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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리허설 - 살기 위해, 한 번 죽어 보기 ㅣ 세계척학전집 8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내 장례식에서도 나는 구경꾼이었다, 이클립스 〈죽음 리허설〉 서평
눈을 감고 내 장례식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영정 사진이 걸리고, 아는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장면까지는 어렵지 않게 그려질 거예요.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나는 어디쯤 서 있었나요? 관 속에 누워 있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이 질문으로 문을 여는 책이 〈죽음 리허설〉입니다. 지식 유튜버 이클립스의 '세계척학전집' 여덟 번째 책이에요. 처음엔 '철학'을 잘못 쓴 줄 알았어요. 아는 척 좀 하게 해 주는 학문이라면 저 같은 아재한테 딱이겠다 싶더라고요. 시리즈 여덟 번째 권이긴 한데, 따로 읽어도 흐름 따라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서 앞 권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죽음을 다룬다고 해서 내내 무겁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프로이트, 몽테뉴, 붓다, 가완디 같은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데, 사람마다 실험이나 이야기를 하나씩 들고 와서 강의 한 편씩 듣는 느낌이 들어요.
프롤로그에 나오는 실험부터 재미있었어요. 죽음에 대해 짧은 글만 쓴 대학생들은 앞으로 벌 돈을 더 높게 내다보고 자기 몫도 더 챙기려 했대요. 그런데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가 죽어 가는 모습을 자세히 그려 보고 지난 삶을 돌아본 사람들은, 더 가지려는 행동이 뚜렷하게 줄었다고 하더군요. 같은 죽음을 떠올렸는데 방향이 정반대로 갈린 셈이죠.
죽음을 짧게 스치기만 하면 막연한 불안으로 남고, 끝까지 바라보면 구체적인 두려움이 된다는 설명이 이어져요. 엄마에게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는 두려움 같은 거요. 그런 두려움에는 할 일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오래 생각하게 된 대목은 '사회적 죽음'이라는 말이었어요. 저자는 시한부 선고 같은 일은 드물지만, 사람은 살면서 몇 번씩 자기 삶의 일부가 끝나는 일을 겪는다고 해요. 다니던 회사에서 밀려나고, 오래 준비한 시험에 떨어지고, 믿던 관계가 끝나는 일들이요.
회사에서 밀려나는 일이라니.
첫머리부터 이 얘기가 나오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요. 그래도 이 책의 생각들은 삶의 일부가 끝난 날에도 그대로 쓸 수 있다고 하니, 죽음 책이 갑자기 오늘 하루에 쓰는 책처럼 느껴지더라고요.
PART 1의 프로이트 장으로 넘어가면 맨 처음 던진 장례식 질문에 답이 나와요. 우리는 상상 속 장례식에서도 늘 식장 한쪽에 선 구경꾼이라는 거죠. 〈톰 소여의 모험〉에서 교회 2층 구석에 숨어 자기 장례식을 지켜보던 톰처럼요. 상상하려면 상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 죽음은 바로 그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니 제대로 그려질 리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아이들에게 아기 생쥐가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인형극을 보여 준 실험도 나와요. 아이들은 죽은 생쥐가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건 정확히 답하면서도, 생쥐가 아직 엄마를 사랑한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대요. 대학생 일부도 비슷하게 답했다니, 나이를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에요.

이 장에서 뜨끔했던 건 부고 이야기였어요. 이 나이쯤 되면 부고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그때마다 사고였는지 무슨 병이었는지부터 묻게 되잖아요. 책은 그 질문 뒤에 이런 계산이 숨어 있다고 말해요.
"과로였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일하지 않는다. 사고였다면 조심하면 된다. 여든이 넘으셨다면 나는 아직 멀었다."
원인을 확인하는 순간 죽음은 특별한 사정이 있던 한 사람의 일로 줄어들고, 나는 그 사정의 바깥에 선다는 거예요. 반박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죽음 리허설〉만의 재미는 장마다 붙은 '리허설' 박스 같아요. 읽은 생각을 오늘 하루에 한 번 써 보라는 질문들인데, 쉬워 보여도 대충 넘어갈 수가 없게 생겼어요. 카이우스는 죽는다는 삼단논법 이야기 끝에는, 카이우스 자리에 내 이름을 넣으면 내게 남은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그 안에 꼭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아직 시작하지 않은 까닭은 뭔지 물어요. 장 끝의 '더 읽기' 박스도 친절했어요. 다음에 읽을 책을 난이도 별점까지 붙여서 알려 주거든요. 가완디 장 끝에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별 두 개로 소개하고 있어요.

읽는 순서도 자유예요. 파트 순서대로 읽기를 추천하긴 하지만, 목차에서 손이 멈추는 문장부터 들어가도 된다고 해요. 파트마다 '지금 하는 모든 일이 부질없어 보일 때 꺼내라', '다짐이 자꾸 흐려지고 미뤄 둔 일이 쌓여 갈 때 꺼내라' 같은 처방이 붙어 있어서 상비약 같은 느낌도 들고요.
PART 2의 윌리엄스 장은 질문을 거꾸로 던져요. 죽음이 나쁘다면, 죽지 않는 건 좋은 일일까. 300년 넘게 늙지 않고 이름을 바꿔 가며 산 오페라 가수 엘리나가 나오는데, 차페크의 희곡 〈마크로풀로스 사건〉 이야기예요. 밥을 먹으려고 살아 있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쓰던 소설을 끝내고 싶다거나 딸이 어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은 내일도 살고 싶게 만든다는 구분이 꽤 선명하더군요.
