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의 지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53가지 인생 지혜 ㅣ 메이트북스 슬림북 8
에픽테토스 지음, 강현규 엮음, 김성훈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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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북풍이 분다고 서풍을 불게 할 수는 없다, <에픽테토스의 지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서평


2천 년 전 철학자가 "화난 메시지는 바로 보내지 말고 잠시 두어라"라고 말했다면 믿어지시나요. 사고 싶은 게 생겼다고 곧바로 결제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처음엔 엮은이가 말을 너무 요즘식으로 바꾼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끝까지 붙드는 재미 같더라고요. 오늘 이야기할 책은 <에픽테토스의 지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입니다.


10월도 어느새 끝자락으로 가는 목요일이에요. 목요일은 주말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날이라 목요일이라는, 저 혼자 믿는 설이 있습니다. 네, 아재라서 그렇습니다.


표지부터 눈에 확 들어와요. 진한 벽돌색 바탕에 곱슬곱슬한 수염의 철학자 한 분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고, 그 아래에 "바꿀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라는 문장이 큼직하게 박혀 있습니다. 철학자 표정이 꼭 "자네, 또 쓸데없는 데 힘 빼고 있지?" 하고 묻는 것 같아요.


두께는 보통 책보다 확실히 얇은 편이에요. 손에 쥐면 가볍다 싶은데 그 안에 꼭지가 53개나 들어 있습니다. 한 꼭지가 짧아서 하나씩 끊어 읽기 좋고, 이어서 읽으면 네 개의 파트가 계단처럼 이어지더라고요.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는 데서 시작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법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책임을 다하는 법으로, 마지막엔 생각을 점검하고 바로 실천하는 법까지 올라갑니다.


<에픽테토스의 지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만의 특이한 점은 편역자의 말에서 먼저 보였어요. 엮은이 강현규 님이 밝히기를, 이 책은 <담화록>을 그대로 옮긴 완역본은 아니라고 해요. 제자 아리아노스가 스승의 강의와 대화를 받아 적은 <담화록>을 중심축으로 삼고, 짧게 압축된 <엥케이리디온>과 단편은 보완 자료로 참고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도 납득이 갔어요. <엥케이리디온>은 원칙을 파악하기엔 좋은데 왜 그 원칙이 필요한지는 많이 생략돼 있고, <담화록>에는 에픽테토스가 제자들과 묻고 답하며 생각을 바로잡아가던 현장이 남아 있다는 거죠.


그래서인지 책 전체에 질문하는 목소리가 깔려 있는 느낌이 듭니다. 편역자의 말에 나오는 두 문장이 딱 그 목소리예요.


"정말 그렇게 믿는가" "그렇다면 실제로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마흔 후반에 이 질문을 받으면 좀 뜨끔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에픽테토스 본인이에요. 꼭지마다 "나는 ~라고 말한다"로 말문을 열고, 중간쯤 가면 꼭 "당신도"라며 독자 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고대 로마의 선생님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구도라, 철학책인데도 상담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조연들도 꽤 나옵니다. 소리와 그림자만 보고 적이 왔다고 외치는 겁먹은 정찰병이 있고, 반대편에는 죽음과 가난을 살핀 뒤 그것들이 비겁함과 굴종보다 두려운 건 아니라고 본 디오게네스가 있어요. 사냥꾼의 깃털을 피해 달아나다 그물로 뛰어드는 사슴도 나오고, 죽음과 고통을 아이가 무서워하는 가면에 빗댄 소크라테스도 잠깐 얼굴을 비추고요. 비유가 하나같이 그림처럼 떠올라서 어려운 용어 없이도 뜻이 쑥 들어오는 편이었습니다.


헤라클레스에게 사자와 멧돼지가 없었다면 그 힘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었겠느냐는 물음도 좋았어요. 고난을 일부러 찾아다니라는 뜻은 아니라고 바로 덧붙이는 게 이 선생님 스타일이더군요. 그러고는 또 독자 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당신도 직장이나 관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사실을 차분히 확인하고 맡은 책임을 다하고 불필요한 분노를 줄일 수는 있다고요.


첫 꼭지에 나오는 배 이야기는 장면으로 남았어요. 배를 띄우려는 사람은 배와 짐을 준비하고 떠날 때를 기다릴 수는 있지만, 어떤 바람이 불지는 정할 수 없다고 하죠.


북풍이 분다고 원망하며 서풍을 불게 할 수는 없다.


직장 생활 오래 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힘을 뺀 데가 어디였나 떠올려 보면, 대부분 바람 쪽이었던 거 같아요. 윗사람 기분, 인사 결과, 남들의 평가 같은 것들요. 책에서는 시험에서 준비하고 답하는 건 당신 몫이지만 결과까지 정할 수는 없고, 관계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약속을 지킬 수는 있어도 상대 마음까지 바꿀 수는 없다고 해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라는 말도 아니더군요. 몸은 돌보고 재산은 관리하고 책임도 다하되, 그 결과까지 반드시 내 뜻대로 되라고 요구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사람들 앞에서 떨릴 때는 평가보다 내가 할 일에 집중하라"라는 꼭지에는 혼자 연주할 땐 멀쩡하던 음악가가 극장에만 서면 떨린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연주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박수와 평판 욕심까지 얹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발표나 면접을 앞두고 있다면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하라고 합니다. 첫 문장을 익히고, 핵심을 정리하고, 예상 질문에 답하는 연습을 하고, 실수하면 바로잡으면 된다고요. 철학자가 이렇게 실무적인 조언을 할 줄은 몰랐어요. 연말이 다가오면 회사마다 평가 얘기가 슬슬 나오는데, 그 시즌에 책상 앞에 붙여두고 싶은 문장도 하나 있었습니다.


