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일 4호 구축전차 / 4호 돌격포 사진집
하비재팬 편집부 지음, 김정규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전차가 모자라서 만든 사냥꾼들, <독일 4호 구축전차 / 4호 돌격포 사진집> 서평
전차가 모자란 군대는 무엇으로 전차를 막았을까요.
표지에 이미 답이 반쯤 나와 있습니다. 점박이 위장 무늬를 두른 납작한 차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스듬히 달려오는데, 있어야 할 포탑이 없어요. 그 자리에 긴 포신 하나가 앞으로 쭉 뻗어 있고, 승무원 둘이 해치 위에 걸터앉아 있더군요. 낮고 단단하게 생겼는데 어딘가 사냥개 같은 느낌이 듭니다. 출판사가 붙인 문구도 "적 전차를 저격하는 사냥꾼들!"이더라고요.
<독일 4호 구축전차 / 4호 돌격포 사진집>은 하비재팬 편집부가 엮고 김정규 님이 옮겨서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나온 책이에요. 제2차 세계대전 후기에 신뢰성 높은 IV호 전차를 바탕으로 만든 대전차 자주포 네 종을 다룹니다. IV호 구축전차, IV호 전차/70(V), IV호 전차/70(A), 그리고 IV호 돌격포. 약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두 합쳐 약 3,000량이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10월 마지막 주 화요일이에요.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니 따뜻한 커피 옆에 큼직한 책 하나 펼쳐두기 좋은 계절인 거 같아요. 판형이 A4라 시원시원합니다. 두께는 보통 소설책보다 얇은 편인데, 펼치면 양면 가득 전차가 들어차서 책상 위에 한 대 세워둔 기분이 들어요.
사진집이라길래 사진만 쭉 이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독일 4호 구축전차 / 4호 돌격포 사진집>의 1장은 생각보다 읽는 맛이 있더라고요. 1935년 재군비에서 시작해서, 전격전을 준비하던 독일이 '전차의 적은 전차'라는 결론에 닿기까지를 차근차근 따라갑니다. I호 전차 차체에 체코제 4.7cm 대전차포를 얹은 I호 전차 구축차가 첫 시도였고,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KV-I과 T-34를 만나 진격이 막힌 이야기가 뒤를 잇죠. 그때 구세주처럼 나선 게 원래 보병 지원용으로 만든 III호 돌격포였다는 대목이 재미있었어요. 전고가 1,960mm로 IV호 전차 D형보다 한참 낮아서 대전차전에서 쓸모가 컸다고 하네요. 나중에 베를린 공습으로 알케트 공장이 피해를 입자, 크루프 그루존이 IV호 전차 차체에 III호 돌격포 상부를 얹어 빈자리를 메웠다는 사연도 나옵니다. 그렇게 나온 IV호 돌격포가 모두 1,141량이라고 하고요.
그 대목에서 한 문장을 보고 피식 웃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실전에서는, 책상머리에서 계획한 대로만 진행되지 않는 법."

회사에서 기획서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 아닐까요. 보병 지원하라고 만든 차가 정작 전차 잡는 일로 이름을 날렸다니, 계획표와 현장 사이의 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거 같아요.
구축전차 쪽으로 넘어가도 비슷합니다. 설계는 포마그가 맡았는데, 히틀러가 탑재할 포와 궤도 폭, 최저 지상고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지시했다고 해요. 윗분이 디테일까지 챙기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이름도 참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IV호 전차 구축차 F형'으로 양산 명령이 내려졌고, 'IV호 구축전차 F형'으로도 불리다가, L/70포를 얹은 뒤에는 히틀러가 직접 'IV호 전차 랑(V)'이라고 이름을 붙였대요. 그러고 나서 보통은 'IV호 전차/70(V)'로 불렸다고 하고요. 이름이 하도 바뀌어서 담당자는 명함을 몇 번이나 새로 찍었을까 싶더군요. 구축전차인데 굳이 '전차'라는 이름을 붙인 데는, 만들던 IV호 전차 H/J형을 이 차로 바꿔 나가겠다는 뜻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네 차종 가운데 마음이 제일 쓰였던 건 IV호 전차/70(A)였어요. 알케트가 개수 키트를 맡고 니벨룽겐 제작소에서 만든 차인데, '잠정 사양(Zwischenlösung)'이라고도 불렸다더군요. L/70포를 얹은 차를 빨리 늘리려고 IV호 전차 차체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다 보니 차고가 70(V)보다 35cm나 높아졌다고 해요. 전선에서는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차라리 IV호 전차 J형을 만드는 쪽이 낫겠다는 보고서까지 올라왔답니다.
