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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미래를 열어 주는 이야기의 힘 - 46년 유아 교육 전문가가 발견한 가장 쉽고 강력한 이야기 교육법
고순애 지음 / 미디어숲 / 2026년 10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다시 소리 내 읽고 싶어진 책, 고순애 <아이의 미래를 열어 주는 이야기의 힘>
선생님, 신기한 힘은 어디서 올까요?"
이야기를 듣던 한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물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동화였는지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이 질문만은 또렷하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털어놓습니다. 그날 대화는 "신기한 힘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라는 말로 마무리됐다고 해요. 46년을 아이들 곁에서 보낸 분이 은퇴를 앞두고 그 기억을 붙들고 묶어 낸 책이 바로 <아이의 미래를 열어 주는 이야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살짝 망설였어요. 사십 대 후반 아재가 유아교육서를 붙들고 있어도 되나 싶어서요. 그런데 첫 장부터 생각보다 제 얘기 같은 대목이 많더군요.
저자는 배움의 자리에 책 대신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들어섰고, 이제는 AI가 사소한 일상까지 들어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느 순간 이야기 들려주기를 멈췄다고 하죠. 기계에 기대어 '틀어 주는' 형식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보여 주기'로 넘어갔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직장에서도 얼굴 보고 할 얘기를 메신저 한 줄로 넘긴 지 오래라 남 일 같지가 않았어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대신 동영상을 보여 주고, 직접 설명해 주는 대신 검색 결과만 알려 준다는 문장도 이어지고요.

다른 페이지보다 유독 천천히 따라간 건 이 문장이었어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 그 안에는 말의 내용뿐 아니라 표정과 소리의 높낮이, 잠시 멈추는 호흡, 눈빛과 마음이 함께 전달됩니다."
그래서 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더해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가'까지 헤아리게 된다고 해요. 화면이 채워 주지 못하는 게 바로 그 틈에 있다는 얘기 같았습니다.
잠시 멈추는 호흡.
이 말이 유난히 좋았어요. 회의 자리에서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중요한 대목 앞에서 한 박자 쉬던데, 아이 앞에서도 그 한 박자가 통한다는 거니까요. 2장으로 가면 이 얘기가 훨씬 구체적으로 펼쳐집니다. 어디서 쉬고 어디에 힘을 주느냐가 말의 빠르기만큼 중요하다고 하고, 잔잔한 장면에서는 낮고 부드럽게, 클라이맥스에서는 조금 더 힘 있게 목소리를 내라는 식으로 호흡과 발성, 발음까지 하나하나 알려 주더라고요.
솔직히 이쯤에서 조금 뜨끔했습니다. 프롤로그에 많은 부모가 '굳이 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는 대목이 있는데, 저도 딱 그 질문을 품고 있었을 사람이거든요. 호흡이니 발성이니 하는 말이 나오니 동화 구연가쯤은 돼야 하는 건가 싶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고요. 그런 마음을 저자가 미리 알았는지, 프롤로그 끝에 "오늘부터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문장을 놓아두셨더군요. 몇 분이면 된다는 말에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느낌이었어요.
<아이의 미래를 열어 주는 이야기의 힘>에서 제일 신기했던 건 이야기를 계절별로 묶어 놓았다는 점이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들려줄 이야기가 따로 있는데, 지금이 가을이라 그런지 가을 편 목록에 먼저 눈이 가더라고요. (아기 비둘기의 모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빨간 망토), (가장 아름다운 깃털), (금도끼 은도끼), (캥거루의 짧은 발)까지 전래동화와 명작과 우화가 한데 섞여 있습니다. 컬러 삽화도 함께라 넘기는 맛이 있고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이렇게 흘러가요. 떡 잘 만드는 할머니가 손주들 주려고 꽃떡을 보자기에 싸서 고갯길을 넘는데요.
한 고개 넘어서, "아이고, 허리야!" 두 고개 넘어서, "아이고, 다리야!" 세 고개를 넘어서는데…. "어흥!"
그러고는 할머니가 '털썩' 주저앉고, 호랑이는 떡을 넙죽 받아 '쩝쩝' 씹어 먹더니 잽싸게 달려와 앞을 '턱' 가로막습니다. 글로만 봐도 목소리 톤이 저절로 바뀌는 게 느껴지더군요. 2장에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살려 읽으라던 얘기가 여기서 바로 실전이 되는 셈이에요. 할머니가 끝까지 당하고만 계시는 분은 아니더라고요. 그다음은 직접 확인해 보시면 재밌어요.
이야기마다 끝에 '이렇게 물어보세요'라는 칸이 붙어 있는데, 이게 진짜 알맹이 같아요. 떡 이야기 뒤에는 "호랑이는 왜 할머니에게 자꾸 떡을 달라고 했을까요?" 같은 질문이 기다리고, (빨간 망토) 뒤에는 "숲이나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까지 나옵니다. 내용을 떠올리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행동의 이유, 인물의 감정, 다른 가능성, 자기 경험으로 차츰 넓혀 가라던 2장의 순서가 그대로 살아 있더라고요. 이야기가 아이의 생활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느낌이랄까요.

