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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말하기 수업
김진우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제가 할게요" 대신 조건 한 줄, 할 말은 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말하기 수업 서평
"이거 누가 좀 맡아 줄 사람?"
회의가 끝나 갈 무렵 이 말이 나오면 공기가 잠깐 멈추잖아요. 그 침묵이 어색해서 손이 먼저 올라가고, 자리에 돌아와 할 일 목록을 열어 보면 오늘도 야근 확정. 이 장면으로 시작하는 꼭지가 있는데, 첫 문단부터 뜨끔하더라고요.
<할 말은 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말하기 수업>은 김진우 작가가 쓰고 모티브에서 지난 10월에 나온 책이에요. 표지가 아주 샛노랗습니다. 말풍선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안경 쓴 직장인 캐릭터들이 만화 컷처럼 들어가 있어요. 책상 위에 올려 두면 형광펜을 한 자루 더 꺼내 놓은 줄 알겠더라고요. 판형은 보통 단행본보다 조금 아담해서 가방 한쪽에 쏙 들어가는 크기예요.
11월 첫 주 화요일입니다. 월요일 주간 회의에서 받아 온 일들이 슬슬 책상 위에 쌓이기 시작하는 요일이죠. 창밖 은행잎도 노랗고 책 표지도 노래서, 계절이랑 색을 맞춘 책을 만난 기분이에요.
프롤로그는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해요. 말 잘하는 법을 다룬 책을 여러 권 사서 밑줄도 긋고 형광펜도 칠했대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팀장님이 "그거 어떻게 됐어요?" 하고 물으시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는 거예요. 책에는 분명 결론부터 말하라고 쓰여 있었는데, 정작 그 결론이 뭔지 몰랐다고요. 이어지는 비유가 재미있어요.
"배고픈 사람한테 요리 이론을 설명해 주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지금 필요한 건 숟가락에 얹힌 밥 한 술이잖아요."
이 대목에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밑줄만 잔뜩 긋고 끝난 말하기 책이 저 혼자 겪은 일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은 정말로 떠먹여 줍니다. 꼭지마다 따옴표 안에 그대로 따라 말하면 되는 대본이 들어 있어요. 꼭지 끝에는 '떠먹여 주는 한 줄'이 붙어 있어서, 바쁜 날엔 그 한 줄만 챙겨도 되고요. 저자가 처음엔 토씨 하나 바꾸지 말고 따라 하라고 하는데, 운전 배울 때 "거울 보고, 깜빡이 켜고, 핸들 돌리고"를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 꽤 그럴듯했어요. 대신 호칭 같은 단어는 회사에 맞게 바꾸고 순서만 지키라고 해요.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아마 이거인 것 같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타고난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순서를 아는 사람이었어요."
저자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어요. 스스로를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이불을 걷어찬 횟수로는 어디 가서 안 지는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합니다. 첫 출근 날 자기소개에서 "잘 부탁드립니다"만 반복했고, 전화벨이 울리면 누가 대신 받아 주길 바라며 모니터만 쳐다봤대요. 선배에게 질문 하나 하려고 메신저 창에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고요. 이런 사람이 가르치니까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말투가 없어요. 같은 층, 같은 줄 책상에 앉은 동료가 건네는 메모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다른 꼭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건 17장 "'제가 할게요'를 줄이는 법"이었어요.
저자의 입사 동기 이야기가 나와요. 손이 빠르고 뭐든 맡아 주니 처음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몇 달 지나자 '걔한테 주면 다 하더라'는 말이 돌았대요. 반년쯤 지나서는 팀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되어 있었고요. 그런데 평가는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의 일을 받느라 자기 일을 제때 못 끝냈으니까요. 더 속상한 건 팀장님이 그 친구가 그렇게 많은 일을 들고 있는 줄도 몰랐다는 대목이었어요.