여기 붙은 리허설은 유난히 반가웠습니다.
"이번 주에 가장 기다려지는 일 하나를 떠올려 보라. 그 일을 매주 되풀이해도 지금처럼 기다려질까. 아니라면, 매주 되풀이해도 기다려질 일은 무엇인가."
요즘 제게 제일 기다려지는 일은 새 책이 오는 날이거든요. 매주 되풀이해도 지금처럼 설렐지는 장담 못 하지만, 아직은 새 책 소식만 들어도 들뜨는 걸 보면 꽤 오래갈 것 같아요. 존 마틴 피셔라는 철학자는 좋은 음식이나 음악,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처럼 몇 번을 되풀이해도 다시 좋은 즐거움이 있다고 했대요.
되풀이해도 좋은 즐거움.
이 장은 어느 한쪽 편을 들어 주지 않고 끝나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좋았어요.
〈죽음 리허설〉에서 제일 현실적인 장을 꼽으라면 PART 3의 가완디 장일 거 같아요. 부모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은 나이라서인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완화의료 전문의 수전 블록은 척수 종양 수술을 받은 일흔네 살 아버지에게 출혈이 생겨서, 몇 분 안에 아버지 대신 재수술 여부를 골라야 했대요. 다행히 수술 전날 아버지에게 물어 둔 답이 있었다고 해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고 텔레비전으로 미식축구를 볼 수 있다면, 나는 계속 살고 싶다."
거창한 철학도 아니고, 아이스크림과 미식축구라니.
그런데 그 소박한 문장 하나 덕분에 그 급박한 순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가족이 짐작한 환자의 뜻이 세 번에 한 번꼴로 실제와 어긋났다는 연구도 나오는데, 우리 식구들이 정말 뭘 원하는지 제가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리허설은 '이것만 있으면 나는 계속 살고 싶다'는 문장을 완성해 보라고 하고, 내가 말할 수 없게 된 날 나 대신 결정할 사람이 그 문장을 알고 있는지 묻습니다.
요양원에 잉꼬 100마리와 개, 고양이, 화분을 들였더니 약 처방이 근처 요양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돌볼 것이 생기면 아침에 눈을 떠야 할 이유가 생긴다는 설명이 붙어 있고요. 이 장은 이 문장으로 정리되는 거 같아요.
"결국 우리의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삶이다."
PART 4는 제 또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파트 같습니다. 카스텐슨 장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시간이 넉넉하다고 느끼면 나중을 위한 약속이 지금을 위한 약속을 앞서기 쉽다. 도움이 될 사람과의 약속은 먼저 잡고, 가족은 다음에 봐도 된다며 미룬다."
업무 약속은 칼같이 잡으면서 식구들과의 저녁은 자꾸 다음으로 밀리는 게 직장인 달력의 흔한 모양이잖아요. 그 바로 뒤에 붙은 리허설에서는 솔직히 좀 머쓱해졌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여든 살에도 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과 마지막으로 한 끼를 함께한 것은 언제인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금방 나오는데, 두 번째 질문에는 날짜가 선뜻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노인들은 남은 시간에 맞춰 만날 사람을 고르고 있었고, 사라진 관계는 대부분 인사나 나누던 가벼운 사이였다는 연구 결과도 함께 나와요.
이어지는 얄롬 장에서는 자기 죽음을 실감하고 삶이 바뀌는 순간을 '각성 경험'이라고 부르는데, 꼭 큰일이 아니어도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이나 앞자리가 바뀌는 생일, 은퇴가 그 순간이 될 수 있대요. 앞자리 바뀌는 생일이 머지않은 사람으로서는 흘려듣기 어려운 얘기였어요.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훨씬 많이 후회한다는 연구, 결정한다는 뜻의 decide가 '잘라 낸다'는 라틴어에서 왔다는 이야기, 미루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라는 말까지 이어지는데, 나중으로 미뤄 둔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 대목에서 뜨끔하실 거 같아요. 그림을 배울지 1년째 고민만 하는 사람은 그림이 자기에게 의미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예시에선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책 생김새도 예뻐요. 연보라 표지 한가운데 일식처럼 생긴 검은 원이 있고, 안에서는 장마다 표지 색이 보라, 초록, 와인색으로 바뀌면서 사상가 이름이 필기체 영어로 크게 박혀 있어요. 두께는 부담스럽지 않은 편이고, 부록으로 '남은 삶에 묻는 스무 가지 질문'까지 붙어 있어요. 한 번 읽고 꽂아 두기보다는, 파트마다 적힌 '꺼낼 때'에 맞춰 다시 펼쳐 보기 좋은 책이라 소장 가치도 충분하다고 봐요. 프롤로그 끝에 이런 문장이 있거든요.
"그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남긴 글을 펼치면, 그들은 아직 대답한다."
11월 들어 첫 수요일, 은행잎이 노랗게 내려앉는 늦가을에 죽음 이야기라니 좀 쓸쓸할 줄 알았는데, 〈죽음 리허설〉은 오늘을 챙기라고 등을 살살 떠미는 책이었어요. 연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때라 더 그렇게 느껴졌나 봐요.
리허설은 이만하면 충분히 한 것 같으니, 본공연은 최대한 늦게, 아주 아주 늦게 올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죽음 리허설〉 덕분에 미뤄 둔 저녁 약속부터 하나 잡아 볼까 싶어요. 좋은 책 만나서 마음이 한결 정돈된 기분입니다.
내 장례식의 구경꾼 자리에서 출발해, 오늘 누구와 한 끼를 먹을지까지 데려다주는 늦가을의 인문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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