그중에서 어른인 저한테 오히려 더 필요했던 건 (가장 아름다운 깃털)이었어요. 새들의 나라에서 해마다 '가장 아름다운 깃털 뽑기 대회'가 열리는데, 원앙은 올해 일등은 바로 나라며 목을 쭉 빼고, 공작은 꼬리를 부채처럼 활짝 펼치고, 백조는 작년에 우승한 걸 잊었냐며 긴 목을 숙여 깃털을 다듬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까마귀는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죠.
"온통 까맣기만 하잖아. 정말 볼품없어."
그러다 연못가에 떨어진 주황색 깃털 하나를 주워 몸에 꽂아 보고, 밤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새들이 떨어뜨린 깃털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빨간 깃털 하나, 파란 깃털 하나, 노란 깃털 하나….
질문 칸 마지막 줄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좋은 점을 찾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인데, 아이용 질문인데도 마흔 넘은 직장인한테 더 급한 질문 같더라고요. 연말 평가 철이 다가오면 옆자리 동료 깃털이 유독 화려해 보이는 게 사람 마음이라서요. 아이한테 물어보려다 제가 먼저 대답을 고민하게 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게 또 좋았어요.
<아이의 미래를 열어 주는 이야기의 힘> 4장은 들려준 이야기로 놀이를 이어 가는 장이에요. 찰흙, 플레이콘, 클레이로 만들고, 여러 도구로 그리고, 동시와 동요로 글을 짓는 활동이 준비물과 진행 과정까지 차례로 정리돼 있습니다. 제 눈에 들어온 건 활동마다 붙은 '이런 점은 어려워할 수 있어요'라는 칸이었어요. 찰흙은 색이 제한적이고 축축한 자국이 옷에 남을 수 있다, 클레이는 어린아이라면 삼킴 사고 위험이 있으니 보호자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리기는 아이가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점만 늘어놓아도 될 텐데 이런 얘기를 먼저 꺼내 놓는 건 현장에서 오래 아이들을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같더군요.
만들기에서도 질문은 계속됩니다. 플레이콘 활동에는 왜 그걸 만들고 싶은지 이유를 묻고, 완성된 작품을 보며 무엇을 느꼈는지 묻고, 아이의 대답에 맞춰 뒷이야기를 끌어가도 좋다는 단계까지 들어 있어요. 그리기 쪽 팁에는 완성도를 따지는 대신 이야기의 특징을 잘 살린 부분이나 독창적인 표현을 찾아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라는 말이 있고요.

어휘력 활동에는 동요 (악어 떼)를 (혹부리 영감) 버전으로 바꿔 부르는 예시가 실려 있는데, 이게 꽤 웃깁니다.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가 "혹이 달린 혹부리 영감"이 되고, "악어 떼가 나올라"가 "도깨비가 나올라 도깨비"로 바뀌어요. 보다가 회사 버전으로 '부장님이 나올라 부장님' 하고 개사해 볼 뻔했네요. 원래 글과 바뀐 글을 비교하면서 뭐가 달라졌는지 이야기 나눠 보라는 단계까지 있어서, 이렇게 놀다 보면 낱말이 저절로 늘겠다 싶었습니다.
프롤로그 맨 끝 서명도 기억에 남아요. "유난히 더웠던 여름, 미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떠올리며 여명 고순애." 아이들과 46년을 한 걸음씩 걸어왔다는 첫 문장과 이 서명을 나란히 놓고 보면, 아이들을 가르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같이 길을 걷는 사람으로 대해 온 분이라는 인상이 들더라고요. 그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에 이 책을 만나니, 저자가 떠올렸다는 시원한 바람이 이제 독자들한테 닿고 있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꽂아 두는 책이라기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꺼내 쓰는 책에 가까운 거 같아요. 계절마다 들려줄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마다 질문이 붙어 있고, 뒤에는 만들기와 그리기와 놀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이라면 누구 손에 들려도 쓸모가 있겠더라고요. 보통 육아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라 들고 다니다 보면 팔뚝에 알이 좀 배길 것 같은데, 그것도 이야기의 힘이라고 우겨 보겠습니다.
수요일, 한 주의 허리를 지나는 날이라 그런지 마음이 조금 느슨해집니다. 길가 나무들도 하나둘 물들기 시작했고, 저녁 바람엔 제법 쌀쌀한 기운이 섞였어요. <아이의 미래를 열어 주는 이야기의 힘>을 덮고 나니,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가을 편 이야기 하나쯤은 소리 내서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잠시 멈추는 호흡까지 흉내 내면서요.
좋은 책 한 권 만나서 마음이 한결 든든해진 하루예요. 다들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화면을 끄고 아이 곁에 앉아 단 몇 분이라도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46년 유아교육 현장의 노하우를 질문과 놀이까지 꾹꾹 담아낸 다정한 실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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