그래도 1944년 8월부터 1945년 3월까지 277량이 만들어졌습니다. 임시방편으로 시작했는데 끝까지 현장을 지킨 셈이라, 중년 직장인 눈에는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4장 캡션 하나는 이 차를 두고, 주포를 빼면 설계가 많이 바뀌어서 "거의 다른 차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하더군요. 땜질로 출발해서 자기 모양을 갖춰 간 차라고 생각하니 괜히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독일 4호 구축전차 / 4호 돌격포 사진집>이 제 얼굴을 보여주는 건 2장부터인 거 같아요. 독일 문스터 전차박물관에 있는 IV호 구축전차 시제차 V2를 앞, 옆, 위, 뒤에서 차례로 훑어 갑니다. 이 차가 걸어온 길도 흥미로웠어요. 프랑스에서 훈련용으로 쓰이다가 소뮈르 기갑 박물관을 거쳐 문스터로 돌아와 복원됐다고 해요. 그래서 측면에 훈련용 차량이라는 뜻의 'Schulungs-Fahrzeug'가 큼직하게 적혀 있습니다.
캡션은 정말 깨알 같습니다. 차체 앞쪽 예비 궤도 랙에 10개가 걸려 있는데 "좌우에 5개 정도 더 들어갈 것 같다"고 굳이 덧붙여 주고, 전조등은 '보쉬 라이트'라는 애칭에 커버에 'Bosch'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에요. 공구 코너에서 보던 그 이름을 전차 전조등에서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요. 2단식 머즐 브레이크는 앞쪽이 타원이고 뒤쪽이 원형이라는 것, 고깔 모양 기관총 포트 커버는 안에서 좌우로 돌려서 여닫는다는 것까지.
사진 옆에 선으로 그린 도면이 붙어 있어서, 사진에서 그림자에 묻힌 부분을 도면이 받쳐줍니다. 4장에는 70(A)를 정면, 후면, 위에서 본 도면이 크게 실려 있고 화살표마다 주석이 빼곡해요. 모형 만드시는 분들은 이 몇 장만으로도 본전 생각이 안 나실 거 같더라고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건 프랑스 소뮈르 기갑 박물관에 있는 IV호 전차/70(A) 사진들이었어요. 현존하는 유일한 70(A)라고 하는데, 1944년 12월 자유 프랑스군 제3 보병사단 '알제리아'가 노획해서 전후에도 프랑스군이 운용했다고 합니다. 이 차는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그대로 둔 채 보존돼 있어요. 차체 앞쪽 오른편에 포탄 세 발이 맞아서 두 발은 뚫고 들어갔고 한 발은 장갑에 박혔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용접이 떨어져 벌어진 틈으로는 안쪽의 7.5cm 포미가 들여다보이고요.
깔끔하게 복원된 시제차 사진을 보다가 이 대목에 오니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장갑 두께와 경사각을 숫자로만 따라 읽어 왔는데, 그 숫자가 버텨야 했던 순간이 쇠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1945년 무렵의 흑백 사진들도 그랬습니다. 폐허가 된 마을에 선 70(A) 옆으로 민간인 두 사람이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사진이 있고, 민가 앞에 버려진 70(A)의 긴 포신에 빨래가 널린 사진도 있어요. 무기 사진집인데 전쟁이 끝나 가던 무렵의 일상이 사진 가장자리에 같이 찍혀 있더군요.

솔직히 처음엔 용어가 좀 버거웠어요. Pak 39 L/48, KwK L/70, 치메리트 코팅, 쉬르첸, 맨틀릿 같은 말이 쉬지 않고 나오거든요. 그래도 사진 바로 옆에 설명이 붙어 있어서 몇 장 넘기다 보면 눈에 익습니다. 쉬르첸을 강판에서 6mm 와이어 철망으로 바꾼 게 무게를 줄이고 펜더 사이에 끼는 먼지를 덜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사진 속 차체 옆구리부터 보게 되더라고요.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하게 생긴 네 차종의 차이를 사진과 도면으로 하나씩 맞대 볼 수 있어서, 한 번 읽고 꽂아두기보다는 생각날 때마다 꺼내 펼쳐 보게 되는 책인 거 같습니다. 큼직한 판형 덕분에 책장에 꽂아 두기만 해도 든든하고요.
요즘 은행잎이 하루가 다르게 노래지는 10월 끝자락입니다. <독일 4호 구축전차 / 4호 돌격포 사진집>을 덮고 나니 머릿속에 낮고 단단한 차체가 한 대 남은 기분이에요. 좋은 자료집 하나 들인 거 같아 마음이 넉넉합니다. 내일 출근할 때는 저도 IV호 구축전차처럼 몸을 낮추고 조용히 자리까지 진입해 보려고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가을 보내세요.
전차가 모자라던 시절 IV호 전차 차체로 버텨 낸 대전차 자주포 네 종을 개발 이야기, 박물관 실차 디테일, 전장 사진으로 따라가는 사진집.
#독일4호구축전차4호돌격포사진집 #4호구축전차 #4호돌격포 #야크트판터4 #IV호전차70 #AK커뮤니케이션즈 #하비재팬 #밀리터리사진집 #전차사진집 #구축전차 #돌격포 #2차세계대전 #전쟁사 #밀리터리책 #프라모델자료 #모형자료집 #서평 #책추천 #북스타그램 #BOOKU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