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프렌즈 구마모토·아소·히타 - 최고의 휴가를 위한 스마트 가이드북, 2027~2028년 최신판 ㅣ 베스트 프렌즈 시리즈 14
전상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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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구마모토를 그저 골프 치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면 유감이다."


책 앞쪽 키워드 꼭지에 대뜸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 살짝 뜨끔했어요. 제 머릿속 구마모토가 딱 그 정도였거든요. 골프, 그리고 볼 빨간 검은 곰 한 마리. 아소는 화산 있는 동네, 히타는 이름부터 낯선 곳이었고요. 그런데 <베스트 프렌즈 구마모토·아소·히타>를 넘기다 보니 후쿠오카에서 멈춰 있던 제 규슈 지도가 아래로 쑥 넓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11월 첫 화요일이에요. 월요일을 간신히 넘기고 나면 몸은 무거운데, 여행책은 펼치기만 해도 연차가 며칠 남았는지부터 세어 보게 되니 신기하더라고요. 서평단 시작하고 생긴 버릇 중에 제일 즐거운 버릇 같아요.


<베스트 프렌즈 구마모토·아소·히타>는 표지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버터처럼 연한 노란 바탕에 하늘색 노면전차, 그 뒤로 초록 숲 위에 올라앉은 구마모토성이 있어요. 위쪽엔 "알차다, 편하다, 가볍다" 말풍선 세 개가 줄줄이 달려 있고요. 보통 여행 가이드북보다 확실히 얇고 길쭉해서 가방 옆주머니에 꽂아도 될 크기예요. 이렇게 가벼운 책인데 히타에는 무게 1,000kg짜리 일본 최대 게타가 있다고 하니, 책이 덜어낸 무게를 나막신 한 짝이 다 가져간 모양입니다.


처음엔 사진 예쁜 책인가 보다 했어요. Must Do List 사진들이 워낙 시원시원하거든요. 하늘로 휘어 올라간 구마모토성 석축, 이끼 낀 돌계단 끝에 도리이가 서 있는 가미시키미 쿠마노이마스 신사, 단풍 사이로 두 줄기 물이 떨어지는 다카치호 협곡까지요. 그런데 본문으로 들어가니 진짜는 꼭지마다 붙은 작은 글씨더군요. 운영 시간, 요금, 가는 방법, 그리고 지도 키워드와 맵코드가 다 붙어 있어요. 구글 지도나 렌터카 내비에 그대로 찍으면 되는 숫자들이에요. 아소 쪽은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힘들어 렌터카를 권한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럴수록 이 숫자들이 든든하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책을 읽다 보면 저자 말투가 꽤 솔직해서 웃게 돼요. 구주산 쪽 농가 레스토랑 베벤코는 "음식 가격이 다소 비싸고 주문과 서빙을 직접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멋진 풍경이 단점을 모두 잊게 한다"고 소개해요. 구로카와 저지우유 직판장에선 플레인 요구르트가 무겁고 단맛이 없어 호불호가 갈린다고 미리 일러 주고요. 히타 양갱 가게 꼭지에는 "어쩔 수 없이 대용량으로만 살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대용량이라니요. 그건 아재들한테 아쉬운 점이 아니라 장점입니다. 좋은 말만 늘어놓는 안내서는 왠지 덜 믿게 되는데, 단점을 이렇게 같이 꺼내 놓으니 나머지 칭찬도 믿고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저자 소개에는 "철이 다 들기 전에, 양쪽 무릎 연골이 나가기 전에 일본 전국을 두 발로 정복하는 꿈"이 있다고 쓰여 있어요. 이 대목에서 제 무릎 사정부터 떠올랐습니다. 매달 한두 번 일본을 오간다는 분이 쓴 책이라 그런지, 문장마다 직접 걸어 본 사람의 계산이 묻어 있는 느낌이에요. 구사센리 주차장은 성수기 주말 오전 9시면 거의 찬다고 하고, 아소 신사 앞 몬젠마치 상점가는 식사를 안 하면 10~20분이면 충분하대요. 구로카와 파티세리 로쿠는 오후 1~2시면 빵이 다 팔린다고 하고요.


