분께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다만 ‘긍정 마인드가 왜 한계가 있는지’, ‘자기혐오의 진짜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짚는 부분은 결이 다른 독자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서평단 활동을 하며 여러 도서를 만나는 동안, 이 한 권은 ‘덮어두었던 감정을 한 번쯤 정리해 보라’는 신호처럼 다가왔어요. 일에 치여 미뤄두었던 마음의 정리를 잠시나마 해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회의실에서 늘 ‘괜찮다’고 답하고 퇴근길에 까닭 모를 피로를 끌고 가는 직장인 분이라면 이 도서가 잘 맞을 것 같고요, 자기계발서를 꽤 읽었는데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남아 있는 분께도 가만히 권해보고 싶어요.


5월 끝자락의 저녁 공기가 제법 부드러워졌습니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표지를 펼치고 있으면, 그동안 어디에 쌓아 두었는지도 몰랐던 마음들이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한 번쯤 마음을 비워내고 싶은 분이라면, 자물쇠가 그려진 표지를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작이 될 거예요.


감정을 다스리려 애쓰기보다, 먼저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게 해준 한 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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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더의 언어 공식
윤상명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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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말’이 일보다 어렵다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보고서 한 장을 다듬는 일보다 회의 자리의 한 문장을 고르는 일이 늘 더 무겁게 느껴졌어요. 팀원에게 어떻게 짚어야 할지, 타 부서의 날 선 질문을 어떻게 받아낼지 망설이는 동안 한참 머뭇거리던 순간들. 사회생활 20년 차가 넘었는데도 이 영역만큼은 여전히 매끄럽지 않습니다.


<1% 리더의 언어 공식>은 그런 매일의 어려움을 정면으로 다룬 안내서였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아 든 표지에는 흰 바탕 위에 우뚝 선 검은 킹 체스 말과, 그 꼭대기에 선 작은 인물 실루엣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라는 큰 숫자와 금색 장식 프레임이 만나니, 부자들만 들춰볼 법한 비밀 노트를 슬쩍 열어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상위 1%의 사고가 담긴 고급스러운 문서를 받아 든 것 같은 호기심 하나로 첫 장을 넘겼습니다.


저자 윤상명은 LG유플러스에서 B2B 입찰 제안 컨설턴트와 사내 커뮤니케이션 강사로 일하는 ‘언어 전략가’입니다. CEO 회의와 타운홀 미팅 같은 탑 레벨 행사의 진행을 도맡으며, 위기와 기회의 순간에 1% 리더들이 어떻게 말로 판을 뒤집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해 온 사람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도서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화술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깎고 다듬은 ‘실전 무기’의 결을 띱니다.


가장 먼저 멈춰 선 곳은 챕터 2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목소리 톤을 낮추는 이유’였습니다. 위기의 순간, 하수는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만 1% 고수는 정반대로 톤을 한 단계 낮추고 말의 속도를 늦춘다는 이야기. 분노로 높아진 하이톤의 목소리를 저자는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통제력을 잃었다고 자백하는 적색경보’라고 규정합니다. 이 한 줄을 읽고 한참을 멈췄어요. 살면서 적색경보를 켜고 자리를 가로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가트맨 박사의 ‘5:1 법칙’도 이 챕터의 단단한 뼈대였습니다. 안정적이고 화목한 관계는 긍정과 부정의 상호작용이 5대 1의 비율을 이룬다는 연구. 한 번 화풀이를 쏟아내면, 원래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소 다섯 번의 진정성 있는 긍정 신호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가뜩이나 챙길 일이 많은 리더가 자기 감정 수습을 위해 5배의 에너지를 추가로 써야 한다는 대목에서, 저자는 이를 ‘끔찍한 비효율’이라 잘라 말합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비효율의 청구서를 한 번쯤 받아봤을 거예요.


저자의 신입 시절 일화도 오래 남았습니다. 공공영업 담당이던 그가 고객사에 정책을 잘못 안내해 수백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흔들릴 뻔했던 날, 호통을 예상하고 호출에 응했지만 리더는 변명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 약 5초의 침묵 뒤에 평소보다 낮고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신입사원이면 정책을 헷갈릴 수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실수를 혼내는 게 아니라, 이 잘못된 정보가 고객사 예산 집행에 어떤 연쇄적인 타격을 주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겁니다. 차분하게 같이 해결해 봅시다.”


