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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십 대를 위한 도덕경 - 물처럼 부드럽게, 산처럼 단단하게 52주간의 생각 수업 ㅣ AI 시대, 십 대를 위한 철학
최태규 지음 / 다빈치페이지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물처럼 낮게, 산처럼 단단하게 | AI 시대, 십 대를 위한 도덕경 서평
언뜻 보면 초록 산이 겹겹이 솟은 그림 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산봉우리마다 책장이 비치는데, 초록 책들을 엎어서 쌓은 거더군요. 그 꼭대기 구름 위에서 교복 입은 아이 둘이 등을 맞대고 책을 읽고 있고요. 2,500년 된 할아버지 말씀이 AI한테 뭐든 물어보는 요즘 십 대한테 정말 먹힐까. <AI 시대, 십 대를 위한 도덕경>은 표지부터 그 질문에 그림으로 답을 해두고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10월도 끝자락이에요.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고, 월요일을 넘기고 화요일쯤 되면 좀 풀릴 법도 한데 어깨는 여전히 무겁네요.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날엔 퇴근하고 유튜브 틀어놓고 졸았을 텐데, 요즘은 서평단 책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재가 됐습니다. 사람 일 모르는 거 같아요.
저자 최태규 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2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쳐 온 분이라고 해요. 앞서 <AI 시대, 십 대를 위한 논어>를 펴냈고, 머리말을 보면 공자 이야기를 쓰고 나니 자연스럽게 노자에게로 이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공자가 인간성의 회복에서 답을 구했다면 노자는 인위적인 것을 내려놓는 데서 해답을 찾았다는 설명이 짧고 깔끔해서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도덕경>입니다"라는 한 줄로 넘어가는 대목도 꽤 시원시원했고요.

머리말에서 저자는 AI에게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지혜,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그리고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힘이에요.
"고전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를 가르칩니다."
회사 생활을 이십 년 넘게 해 보니 엑셀 함수는 검색하면 다 나오더군요. 그런데 한 소리 듣고 난 다음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는지는 어디에도 안 나와 있었어요. 그런 건 결국 사람이 오래 다듬어 온 말에 기대게 되는 거 같아요.
<AI 시대, 십 대를 위한 도덕경>만의 재미는 인물 코너에 있는 듯합니다. 1년 52주에 맞춰 매주 사자성어 하나와 인물 한 명이 짝지어 나오는데, 이 인물들이 독자한테 직접 말을 거는 형식이거든요. 김홍도, 모차르트, 워런 버핏, 권정생, 리처드 파인먼까지 시대도 나라도 제각각이에요. 차례를 훑다 보면 '반면교사'로 들어간 인물들도 눈에 띕니다. '잡으려 하는 사람은 잃는다'는 집자실지 자리에 궁예가,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해진다'는 다언삭궁 자리에 원균이 서 있더라고요. 배치만 봐도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유독 천천히 읽은 건 18주 상선약수, '가장 훌륭한 것은 물과 같다' 편이었어요.
"더러운 걸레를 빨 때도 걸레를 나무라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죠."
이어서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틈을 만나면 소리 없이 스며든다는 문장이 나와요. "시궁창에도, 진흙탕에도 물은 불평 없이 머무르죠"라는 문장에서는 좀 뜨끔했습니다. 저는 진흙탕 같은 회의에 들어가면 표정부터 먼저 나가는 사람이라서요. 장 끝에서는 지금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지 묻는데, 이 질문은 아이들보다 중년 직장인한테 먼저 날아오는 질문 같았어요.
그 뒤에 간디가 등장하는데, 첫마디가 "나는 사상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란다"예요. 할아버지가 손주를 앉혀 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말투입니다. 소금을 직접 만들려고 바닷가까지 걸었던 일, 물레를 돌려 천을 짰던 일을 담담하게 풀어놓더라고요. 감옥에 갇히고 굶고 맞으면서도 맞서 싸우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말투가 조용한데도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습니다.
"물은 바위와 싸우지 않아. 그저 돌아 흐를 뿐이지만, 끝내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이란다."

