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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영어책을 덮었다면 - 덮었던 영어책을 다시 펼치게 만드는 공부법
소피아 지음 / 북플레이트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장에서 영어책 한 권을 꺼내 옆면을 세워 보면 손이 닿은 앞쪽만 색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형광펜이 끊긴 그 경계가 지난번에 멈춘 자리라는 거죠. <오늘도 영어책을 덮었다면>은 바로 이 장면으로 이야기를 엽니다. 재작년에 산 문법책, 작년에 산 단어장, 지난달에 산 기본서가 출판사도 두께도 다른데 필기가 멈춘 자리는 이상하게 비슷하다는 대목에서는 괜히 뜨끔했어요.
제 책장이라고 다를까 싶더군요.

어느새 10월도 셋째 주, 월요일이에요.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서늘해져서 옷장 안쪽에 넣어 둔 외투가 슬슬 생각나는 때죠. 월요일은 "이번 주부터는 진짜 한다"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요일인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제목이 유난히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요즘 서평단 하면서 새 책 받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는데, 이번 책은 두께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보통 책보다 얇은 편이라 손에 쥐기 편하거든요. 제목은 덮었다면인데 아재는 일단 펼치고 봅니다. 덮는 것도 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자 소피아 쌤은 강의실에서 학습자가 어디서 막혔는지부터 찾아 주는 방식으로 가르쳐 온 분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글 전체가 상담실에 마주 앉아 듣는 말투에 가깝습니다. 혼내는 기색이 하나도 없어요. 공부를 그만두면 대개 자기 탓부터 하게 되는데, 그 얘기를 받아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게으른 사람은 교재를 사지 않습니다. 계획표를 만들지도 않고, 첫 주에 하루도 안 빠지고 책을 펴지도 않아요. 다시 시작한 기록이 여러 번 있다는 건 그때마다 시간과 돈을 쓰셨다는 뜻입니다."
의지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두셔도 된다는 말이 뒤에 붙는데, 이 나이쯤 되면 누가 이렇게 편들어 주는 말이 은근히 반갑잖아요. 일이 틀어지면 사람부터 탓하기 쉬운 게 직장이기도 하고요.

<오늘도 영어책을 덮었다면>만의 특이한 점을 꼽자면 역시 5분 레벨 진단이에요. 문법, 어휘, 읽기 다섯 문항씩에 듣기 세 문항이고, 듣기는 QR로 음원을 들으며 풉니다. 재미있었던 건 푸는 규칙이었어요. 모르는 문항은 찍지 말고 비워 두라고 해요. 보기가 세 개라 찍으면 셋 중 하나는 맞는데, 그렇게 두세 개만 섞여도 결과가 한 구간 올라가서 지금보다 앞선 자리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는 거죠. 그게 바로 지난번에 해 본 방식이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한 문항에 20초, 사전과 검색은 금지.
문항을 들여다보면 은행 금리, 파일 백업, 1분기 매출 발표, 환불 영수증, 피트니스 센터 이전 안내 메일 같은 문장이 줄줄이 나와요. 영어 문제인데 회사 메일함을 열어 본 기분이 살짝 들더군요.
채점은 맞은 개수만 영역별로 셉니다. 총점은 내지 않아요. 숫자 네 개를 보고 어휘가 낮으니 단어장부터 사자는 식의 결정도 잠깐 미뤄 두라고 해요. 다른 영역이 원인이어서 그쪽이 낮게 나온 경우도 있다고요. 결과가 예상보다 낮게 나와도 오히려 진단이 제대로 됐다는 뜻에 가깝다는 말까지, 끝까지 다정한 편이에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Chapter 4였어요. 하루 분량을 정할 때 보통 하는 양과 가장 조금 하는 양을 따로 정하라는 대목입니다. 가장 조금 하는 양은 그날 아무리 안 돼도 이 정도는 한다는 선이에요. 단어 5개나 문법 한 장처럼 10분 안에 끝나는 분량이죠. 10개를 못 할 것 같은 날엔 대부분 아예 안 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다 못 할 거면 내일 제대로 하자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한 날과 안 한 날의 차이는 분량보다 큽니다."
이 문장은 영어 말고도 여기저기 갖다 붙이고 싶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운동이든 일기든, 하다못해 집 정리든.
계획을 요일별이 아니라 한 주 단위로 적으라는 이야기도 이어져요. 화요일에 못 하면 목요일엔 이틀 치가 밀려 있고, 주말에 몰아서 하거나 계획을 새로 세우게 된다고요. 그런데 새로 세운 계획이 처음 것보다 대개 더 빡빡하다는 대목은 직장 다니는 사람 다이어리를 옆에서 들여다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 주를 7일이 아닌 5일로 보고 숫자를 잡고, 지켰는지 판정도 주말에 한 번만 하라고 합니다. 일주일에 일곱 번 받던 성적표가 한 번으로 줄어드는 셈이에요.

"안 지킨 게 아니라 처음부터 지킬 수 없게 세워져 있던 쪽에 가깝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걸 전제로 짠 계획은 하루를 못 한 순간부터 틀린 계획이 된다는 설명 끝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마흔 넘어 세웠다가 흐지부지된 온갖 계획들이 줄줄이 떠오르더군요.
솔직히 처음에 좀 걸렸던 건 목표 점수를 계획에 적지 말라는 대목이었어요. 숫자가 눈앞에 있어야 힘이 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몇 점을 받겠다는 건 계획보다 결과에 가깝다고 해요. 그래서 이번 주에 뭘 할지 정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고, 매주 그 숫자를 보면서 아직 멀었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거죠. 그 설명을 읽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언제까지 끝내겠다는 날짜도 시험 날짜가 정해지면 그때 거꾸로 세어서 넣으면 된다고 하고요.
<오늘도 영어책을 덮었다면>은 소장해 두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어요. 책 곳곳에 직접 적는 칸이 있거든요. 학습 기록표, 진단 기록표, 보통 하는 양과 가장 조금 하는 양을 적는 표까지 있어요. 에필로그에서는 몇 달 뒤 다시 펴게 되면 앞쪽으로 가 보라고 해요. 처음 적어 둔 기록표와 진단 결과 옆에 지금 상태를 채워 보면, 예전에 멈췄던 자리를 훌쩍 지나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요. 연필

이랑 같이 책상 위에 오래 놓여 있을 책 같습니다.
에필로그 끝자락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끝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맞는 순서를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영어를 여러 번 시작했다 멈춘 사람들을 만나 왔는데, 대부분 이미 여러 번 애를 썼더라는 이야기 끝에 붙은 말이라 더 진심으로 들리더라고요. <오늘도 영어책을 덮었다면>이 건네는 건 결국 순서와 방법이에요. 저자도 에필로그에서 그렇게 말하고요. 영어 앞에서 몇 번 넘어져 본 어른이라면, 특히 시간을 쪼개 쓰는 직장인이라면 잘 맞을 것 같아요. 혼나는 느낌 없이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길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걸 보니 가을도 한가운데를 지나는 모양이에요. 월요일이니까 거창한 다짐은 접어 두고, 단어 다섯 개로 한 주를 열어 볼까 해요. 제목처럼 오늘도 덮을 뻔한 단어장이 있다면, 이번엔 덮지 말고 덥석 잡아 보시죠. 좋은 책 만나서 한 주를 든든하게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영어책을 자꾸 덮는 건 의지 탓이 아니라 출발점과 계획을 짜는 방식 때문이라고 다정하게 알려주는, 가장 조금 하는 날까지 계획에 넣어 주는 영어 공부 설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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