유독 속도를 늦춰 읽게 된 건 구마모토성 꼭지 끝에 붙은 '구마모토성 곳곳에 남은 우리 역사'였어요.


세이난 전쟁 때 사쓰마군을 이끌었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끝내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나는 정부군에게 패한 것이 아니다. 기요마사공에게 패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해요.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가볍지 않더라고요. 성을 쌓은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때 울산성 전투에서 식량과 물이 바닥나 처참한 상황까지 몰렸던 사람이에요. 거기서 익힌 축성 기술과 조선에서 끌고 간 도공들의 기술로 구마모토성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성 안에 우물을 120개 넘게 파고, 먹을 수 있는 토란 줄기로 다다미를 짠 것도 장기전에 대비한 거라니 울산에서의 일이 자꾸 겹쳐 보였어요. 기요마사 동상은 지금도 울산과 반대 방향을 보고 서 있다고 하고요. 성 바로 옆에는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울산마치'라는 이름이 노면전차 역 이름으로 남아 있대요.


그냥 지나쳤다면 멋진 성 사진 몇 장 찍고 끝났을 곳이에요. 이 사연을 알고 성벽을 올려다보면 같은 돌도 다르게 보일 거 같습니다. 꼭지는 악연이었던 두 도시가 오늘날 울산광역시와 구마모토시로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는 문장으로 끝나요. 그 한 줄에서 마음이 조금 풀리더군요.


같은 꼭지에 은행나무 이야기도 있어요. 가토 기요마사가 "이 은행나무가 천수각만큼 자랐을 때 이 성에서 병란이 일어나겠지"라고 했는데, 실제로 세이난 전쟁 때 천수각과 그 앞 은행나무에 큰불이 났다고 해요. 불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올라와 지금도 천수각 앞을 지키고 있어서 구마모토성을 '은행나무성'이라고도 부른대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진이 함께 실려 있는데, 마침 은행잎 지는 계절이라 그런지 그 사진에 눈이 자꾸 갔어요.


아소 파트로 넘어가면 사진의 결부터 달라집니다. 하늘이 반, 초원이 반이에요. 나카다케 화구는 지름 600m, 깊이 130m인데, 분화 상황과 화산가스에 따라 그때그때 출입이 바뀌어서 "운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천식, 기관지 질환, 심장질환이 있으면 출입할 수 없다는 안내에서 건강검진 결과지가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저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요.


기시마다케는 아소 5악 중에 하이킹 난도가 가장 낮아서 계단으로 30분쯤이면 오른다고 해요. 나카다케 화구 뒤로 해가 떠오르는 사진이 여러 장 이어지는데, 주황빛 연기가 하늘로 번지는 걸 보니 매일 보는 해랑 같은 해가 맞나 싶었어요. 다이칸보 사진 중에는 모자 쓴 두 분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칼데라를 내려다보는 뒷모습이 있어요. 설명 한 줄 따로 붙은 것도 아닌데 그 사진이 좋았습니다. 회사 일에 쫓겨 굴러가다 보면 나중에 저렇게 앉아 있을 날이 오긴 할까 싶기도 하고요.


구로카와 꼭지는 읽기만 해도 어깨가 풀리는 거 같아요. 작은 마을에 온천 딸린 료칸이 30곳 가까이 모여 있고, 온천 마패 하나로 그중 25곳 가운데 3곳을 골라 들어갈 수 있대요. 어른 ¥1,500에 유효기간은 6개월이고, 여러 명이 한 장을 나눠 써도 된다고 해요. 수건 없는 곳이 많다는 안내도 있고, 당일치기라면 오히려 비쌀 수 있으니 2박 이상 머물 때 사라는 팁도 붙어 있어요. 노천탕 BEST 5 중에서는 사람이 직접 팠다는 신메이칸 동굴탕이 제일 궁금했어요. 대나무 봉을 잡고 서서 들어가는 이코이 료칸은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요. 연말부터 3월 말까지는 마을 전체에 등불이 걸린다니 벌써 마음이 바빠집니다.