"눈에는 눈으로 맞서면 결국 온 세상의 눈이 멀게 된다."
아이들한테 "참아라, 부드럽게 해라" 하고 잔소리하면 한쪽 귀로 흘려듣잖아요. 그런데 역사 속 인물이 자기 목소리로 들려주면 이야기가 다르게 들어갈 것 같았어요. 교실에서 오래 아이들을 만나 본 분이라 이런 화법을 고른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맛보기로 하나 옮겨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새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서 오래 기다렸는데 막상 손에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좋은 모델이 눈에 들어와요." 지족을 풀어주는 부분이에요. 다른 장에서는 노자가 말한 배(腹)와 눈(目)을 이야기하면서 "눈이 원하는 것은 끝이 없어요"라고 하는데, 읽다 보니 스마트폰 자리에 자동차나 아파트 평수, 동기의 직함을 넣어도 그대로 말이 되더군요. 십 대를 위한 책인데 마흔 후반 아재 마음도 정확히 건드립니다.

각 장 끝에는 '가족과 함께 이야기 나눠요' 코너가 있어요. 질문이 다섯 개씩 붙어 있습니다. 마지막 52주의 질문 중에 이런 게 있더라고요.
"지금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놓아준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자리, 익숙한 일하는 방식, 예전에 잘했던 기억 같은 것들이 줄줄이 떠오르는 질문이었어요. 아이한테 묻기 전에 아빠가 먼저 대답을 준비해 둬야 할 것 같고요.
솔직히 처음엔 '~해요'체로 아이에게 말을 거는 문장이 어른 입장에서는 살짝 간지럽게 느껴졌습니다. 몇 장 넘기니 그 말투 덕분에 오히려 편하게 읽히더군요. 사자성어 네 글자도 한자부터 보면 낯설지만, 옆에 우리말 뜻이 바로 붙어 있어서 부담은 없었어요.
두께는 보통 소설책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노자는 5,000여 자만 남기고 함곡관을 넘어갔다는데, 그걸 풀어 쓰니 이만큼이 되네요. 노자 할아버지가 보시면 "다언삭궁이다"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한 주에 한 장씩이니 무게는 나눠 들면 됩니다.

소장 가치는 충분한 거 같아요. 한 번 읽고 꽂아 두는 책이 아니고 1년 내내 옆에 두고 펼치는 책이라서요. 머리말에도 "차례대로 읽어도 좋고, 마음이 끌리는 것부터 골라 시작해도 좋습니다"라고 되어 있어요. 저자는 "쉰두 개의 한자 성어 중 단 하나라도 '이게 내 좌우명이다'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십 대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식탁에 한 권 올려 두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처럼 <도덕경> 이름만 알고 제대로 펼쳐 본 적 없는 어른한테도 문턱이 꽤 낮은 책입니다.
맺음말 제목은 '선생님, 고맙습니다'예요. 첫 번째로 고마운 선생님이 노자더라고요. 이어서 <도덕경>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해 온 분들께 인사하고, 마지막엔 네 번째 책을 내기까지 곁에서 응원해 준 아내와 두 딸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가족과 함께 읽으라고 쓴 책의 끝이 가족에게 건네는 인사라서 보기 좋았어요.
창밖 은행잎도 하나둘 떨어지는 계절이에요. 나무도 저렇게 때 되면 내려놓는구나 싶네요. <AI 시대, 십 대를 위한 도덕경> 덕분에 1년을 같이 걸어갈 책이 한 권 생긴 기분이라 든든합니다. 상선약수라니까 저는 일단 커피 한 잔 줄이고 물부터 한 잔 더 마셔 보려고요. 다들 따뜻한 가을 보내세요.
물처럼 낮게 흐르는 법을 1년 52주에 나눠, 역사 속 인물들이 직접 들려주는 도덕경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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