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
오사지마 마사오 지음, 박현아 옮김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9억이 통장에 있는데 나만 모른다면?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 서평


표지부터 좀 귀엽습니다. 하얀 바탕에 선 몇 개로 그린 인물들이 저마다 편한 자세로 있는데, 한 분은 엎드려서 턱을 괴고 책을 읽고 있고, 아래쪽 분홍 띠 위의 스님은 아예 다리를 쭉 뻗고 기대앉아 계시더라고요. 철학책 표지가 이렇게 늘어져 있어도 되나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자세가 곧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이었던 거 같아요.


책을 펴자마자 저자가 10초만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내 계좌에 1억 엔, 우리 돈으로 9억 원쯤이 들어 있는데 정작 나는 그 사실을 모르는 모습이래요.

아재 입장에선 9억이라는 숫자에서 이미 마음이 좀 흔들렸습니다만.

아무도 모르는 돈에 무슨 가치가 있냐고 하면, 저자는 그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숫자일 뿐이라고 답해요. 그리고 이 책은 그 1억 엔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존재, 그러니까 당신 자신을 알아보게 하려는 책이라고 소개하죠. 첫 장부터 이렇게 훅 들어오니 다음 장을 안 넘길 수가 없더군요.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은 일본에서 '숟가락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 유튜버 오사지마 마사오가 쓴 책이에요. 어려운 불경을 떠먹여 주듯 풀어줘서 숟가락인가 싶었는데, 읽어 보니 그 짐작이 영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붓다, 용수, 세친, 달마, 노자, 장자, 호넨, 신란, 렌뇨, 잇큐까지 열 명의 사상가가 차례로 나오는데요. 장 제목에 "노자와 곰돌이 푸의 닮은 삶의 태도", "달마 인형이 둥근 이유는 과도한 수행 때문이다" 같은 게 섞여 있어서 목차만 봐도 철학책 같지가 않았어요.


제일 특이하다고 느낀 건 장이 시작하는 방식이었어요. 사상가 소개로 바로 가지 않고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를 먼저 보여주거든요. 붓다 장은 아침 알람을 끄는 장면으로 열립니다. 상사가 보낸 "어젯밤에 준 보고서, 좀 더 알기 쉽게 만들 수 없을까?"라는 메시지 한 줄에 커피 향조차 느껴지지 않는대요. 딱히 나무라는 말도 아닌데 말이죠. 오후엔 동료의 푸념이 꼭 내 얘기 같고, 거래처 전화에는 필요 이상으로 고개를 숙이다가 수화기를 쥔 손바닥에 땀이 뱁니다. 퇴근 전철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보며 "또 쓸데없이 신경 쓰고 있네" 하고 중얼거리는 데서 장면이 끝나요.


남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다음 이어지는 말이 괜찮았어요. 쉽게 주눅 드는 건 약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만큼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고 주변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힘이 있어서 마음이 반응하는 거라고 해요. 다정한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도 강하게 반응하기 쉽다고도 하고요. 그러니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말고, "별거 아니야", "나중에 생각하지 뭐"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 보라고 권하는데, 이 두 마디가 생각보다 쓸모 있겠다 싶더군요.


붓다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도 재밌었어요. 석가족 왕국의 장남으로 태어나 돈, 지위, 명성을 다 가졌고, 학문과 무예까지 뛰어났던 사람이래요. 저자 말로는 지금으로 치면 그야말로 초엘리트였답니다. 최고의 미인이라던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해 자식 복까지 누렸는데, 그런 사람이 "언젠가 늙고 병들고 죽어갈 인생,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를 고민했다는 거예요. 저자는 이걸 '세계 최초의 중2병 발병'이라고 불러요.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는 이야기에도 갓난아이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을 리는 없다고 슬쩍 덧붙이고요. 세계 4대 성인이 나랑 같은 고민을 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좀 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맛보기로 한 대목만 옮겨 볼게요. 늘 남과 비교하고, 억지웃음을 짓고, 실력보다 잘나 보이려고 무리하는 모습들을 쭉 늘어놓은 다음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이 상태에서는 없으면 없는 대로 괴롭고, 있으면 있는 대로 또 괴롭다."

