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Set, Korean! (준비, 시작, 한국어!)
장인혜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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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국어 쉽네!" 기린이 외치기까지, <Ready, Set, Korean!> 서평


"아… 한국어 어려워."

기린 한 마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를 쥔 채 책상에 털썩 엎드립니다. 그런데 몇 컷 지나지 않아 이 친구가 주먹을 불끈 쥐고 "한국어 쉽네!"를 외치더라고요.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별일은 없었어요. 독수리는 "미국 사람이에요", 코끼리는 "태국 사람이에요", 무스는 "캐나다 사람이에요", 털모자 쓴 곰은 "러시아 사람이에요". 반 친구들이 똑같은 꼴의 문장을 돌아가며 말하는 걸 듣던 기린이 "아마 별로 안 어려울지도…?" 하면서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나라 이름 하나만 바꿔 끼우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시원스쿨닷컴에서 나온 <Ready, Set, Korean!> 1과 만화인데, 이 몇 컷에 책 전체의 성격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Ready, Set, Korean!>은 한글은 읽을 줄 알게 된 외국인 학습자가 본격적인 초급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말문부터 틔워 보자고 만든 입문 회화 교재예요. 표지 위쪽 말풍선에 적힌 "Your Next Step After Learning Hangeul"이 딱 그 얘기고요. 평생 한국어로 먹고살아 온 사십 대 후반 아재가 외국인용 한국어 교재 서평을 쓴다니, 처음엔 저도 좀 웃기긴 했습니다. 서평단 하면서 소설이며 에세이며 이것저것 받아 봤지만 내 모국어를 배우는 책은 또 처음이라서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저자 장인혜 선생님은 K-pop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부터 해외에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그렇게 20년 가까이 외국인 학습자들을 만나 왔다고 해요. 머리말에서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한글을 막 뗐을 때 밝던 학습자들의 표정이 초급 과정에 들어가자마자 금세 사라진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은/는', '이/가', '을/를'에 '-습니다', '-아요/어요'까지 한꺼번에 밀려오니 첫 문장부터 틀릴까 걱정하게 된다는 거죠. 생각해 보면 우리도 중학교 영어 시간에 딱 그랬던 거 같아요.


저자는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즐거운 순간을 이렇게 적어 두었어요.

"서툴더라도 내 말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그 말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이 문장에서는 회사 생활이 겹쳐 보이더라고요. 연차가 쌓일수록 틀리지 않을 말만 고르게 되는데, 막상 일이 굴러가는 건 어설프게라도 먼저 꺼낸 한마디 덕분일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머리말은 "이 교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로 이어지고, 실제로 책 전체가 일단 입부터 떼게 만드는 쪽으로 짜여 있어요. 저자 표현을 빌리면 "먼저 입으로 익히고, 나중에 문법으로 정리하는 방식"이고요.


1과에 들어가기 전에 "처음이라도 괜찮아요!"라는 코너가 먼저 나옵니다. "천천히 말해 주세요", "다시 말해 주세요", "한국어 잘 못해요" 같은 생존 표현이 동물 친구들 그림과 같이 실려 있고, 표현마다 '언제 써요?' 상자가 붙어 있어요.


"잠시만요" 하나에 그림이 두 장.

한 장은 알파카가 손가락을 들고 기다려 달라는 장면이고, 다른 한 장은 꽉 찬 지하철에서 길을 비켜 달라는 장면이에요. 같은 말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는 걸 긴 설명 없이 그림으로 보여 주니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이지만, 처음 배우는 사람한테는 이런 게 제일 헷갈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다음 장에는 택시, 한옥 앞 한복, 명동 거리, 치맥, 한강 유람선, 찜질방 양머리 수건, 편의점 1+1까지 한국 여행 사진첩 같은 그림이 쭉 붙어 있습니다. 노래방 화면에 뜬 "서비스 +10분 추가!"에서는 피식 웃음이 났어요. 그거 받으면 괜히 기분 좋은 거, 이제 외국 친구들도 알게 되겠구나 싶어서요.