맛보기로 한 대목만 옮겨 볼게요. 히타를 소개하는 문장이에요.


"예로부터 물이 맑기로 유명해서 간장과 술이 맛있는 지역이며 농산물의 품질이 좋아서 어느 집을 가도 평균 이상의 맛을 낸다."


어느 집을 가도 평균 이상이라니요. 메뉴 골랐다가 실패할까 걱정 많은 중년한테는 이만한 보증이 없는 거 같아요. 히타 간장집은 모든 제품을 맛볼 수 있고 한글 표기까지 되어 있대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만능 간장'으로 통하는 고레잇폰이 인기라고 하고, 간장 소프트아이스크림이라는 것도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 책엔 소프트아이스크림이 정말 끝없이 나와요. 다이칸보, 뉴쿠사센리, 고겐도, 밀크랜드팜, 야마다산치 목장까지요. 키워드 꼭지에 유제품이 따로 한 자리를 차지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히타는 (진격의 거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고향이라 도시 전체를 작품으로 꾸며 놨다고 해요. 키워드 꼭지에 "신조오 사사게요(심장을 바쳐라)!" 구호까지 넣어 둔 걸 보면 저자도 이 부분은 신나서 쓴 게 아닐까 싶어요. 스탬프북 구입, AR 촬영을 위한 VPN 앱 설치, 조사병단 망토는 국내에서 1만 원대에 미리 사 가라는 준비물 안내까지 꼼꼼하더라고요. 덕질에도 준비물이 있다는 걸 덕분에 배웠어요.


솔직히 마음에 걸린 건 제 체력 쪽이었어요. 히타 꼭지에 '12시간 렌터카 본전 뽑는 코스'가 있거든요. 아침 8시에 차를 받아 댐, 언덕의 나무, 박물관, 맥주 공장, 온천, 다케다 공원 일몰, 저녁 식사까지 돌고 밤 8시에 기름 채워 반납하는 일정이에요. 보기만 해도 알차고 신나는데, 운전대를 열두 시간 붙잡고 있을 제 허리가 따라와 줄지는 자신이 없더군요. 아소와 구로카와 쪽도 렌터카를 권하는 대목이 많으니, 운전이 부담스럽다면 일정을 넉넉하게 잡는 쪽이 마음 편할 거 같아요.


이번 판은 2027~2028년 최신판이고, 2026년 9월까지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요. 목차를 보면 렌터카 이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한 꼭지와 여행 중 지진을 만났을 때의 대처 가이드도 따로 있고, 뒤쪽에는 지역별 지도와 노면전차 노선도도 실려 있어요. 후쿠오카는 이미 몇 번 다녀와서 다음 규슈 여행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베스트 프렌즈 구마모토·아소·히타>를 펼치는 순간 행선지가 정해질 거 같아요. 들고 다니기 가벼우니 여행 내내 손이 자주 갈 것 같고요.


11월 들어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히타 양갱집의 유자양갱은 10월부터 3월까지만 나온다니 딱 지금이 제철이에요. 구로카와 등불도 곧 켜질 테니, 이번 겨울 연차는 여기에 써 볼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옵니다. 좋은 여행지 하나 마음속에 찜해 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늦가을 보내세요.


쿠마몬 너머 구마모토성의 우리 역사, 아소 칼데라의 초원, 구로카와 노천탕, 히타의 간장과 진격의 거인까지 가볍게 들고 다니며 챙길 수 있는 규슈 한가운데 여행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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