"다만 한 번의 칭찬이나 비판을 내 능력 전체에 대한 판결처럼 받아들이지 마라. 평가는 다음 수행을 고치는 자료로 쓰면 충분하다."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욕망을 모두 채우는 삶을 자유라고 부르지 마라"였어요. 돈을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돈 줄 사람 눈치를 보게 되고, 높은 자리를 원하면 그 자리를 줄 사람에게 매이고, 좋은 평판을 원하면 사람들 말에 흔들린다고 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이 이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쥔 사람이 내 기쁨과 두려움까지 좌우하기 시작한다."


이 나이쯤 되면 이 말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더 높은 자리를 얻으려고 아첨하고, 옳지 않은 요구를 받아들이고, 자기 기준까지 바꾸게 된다면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고 있는지 보라는 대목에서는 회사에서 본 여러 얼굴이 스쳐 갔습니다.


그중엔 제 얼굴도 있었고요.


그래도 에픽테토스가 욕망을 없애라고 몰아붙이지는 않아요. 무엇을 욕망할지 가리라고 하죠. 정직하게 행동하고 책임을 다하고 자기 판단을 바로 세우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허락해줄 필요도 없다는 말이 은근히 든든하더라고요.


"말을 잘하기보다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판단하라"는 꼭지는 회의실 풍경과 겹쳐 읽혔어요. "유창함을 지혜와 혼동하지 마라." 말하기 전에 왜 이 말을 하려는지 보라고 하는데, 상대에게 꼭 필요한 말인지, 아니면 내가 더 많이 안다는 걸 보여주거나 상대를 이기고 싶은 건지 돌아보라는 뜻이래요. 마이크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 분들이 먼저 떠오르긴 했는데, 솔직히 저도 가끔 그럽니다.


결론부터 정해놓고 근거만 모으는 회의 얘기도 나와요. 추론의 규칙을 다루는 꼭지인데, 진짜 은화와 가짜 은화 비유가 쉽게 들어오더라고요. "진짜는 받고 가짜는 버려라"라는 원칙만 안다고 돈을 가릴 수 있는 건 아니고, 실제로 둘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원하는 결론이 나오면 근거를 쉽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안 드는 결론에는 더 까다로워지기 쉽다는 대목에선 할 말이 없었어요.


화가 나거나 욕망이 생길 때를 다룬 꼭지에는 이런 권유가 나옵니다. 마음에 떠오른 인상을 향해 "잠깐 기다려라. 네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겠다"라고 말해보라는 거예요. 화가 나면 지금 당장 되갚아야 속이 풀릴 것 같고, 욕망이 생기면 지금 못 얻으면 큰 걸 놓칠 것 같지만, 강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요. 분노도 반복할수록 습관이 된다는 말에 이어 "감정은 먼저 찾아올 수 있어도, 그다음 행동까지 감정에게 맡기지는 마라"는 문장까지 오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결제 버튼 앞에서도 통하는 말이라 더 반가웠고요.


웃음이 났던 문장도 하나 있어요. 술이나 쾌락에 쉽게 끌린다면 처음엔 그런 상황과 거리를 두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약한 습관을 굳이 강한 유혹 앞에 세울 필요는 없다." 2천 년 전 철학자가 이렇게까지 현실적이어도 되나 싶었어요. 같은 꼭지에서 철학 공부를 어려운 논리부터 시작하지 말고 무엇을 원하고 피할지부터 바로잡으라고 하는데, 네 파트가 왜 이 순서로 놓였는지 그제야 감이 왔습니다.


처음 몇 꼭지는 솔직히 살짝 혼나는 기분이었어요. <에픽테토스의 지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제목부터 명령형이고, 꼭지 제목도 "~하라", "~마라"가 53번 이어지거든요. 그런데 읽어갈수록 그 말투가 꾸지람보다는 오래 알고 지낸 선배의 직언처럼 들리더라고요.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이 나이 들수록 귀해지는 법이니까요.


한 번 읽고 꽂아두기엔 아까운 책 같아요. 꼭지 제목만 훑어도 그날 나한테 필요한 말이 하나쯤은 걸립니다. 사람 때문에 속 끓는 날엔 모욕을 같은 방식으로 되받아치지 말라는 34번을, 발표를 앞둔 날엔 9번을 펼치면 되는 식이라 책상 한쪽에 두고 손 닿는 대로 꺼내 보기 좋겠어요.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부담이 없고요. 스토아철학이 처음이어도 겁먹을 필요 없는 책이라,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늦가을이에요. 북풍이 분다고 서풍을 불게 할 수는 없다고 하니, 이 찬바람은 원망하지 말고 외투 한 겹 더 챙기는 걸로 대응해 보겠습니다. <에픽테토스의 지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덕분에 든든한 선생님 한 분 모셔온 것 같아서 마음이 꽉 찬 기분이에요. 남은 10월, 다들 바꿀 수 있는 것에 힘 쓰시면서 따뜻하게 보내세요.



북풍을 원망하는 대신 내 돛을 손보게 해주는, 2천 년 전 선생님의 53가지 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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