등장하는 친구들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표지에도 나오는 호랑이가 선생님이고, 알파카 알피, 판다 판판, 기린, 무스, 독수리, 코끼리, 코기, 펭귄 같은 친구들이 과마다 돌아가며 나와요. 손에 든 국기가 저마다 달라서 다국적 반 친구들을 귀엽게 옮겨 놓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기린한테 제일 정이 가더라고요. 어려우면 바로 엎드리고, 할 만하다 싶으면 금세 주먹을 쥐는 게 꼭 뭘 처음 배울 때 우리 모습 같아서요.


12과 제목은 "아아 주세요."예요. 솔직히 '아아'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누가 어디 아픈 줄 알았거든요. 책에는 팁 상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여서 '아아'라고도 해요"라고 친절하게 나와 있더군요. 외국인 학습자만큼이나 제 또래 아재들한테도 꼭 필요한 설명일지 모르겠어요.


만화에서는 기린이 카페라테를 시키고, 점원 코기가 "사이즈는요?", "시럽 넣어 드릴까요?" 하고 물어요. 기린의 대답은 "아니요, 시럽 빼 주세요." 건강검진 결과지가 신경 쓰이는 나이라 그런지 이 한마디가 괜히 반가웠습니다. 진동벨이 울리고 와이파이까지 묻고 나면 이번엔 무스 차례예요. 아이스 카페라테 큰 사이즈에 두유까지 야무지게 넣어 달라고 하더니 "여기 화장실 어디 있어요?" 하고 냅다 뛰어가는 마지막 컷에서 결국 크게 웃었어요. 주문, 옵션, 포장, 와이파이, 화장실까지 카페에서 입 열 일이 한 장면에 다 들어가 있는 셈이에요. 새 단어 페이지에는 메뉴와 시럽·두유·휘핑크림 같은 옵션, 진동벨과 빨대까지 그림 카드로 정리돼 있고, "먹고 갈게요"와 "가져갈게요"도 그림 두 장으로 나눠 놓았습니다.


13과 "치맥! 짠!"은 직장인 입장에서 반갑지 않을 수가 없는 제목이죠. 네온사인 켜진 치킨집에 독수리, 코기, 코끼리 셋이 들어가 "세 명이에요" 하는 첫 장면부터 퇴근길 풍경 그대로예요. 생맥주 있냐, 소주 있냐 묻고, 막걸리는 "아니요, 없어요"라는 답을 듣고, 치킨하고 감자튀김을 시키고, "짠! 건배!" 바로 다음 컷이 "취해요."


속도가 아주 한국적입니다.

새 단어 페이지 아래 '문법 팁'에는 두 가지 메뉴를 같이 시킬 때 단어 뒤에 '하고'를 붙인다는 설명이 나와요. 예문이 "치킨하고 맥주 주세요.", "소주하고 파전 주세요."더라고요. 조사 하나 가르치는데 예문을 이렇게 고르니 안 외워질 수가 없겠다 싶었어요. 만화와 패턴으로 충분히 말해 본 다음에 원리를 짧게 정리해 주는 흐름이라, 머리말에서 말한 방식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과 만화 후반부는 분위기가 살짝 달라져요. 장면이 강가 포장마차로 넘어가고, "오늘 어때요?"라는 물음에 코끼리가 "너무 슬퍼요"라고 답합니다. 생각 풍선 속에는 다투는 듯한 코끼리 둘이 보이고요. 옆에 앉은 코기는 별말 없이 "여기 소주 하나 더 주세요!"를 외칩니다. 무슨 사연인지 만화에선 따로 말해 주지 않아요. 그냥 옆에 앉아 한 병 더 시켜 주는 것. 마음 상한 친구한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대개 그 정도라서, 이 몇 컷은 웃기기보다 좀 찡하더라고요.