회사 밥을 꽤 오래 먹은 나이가 되니 이 부분은 반대편 자리에서도 읽히더라고요. 혹시 지금 우리 팀에도 아무 말 없이 일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퇴근길에 그 동기가 "나 왜 이렇게 됐지?" 했을 때, 저자는 떡볶이를 사면서도 남 얘기 같지 않았다고 해요. 본인도 손이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책이 내놓는 해법은 거창하지 않아요. 대답 끝에 조건 한 줄을 붙이라는 거예요. 맛보기로 대본 하나 옮겨 볼게요.
"맡고 싶은데 지금 ○○ 건이랑 △△ 건이 이번 주 마감이라서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해도 괜찮으면 제가 할게요."
이렇게 말하면 거절처럼 들리지 않으면서 내 상황이 드러나고, 판단은 상대에게 넘어간다고 해요. 그래도 손이 먼저 올라갔을 때는 "제 일정 한번 확인해 보고 30분 안에 말씀드릴게요"로 시간을 벌라고 하고요. 이미 받아 버렸다면 빨리 다시 말하는 게 낫다고 합니다. 말을 꺼내기 민망하다고 하루 이틀 버티면 그 민망함이 이자처럼 불어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감 전날 밤에 몰아서 갚아 본 이자일 거예요.
저자는 지금도 가끔 손이 먼저 올라간대요. 그럴 땐 올라간 손을 슬그머니 귀 뒤로 넘기며 머리를 정리하는 척한다고요. 다들 봤을 텐데 모른 척해 주더라는 말에 소리 내서 웃었습니다. 그 동기는 요즘 회의 때 손을 들기 전에 다이어리부터 펼친대요. 펼치는 소리가 꽤 커서, 이제는 팀장님도 그 소리가 나면 잠깐 기다려 주신다고 해요.
21장 "선 넘는 농담에 억지로 웃지 않는 법"은 결이 조금 달라요. 점심 먹고 들어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과장님이 던진 농담에 옆 사람들이 킥킥 웃고,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가 자리에 앉아서 기분이 묘하게 나빠지는 장면이 나와요. 과장님보다 웃은 내 얼굴이 더 얄밉다는 문장이 아프게 정확합니다. 책은 그 웃음이 상대에게 '이 정도는 괜찮구나'라는 신호로 읽힌다고 설명해요. 그래서 권하는 건 담담한 표정으로 짧게 한마디 하는 거예요. "음, 그건 좀 웃기 어렵네요." 그리고 바로 원래 얘기로 돌아가는 거죠. 끝에 "하하"를 붙이면 앞 문장의 힘이 싹 빠진다는 조언도 있어요.

이 꼭지는 요령에서 끝나지도 않아요. 농담이 반복되거나 성적인 말, 인격을 깎아내리는 말로 번진다면 말하기로 풀 문제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줍니다. 기록을 챙겨 회사 신고 창구나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1350)에 도움을 청하라고 안내까지 해 주고요. 저는 이 부분이 이 책을 믿고 볼 수 있게 해 주는 대목 같았어요.
솔직히 마음에 걸린 건 이 꼭지에 나오는 농담 예시들이었어요. "살 좀 붙었네? 요즘 행복한가 봐." 같은 말이요. 제 나이쯤 되면 농담을 듣는 쪽보다 하는 쪽에 서 있을 때가 더 많잖아요. 분위기 좀 풀어 보겠다고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퇴근길 지하철까지 따라갔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말하기 책인데 말을 아끼는 법까지 배우고 가는 셈이에요.

에필로그에도 좋은 이야기가 많아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지인이 전화 꼭지의 대본을 옮겨 적고 며칠 뒤 "처음으로 전화를 한 번에 끝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대요. 저자는 그날 저녁이 이 책을 쓰면서 제일 뿌듯했다고 해요. 말수 적던 동기가 회의 끝에 떨리는 목소리로 "저… 하나만요. 일정에서 검수 기간이 빠진 것 같아서요" 하고 꺼낸 덕분에 터질 뻔한 문제를 막았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메모지에 문장을 세 번이나 고쳐 썼는데, 정작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문장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서툰 말은 다음에 고치면 되지만, 꺼내지 않은 말은 고칠 기회조차 없더라고요."
그리고 이 에필로그도 첫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 썼다는 고백. 말하기 책을 쓴 사람도 첫마디는 여전히 어렵다는 거죠.
소장 가치는 넉넉하다고 생각해요. 차례가 보고, 부탁, 거절, 회의, 일상처럼 상황별로 나뉘어 있어서, 내일 막힐 것 같은 장면만 골라 펼쳐 보기 좋습니다. 저자도 이 책을 너무 열심히 읽지 말고 가방에 넣어 다니다가 막히는 날 한 꼭지씩 꺼내 보라고 하더라고요. <할 말은 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말하기 수업>은 이제 막 첫 출근을 앞둔 조카나 새로 들어온 후배 책상에 슬쩍 올려 주고 싶은 책이기도 해요. 읽어 보니 오래 다닌 사람한테도 잘 맞았어요. 순서를 몰라서 삼켰던 말이 연차와 상관없이 다들 있잖아요.

말 잘하는 법을 배우러 들어갔다가, 말 때문에 오래 헤맨 사람의 메모를 한 장씩 넘겨 본 느낌이었습니다. 무겁지 않고, 읽는 내내 재미있었어요.
바람 끝이 제법 차가워진 11월이에요. 이 서평도 따지고 보면 '제가 할게요' 하고 손 번쩍 든 일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조건 한 줄 안 붙여도 남는 장사였네요. <할 말은 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말하기 수업> 덕분에 내일은 저도 한 번, 먼저 말해 볼 용기가 조금 생겼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할 말은 늘 있었는데 순서를 몰랐던 직장인에게, 퇴근길 지하철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꺼낼 첫 문장을 숟가락째 떠먹여 주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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