저자는 이 장면을 ‘맹수가 사냥감을 노릴 때 시끄럽게 울부짖지 않고 몸을 한껏 낮춘 채 고요하게 접근하듯’이라고 표현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이 결국 상대를 압도하고, 기꺼이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는 통찰. 저도 신입 시절 비슷한 자리에서 낮은 목소리에 압도되어 본 적이 있어서, 그 서늘한 든든함이 어떤 감각인지 알 것 같았어요.


같은 챕터의 베트남 나트랑 리조트 일화도 인상 깊었습니다. 객실 문고리에 흔히 걸린 ‘Do Not Disturb’ 대신 ‘I am busy relaxing(나는 지금 휴식에 집중하는 중입니다)’이라 적혀 있더라는 이야기. 같은 목적인데 결이 완전히 달라요. 전자가 외부를 향한 명령, 즉 ‘너 중심의 언어’라면 후자는 자신의 상태를 또렷이 선언하는 ‘나 중심의 언어’입니다. 상대를 통제하려 들지 않고도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거절의 순간마다 떠올리고 싶은 화법이었습니다.


챕터 3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YES, IF’ 화법이에요. 발표장에서는 ‘YES, BUT(인정 후 반박)’이 유효하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는 회의 자리에서 리더가 이를 남발하면 ‘조직의 입을 틀어막는 가장 우아하고 치명적인 독약’이 된다는 지적. 사람의 뇌는 ‘하지만’이라는 역접 접속사를 듣는 순간, 앞에 놓인 긍정을 통째로 지워버린다고 합니다. ‘BUT은 앞의 YES를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지우개다’라는 한 줄이 오래 남았어요.


대안으로 제시되는 ‘YES, IF’는 결이 사뭇 다릅니다. ‘BUT이 대화의 셔터를 쾅 닫아버리는 마침표라면, IF는 닫힌 문을 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열쇠이자 가능성’이라는 표현이 깔끔합니다. 책에서는 팝업 스토어 인플루언서 섭외 아이디어를 두고,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잘라내는 하수형 대화 대신 ‘예산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도 인플루언서가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 명분이나 제휴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면, 한번 같이 고민해 볼까요?’라며 공을 다시 상대 코트로 넘기는 장면을 비교해 보여줍니다. YES, BUT의 세계에서는 책상을 마주 보고 대립하지만, YES, IF의 세계에서는 나란히 앉아 ‘현실적인 조건’이라는 공동의 적과 함께 싸우는 한 팀이 된다는 비유. 다음 회의 자료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대목이었어요.


챕터 4의 ‘GPS 화법’은 팀원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갈 만한 도구라고 느꼈습니다. 흔히 정석이라 불리던 ‘샌드위치 화법’을, 저자는 요즘 조직에서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리는 낡은 방식이라고 짚어요. 앞뒤로 덧붙인 영혼 없는 칭찬은 ‘진짜 비판을 위해 깔아놓은 밑밥’으로 읽히고, 정작 전달되어야 할 개선점은 빵 사이에 묻혀 눅눅해진다는 분석. 머쓱했습니다. 저도 칭찬-지적-칭찬의 공식을 꽤 오래 써왔거든요.


GPS는 세 단계로 움직입니다. G(Great·과거)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들인 ‘보이지 않는 노력’을 읽어주는 따뜻한 온도. P(Position·현재)는 사람과 문제를 분리해, CCTV가 상황을 녹화하듯 주관적 형용사를 빼고 사실과 데이터로 ‘간극’만 짚어주는 차가운 온도. S(Solution·미래)는 ‘다시 제대로 해와’ 같은 뭉툭한 지시 대신, 내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 행동을 함께 그려주는 뜨거운 온도. 책에서는 이를 두고 ‘리더의 피드백은 상대방의 아픈 곳을 찌르는 뾰족한 무기가 아니라, 엇나간 방향을 바로잡아 목적지까지 무사히 안내하는 정확한 GPS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정리합니다.


특히 태도 피드백 예시가 가슴에 박혔어요. 타 부서 회의에서 공격적으로 말한 팀원에게 ‘성격이 문제다, 둥글둥글하게 좀 해’라며 인격을 건드리는 하수형 대신, ‘우리 팀 입장을 대변해 논리적으로 대응해 준 부분은 든든했다’고 의도부터 인정한 뒤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인 행동’이라는 팩트만 짚고, 다음 자리에서 쓸 ‘그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이라는 구체적 문장까지 손에 쥐여 주는 장면. 성격이 아니라 행동을 짚는다는 원칙, 그리고 다음 회의에서 쓸 말을 미리 코칭한다는 발상이 단단했습니다.