20과 "도와주세요."는 분실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무스가 지하철에서 빨간 가방을 잃어버려서 안내 데스크, 분실물 센터, 경찰서까지 돌고 돌아요. 겨우 가방을 찾았나 싶었는데 "가방 안에 지갑, 우산, 물 있어요. 핸드폰 없어요." 하며 또 울상이 되더니, "핸드폰…? 핸드폰…? 여기 있어요!"


손에 들고 있었던 거죠.

경찰관이 엄지를 척 들어 주는 마지막 컷까지 보고 나니, 폰을 손에 쥐고 폰을 찾는 건 국적 불문 만국 공통인가 봅니다.

같은 과 뒤쪽 '화재 대피' 만화는 결이 완전히 달라요. "지금 불났어요! 나가요!", "비상구 저기 있어요.", "119 불러 주세요! 소방차 불러 주세요!"가 이어지고, 대피한 친구들이 "목 아파요", "머리 아파요" 하다가 구급차에 오릅니다. 팁 상자에는 지진, 태풍, 폭우, 폭염, 한파, 폭설, 실종 같은 단어와 함께 한국에서는 긴급 상황에 재난 문자가 온다는 안내, 그리고 119와 112 번호가 정리돼 있어요. 이 페이지는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읽었습니다. 우리는 재난 문자가 울리면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라도 하지만, 한국어가 서툰 사람한테는 그저 낯선 알림음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림책처럼 귀여운 교재 끝자락에 이런 내용까지 챙겨 넣은 걸 보니, 학습자를 오래 곁에서 지켜본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부록 "단어만 말해도 통해요!"는 "드디어 20과를 다 끝냈네요! 정말 축하해요!"로 시작해요. 그러고는 아직 말하려면 떨리냐고 묻고, 괜찮다고,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단어 하나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다독여 줍니다. 알파카가 "저기요… 서울역…?" 하면 경찰관이 길을 알려 주고, 판다가 손가락 두 개를 펴고 "주세요!" 하면 펭귄 점원이 "네, 김치찌개랑 불고기 두 개요?" 하고 알아들어요. 병원에서는 토끼가 머리를 짚고 "머리… 머리…."


그거면 된다는 거죠.

머리말에서 꺼낸 자신감 이야기가 책 맨 끝에서 이렇게 다시 돌아오니, 첫 장에서 엎드렸던 기린이 떠올랐어요. <Ready, Set, Korean!>은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틀려도 괜찮으니 일단 말해 보라고요.

솔직히 걸렸던 건 제 쪽 사정이에요. 저는 이미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라, 처음 배우는 학습자가 이 패턴들을 얼마나 쉽게 받아들일지는 짐작만 할 수 있거든요. 문장이 너무 당연하게 읽혀서 학습자 입장이 되어 보려면 일부러 애를 써야 했습니다. 그래도 영어 회화책 앞에서 쩔쩔매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림 보고 단어 하나 바꿔 끼우는 이 방식이 얼마나 고마운지는 알 것 같아요. 회사에 외국인 동료가 있거나 한국어 배우는 외국 친구가 있다면 한 권 건네주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판형이 크고 보통 책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그림 카드와 만화가 페이지마다 큼직하게 들어가 있어서 넘기는 맛이 있고, 만화 옆 QR 코드로 같은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 소개를 보면 과마다 써 봐요, 연습해요, 말해 봐요 같은 활동과 노래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Ready, Set, Korean!>은 교실에서 써도 좋고 혼자 따라 하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0월도 끝자락이고, 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화요일이에요. 책 덕분에 '아아'는 확실히 배웠는데, 이 날씨엔 아무래도 "뜨거운 아메리카노 주세요"가 먼저 나올 것 같네요. 메뉴 앞에 '뜨거운'만 붙이면 된다는 것도 <Ready, Set, Korean!>에서 배웠으니까요. 한 주 초입부터 귀엽고 따뜻한 책을 만나서 기분 좋았습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포근한 가을 보내세요.


"아… 한국어 어려워"로 엎드렸던 기린이 "한국어 쉽네!"를 외치기까지,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먼저 심어 주는 한국어 첫걸음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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