붓다는 이런 상태를 유무동연(有無同然)이라고 불렀대요. 우리가 바라볼 곳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상태라고 하네요. 그렇다고 깨달음의 경지까지 갈 필요는 없고, 지금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이는데, 여기서 마음이 좀 놓였어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건 장자 장의 첫 장면이었어요.

"또 졌다."

영업 실적이 나왔는데 동기 사사키가 1등이고 나는 중간보다 아래예요. 등 뒤에서 사사키 칭찬이 들리더니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은…"까지 이어집니다. 내 이름은 안 나왔는데 왠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은 그 기분이요. 점심시간에 다른 동료가 "이 자료는 사사키 프레젠테이션에 비하면 좀 약한데" 하며 넘기는 종이가 하필 내가 만든 자료였고, 포크를 든 손이 멈춥니다. 시험 점수, 스포츠 기록, 회사 할당량까지 인생은 늘 숫자와의 싸움이었다는 고백도 나와요. 마흔 줄 후반쯤 되면 그 숫자에 실적이 붙고, 연봉이 붙고, 요즘은 건강검진 수치까지 따라붙는 거 같아요. 저자는 1등을 거머쥐어도 그 1등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새로 생긴다는 아이러니를 짚은 다음 이렇게 정리합니다. "타인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지친다." 경쟁이 노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거기에 휘둘려 자신을 갉아먹지는 말자고 하니,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아서 좋았어요.


솔직히 콕 찔린 건 렌뇨 장 앞부분이었어요. 제목부터 '다정함 착취'입니다. 학교 운영위원회 회장이 "누구 이거 부탁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자 다들 시선을 떨구고, 그 침묵이 싫어서 결국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가 입에서 나와요. 운동회 담당에 바자회 준비, 소식지 편집까지 매번 그렇게 손을 들어 왔대요. 직장으로 넘어오면 "이거 해줄 사람?"이라는 말에 무작정 나서는 모습이 되고요. 그러다 나온 한 문장에 뜨끔했어요. "그렇게 주변 기대에 계속 맞추다 보면 어느새 좋은 사람이 그저 만만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회사에서 이십 년 넘게 지내다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게 되거든요. 저자는 그 답을 렌뇨에게서 찾아보자며 장을 이어 가는데, 그 얘기는 직접 펼쳐 보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에필로그에는 결혼하면 행복하고 미혼이면 불행하다, 부자가 되면 행복하고 가난하면 불행하다 같은 '잘못된 규칙'들을 표로 정리해 둔 부분이 있어요. 저자는 연봉, 성과, 성적, 체중 같은 숫자에 휘둘리는 마음을 '숫자병'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소중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부분까지 억지로 남에게 맞추거나 강박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 책의 요지예요. 그리고 이 문장이 나와요. "성인군자가 되지 않아도, 큰 부자가 되지 않아도,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약속에 늦은 친구를 '이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면 웃는 얼굴로 맞이할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조용히 옮겨간다는 얘기로 책이 마무리돼요. 거창한 깨달음보다 이런 손에 잡히는 예시로 끝나서 좋았습니다.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은 두께도 부담 없는 편이고, 장마다 고민 하나와 사상가 한 명씩 짝을 이루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돼요. 누가 나보다 앞서 있어서 속이 쓰린 날엔 장자 장을 펴고, 또 혼자 일을 떠안은 날엔 렌뇨 장을 펴면 될 것 같아요. 책장에 꽂아 두고 그때그때 꺼내 보기 좋은 책입니다.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한자 가득한 어려운 책부터 떠올리시는 분들도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은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일본에서 아마존 7개 부문 1위를 했다는데, 다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말이 그만큼 듣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시월도 끝자락이고 어느새 화요일이네요. 길가 나무들도 하나둘 잎을 내려놓는 계절인데, 저도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은 빼 봐도 되겠다 싶습니다. 좋은 책 만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다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오늘 하루는 너무 애쓰지 마시길요.


애쓰는 법만 배워 온 사람에게 열 명의 사상가가 힘 빼는 법을 알려주는, 출퇴근길에 꺼내 보기 좋은 동양철학 입문서.


#인생에한번은동양철학 #오사지마마사오 #박현아옮김 #딥앤와이드 #동양철학 #동양철학입문 #인문학책추천 #철학책추천 #붓다 #장자 #노자 #렌뇨 #있는그대로 #직장인책추천 #마음챙김 #비교하지않기 #신간도서 #책추천 #서평 #BOOKU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