읽는 내내 떠오른 건 회의 자리의 제 모습이었어요. 팀원의 보고서가 방향에서 한참 벗어났을 때 저는 어떤 첫마디를 골랐는지, 타 부서의 날 선 질문 앞에서 톤을 올렸는지 낮췄는지, 거절의 자리에서 ‘안 돼요’라고 잘라버린 적은 없는지. 이 도서는 답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 말의 습관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안내서를 만난 건 운이 좋았다고 느낍니다. 마침 팀 안에서 후배 한 명과의 피드백 자리를 앞두고 있었고, GPS의 세 단계를 머릿속에 미리 그려둔 채 그 자리로 들어갔거든요. 결과적으로 그날의 대화는 평소보다 한결 덜 무거웠습니다. 서평단 일정이 아니었다면 이 도서를 이렇게 빨리 펼쳐 들지 못했을 거예요.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사례가 비즈니스 최전선의 임원·리더 시점에 맞춰져 있어, 위계가 평평한 작은 조직이나 1인 사업자에게는 거리가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말’이라는 도구의 원리를 다루기에, 자기 상황에 맞춰 옮겨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5월 끝자락의 햇살이 길어졌습니다. 퇴근길 창문을 살짝 내리면 바람에 여름의 기척이 섞여 들어오는 계절. 이맘때면 한 해의 반환점을 앞두고 자기 자리를 한 번쯤 점검하게 되는데, 이 도서가 그 작업에 조용한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자꾸 목소리가 높아지는 자신이 걸리는 분, 후배 피드백이 매번 무겁게 느껴지거나 거절 한마디에 며칠을 끙끙대는 분께 조용히 건네고 싶은 안내서입니다. 추천합니다.


한 줄 요약: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톤을 낮추는 법, 잘라내는 대신 문을 여는 법을 가르쳐 주는 단단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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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의 기술 - 사람이 힘든 나를 위한 심리 처방전
후션즈 지음, 정은지 옮김 / 지니의서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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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처럼 햇살이 길어지는 초여름이 오면, 퇴근길에 문득 하루를 곱씹게 되는 순간이 늘어납니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흘리듯 한 말이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을 때쯤 다시 떠오르고, 메신저 끝에 붙은 작은 이모티콘 하나가 마음에 걸려 한참 들여다보기도 하지요. 마흔을 넘기고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예전처럼 부딪히기보다는 슬그머니 비켜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비켜섬이 늘 편하지만은 않아요. 나이 많은 분께 받는 상처도 여전히 따끔하고, 나이 어린 후배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살짝 베이는 날이 있거든요.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의 기술>은 그런 저녁에 펴 들기 좋은 도서였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나게 된 한 권인데, 받았을 때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왔어요. 파란 우산 아래로 사람들이 각자의 보폭으로 걸어가고 그 위로 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그림이, 같이 있지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우리 모습 같아서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고 중간중간 일러스트가 자리해서, 퇴근 후 흐트러진 집중력으로도 천천히 읽어나가기 좋았어요.


저자 후션즈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관계 심리학자라고 해요. 1만 5천 시간이 넘는 상담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관계의 장면들을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들려줍니다. 어려운 이론서가 아니라 실제 상담 사례를 중심에 두고 풀어가니, 직장인의 시선으로도 자연스럽게 따라 읽혔어요.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스스로 건네는 위로가 자신을 키운다’라는 챕터였어요. 칭찬을 받으면 오히려 말문이 막히고, 일이 잘 풀리고 있으면서도 굳이 허점을 찾아내 책잡힐 이유를 만들어버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이를 ‘부정적 나르시시즘’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짚어줘요. 자기를 부정하는 습관 또한 자기에게 깊이 매달려 있는 형태라는 통찰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끝에 적힌 “‘괜찮아!’라고 스스로 건네는 위로가 자신을 성장시킨다”라는 문장에 한참 시선이 머물렀어요. 회사에서 작은 실수를 했을 때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매섭게 다그치는 습관이, 어쩌면 오래된 어떤 결핍에서 자라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펼친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벗어라’ 챕터도 마음에 깊이 남았어요. 거절을 못 해 끊임없이 베풀지만, 결국 ‘만만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속앓이를 하는 사례가 나옵니다. 저자는 그 가면 뒤에 숨은 네 가지 감정인 두려움, 슬픔, 낙담, 애석함을 차례로 짚어주는데, 특히 “억지로 감행한 희생에는 기쁨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따끔했어요. 직장에서 거절 한 번 못 하고 일을 떠안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혼자 억울해하던 어느 날이 떠올랐습니다. 왕과 환관의 비유도 흥미로웠어요. 환관이 왕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과 복종일 뿐이라고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는 일이, 진심처럼 보여도 실은 두려움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오래 남았어요.


뒷부분으로 갈수록 인상 깊었던 챕터는 ‘경쟁과 적대에서 등을 돌려라’였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던지는 “당신은 모든 이의 과녁인가”라는 물음이 가만히 와닿았어요. 누가 나를 겨냥한다고 느낄 때, 사실은 각자 자기 일조차 감당하지 못해 허덕이느라 누구를 향해 총구를 겨눌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지요. 회의실에서 누군가의 짧은 표정을 곱씹으며 ‘혹시 나 때문인가’ 되묻던 날들이 생각났어요. 후반에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는 장면이 특히 따뜻했습니다. 동료와 크게 싸우고 한 달간 서로를 무시하던 시기에, 일을 하다 다친 자신을 그 동료가 망설임 없이 업고 병원으로 데려갔다는 이야기예요. 왜 도와줬느냐고 물었더니 “즉시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라고 답했다는 대목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회복이 거창한 화해의 말이 아니라 그 짧은 몇 분의 진심에서 시작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 안내서가 거듭 강조하는 메시지는 결국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에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만 마음을 두면, 결국 자기만 보게 되고 상대는 ‘내 상태를 점검하는 도구’로 줄어들어 버린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누구도 도구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관계는 멀어진다는 거예요. 이 문장을 읽고 나니, 그동안 제가 사람을 만나며 사실은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만 따지고 있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십대 후반의 자리에서 보면, 관계라는 것은 자꾸 가지치기를 하게 되는 시기예요. 부딪히기보다 비켜서고, 깊이 다가가기보다 거리감을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런데 이 도서는 그 거리감의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 비춰주더라고요. 누군가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성숙해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오래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고요. 그러면서 그 두려움을 다그치기보다, 먼저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일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고 권합니다.


서평단으로 한 권을 천천히 읽어가는 동안, 회사에서 마음이 무거웠던 며칠을 이 표지와 함께 지나왔어요. 책장을 덮고 출근하던 아침이면, 누군가의 말투에 곧장 마음이 흔들리는 대신 ‘저 사람도 자기 일로 바쁘겠지’라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가벼웠습니다.


오래 직장 생활을 하며 사람 때문에 자주 지치는 분께, 그리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자신을 자꾸 뒤로 미루는 분께 가만히 건네고 싶은 한 권이에요. 정답을 알려주는 종류는 아니지만, 잠깐 멈춰 서서 자기 안쪽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시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초여름 바람이 들어오는 저녁,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옆에 두고 표지를 펼쳐 보세요. 다 읽고 나면, 내일 아침 출근길의 마음 한 칸이 조금 더 너그러워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말은 단단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게 되는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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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 쇼펜하우어와 함께 이겨내는 삶의 고통
강산 지음 / 알토북스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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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스무 해 가까이 회사를 다녀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게 있어요. 사람이 바뀌어도, 부서가 바뀌어도, 갈등은 비슷한 얼굴로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이요. 한동안은 제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고, 또 한동안은 운이 없어서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게 정말 저 한 사람의 문제일까 하는 의심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했어요.


서평단으로 받은 강산 작가의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를 펼친 건 그런 마음이 머물러 있을 때였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도착한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격자 안에 또박또박 놓인 제호와 ‘쇼펜하우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쇼펜하우어는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짧은 명언으로 자주 마주쳤던 이름이라, 그 단어가 표지에 또렷이 박혀 있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생기더라고요. 나이를 먹어 갈수록 마음 깊이 새기게 되는 문장들이 그분에게서 많이 왔다는 것도 떠올랐고요. 두께가 부담스럽지 않아서, 퇴근 후 짧은 시간을 모아 수월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점도 좋았습니다.


이 도서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겪는 피로가, 정말 나의 문제일까 하는 거예요. 저자는 그 답을 ‘구조’에서 찾습니다. 사무실은 협력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은 각자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무대에 가깝다는 거죠. 그 위에서 사람들은 상사·부하·동료·경쟁자라는 역할에 몰입하고, 본래의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갈등이 예외가 아니라 필연이라는 분석이, 묘하게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어요. 따뜻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정확한 설명이 더 큰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자리는 ‘타인의 평가는 그 어떤 기준도 되지 않는다’는 챕터였어요. 회사에서 ‘세평(世評)’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겁게 작동하는지를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느껴 봤을 거예요. 공식 기록도 아닌데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그 흐릿한 평가요. 저자는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관계와 감정이 반영된 해석의 총합에 가깝다”고 짚어 줍니다. 어제의 지지자가 오늘의 비판자가 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문장 앞에서 잠시 멈췄어요. 회의실에서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 마음이 흔들렸던 날들이, 사실은 그 동요 자체가 자연스러운 거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사형수의 일화도 오래 남았어요. 사형 집행일 아침, 사제의 마지막 설교에는 무심했던 한 사람이 교수대에 오르며 군중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는 장면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끝내 놓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정리해요. “이 사형수의 행동은 용기의 표현이라기보다, 인정 욕구가 만들어 낸 마지막 연출이다.” 평가에 휘둘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결국 어딘가에서는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쥐고 있는 제 모습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2장의 ‘평균이 기준이 될 때 고독은 필연이 된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집단은 ‘다르다’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중심으로 경계를 만들고, 그 사람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응집력을 강화한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뛰어난 성과나 자기만의 잣대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균형을 깨뜨리는 변수로 취급된다는 문장은,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부딪혀 본 풍경일 거예요. 그런데 저자가 곧이어 건네는 한 줄이 있습니다. “고독은 이들에게 외로움이 아니라, 소음이 제거된 상태에 가깝다.” 외로움과 고독이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걸, 이렇게 또렷하게 갈라 준 글은 오랜만이었어요. 외로움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상실이라면, 고독은 능동적으로 선택된 거리라는 정의도 함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는 무게의 위치를 조용히 옮겨 갑니다. 오랜 시간 책임을 다해 왔는데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조직에서는 대체 가능한 인력처럼 느껴지고, 가정에서는 이미 역할을 다한 존재로 인식되는 순간이 온다고요. 그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살아왔는가?”에 저자는 섣부른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쇼펜하우어가 행복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외부 조건이 아닌 ‘자아’ — 성품과 기질, 지적 역량 — 를 꼽았다는 점을 차분히 일러 줄 뿐이에요. 외부 조건은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내적 구성은 오래 지속되며 삶의 질을 더 깊게 규정한다는 설명 앞에서, 그동안 제 무게중심이 너무 바깥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에필로그의 한 문장은 저자가 건네고 싶었던 말을 한 줄로 모아 줍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 살아가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니 갈등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킬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자도 자신이 성격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기준 하나가 생겼을 뿐이다”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잣대 하나가 생기는 일, 어쩌면 마흔 후반에 가장 필요한 변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평단으로 이 도서를 받아 든 시점이 마침 조직 개편 이야기가 슬슬 들려오던 무렵이었어요. 누가 어디로 간다더라, 누구의 평가가 어떻다더라 하는 말들이 사무실 공기에 옅게 떠다닐 때, 한 권이 곁에 있어 줘서 다행이었습니다. 들려오는 말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외부의 인식과 무관하게 제 속도를 유지해도 괜찮다는 것을, 서평을 쓰는 동안 조금씩 다시 익히게 됐어요.


5월 말이 되니 사무실 창밖으로 초록이 부쩍 짙어졌습니다. 퇴근길 햇살은 길어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조용한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고 싶은 시기예요. 바깥의 시선에 오래 흔들려 왔다면, 어느 저녁 사무실에서 문득 ‘나는 대체 가능한 사람일 뿐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멈춰 선 적이 있다면, 이 도서를 천천히 펼쳐 보셔도 좋겠어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책은 아니지만, 정확한 설명이 어떤 위안보다 더 단단하게 곁을 지켜 준다는 걸 알려 주는 한 권이에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단단한 잣대로 마음에 자리 잡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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