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 - 서툰 가족을 지켜 내는 다정한 대화의 힘
지지부부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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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가장은 무거운 짐을 먼저 드는 사람, 10월에 만난 부부 에세이 <나는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부모가 된 것 같아?"

아이가 생긴 뒤 남편 지원 씨가 아내 지희 씨와 나눴다는 이 질문이 책 한가운데쯤에 놓여 있어요. 저는 이 대목에서 제목의 비밀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고 하더군요.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을 때도, 아내의 배가 불러 올 때도 아빠가 됐다는 실감이 좀처럼 따라오지 않았다는 남편 쪽 고백을 읽고 나니, 이 긴 제목이 참 정직하게 붙은 거 같았어요.


<나는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

10월도 어느새 중순이고, 한 주를 여는 월요일이에요. 아침 공기가 제법 서늘해져서 겉옷을 하나 더 걸치게 되는 요즘, 한 가족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꺼내 놓으니 마음 한쪽이 괜히 데워지는 거 같습니다.


지은이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지지부부'로 알려진 김지원, 안지희 부부입니다. 띠지에 적힌 41만 크리에이터라는 문구를 보고, 솔직히 처음엔 화면 속 밝은 부부의 웃긴 일화 모음쯤이겠거니 넘겨짚었거든요. 막상 펼쳐 보니 카메라가 꺼진 뒤의 이야기가 훨씬 많더군요. 연애할 때부터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웃으면서도 서운했던 순간들을 꽤 솔직하게 꺼내 놓아서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만의 재미는 꼭지마다 제목 위에 붙은 이름표에 있는 거 같아요. '지희', 그리고 '지원'. 누가 쓴 글인지 먼저 알려 주고 시작하니까 같은 시절을 아내 자리와 남편 자리에서 번갈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꼭지 끝에는 QR코드가 있어서 그날의 영상으로 바로 건너갈 수 있고, 장마다 끝에는 '지지부부 TIP'이 따로 실려 있습니다. 책 한 권이 영상 채널과 손을 잡고 있는 모양새라 참 요즘 책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장의 '싸움을 만들지 않는 두 가지 룰'은 지희 씨가 쓴 꼭지예요. 두 사람이 12년 동안 제대로 싸운 건 다섯 번 정도라 한 손으로 다 셀 수 있다고 하네요. 둘 다 한번 마음먹으면 좀처럼 휘지 않는 성격이라 오히려 더 조심한다는 거죠. 휘지 않는 것끼리 세게 부딪히면 한쪽은 부러진다는 걸 아니까요.

첫 번째 룰은 '상대방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입니다. "나는 그 부분에서 기분이 나빴어."라는 말에 "왜 그게 기분이 나빠?" 하고 되묻는 순간, 상대가 꺼내 놓은 마음을 받아 주는 대신 저울 위에 올려 자격 심사를 하게 된다는 얘기가 이어져요. 그리고 이 문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마음에는 영수증이 없다."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에서 피식 웃음이 날 거 같아요. 영수증 없으면 아무것도 처리가 안 되는 세상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 보니, 사람 마음에까지 증빙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두 번째 룰은 '너는!' 안 하기예요. "신발 정리 좀 잘해 줘."라는 말에 "너는 안 하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하네."로 받아치면, 그때부터 누가 더 티끌 없는 사람인지 겨루는 시합이 시작된다고 하더군요. "심판도 없고, 이겨도 남는 게 없는 시합이다." 사무실에서도 이 시합은 꽤 자주 열리는 거 같은데 말이죠.

두 사람은 이 룰을 집 안에 놓아둔 낮은 문턱에 빗대요.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꼭 발이 걸린다고요. 룰을 깜빡했을 때 한 사람이 "내가 그렇다면?" 하고 슬쩍 물으면 반대쪽에서 "아, 그런 거지. 오케이! 맞아." 하는 답이 돌아온다는 대목은 귀여워서 웃음이 났습니다.


다른 꼭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건 2장의 '가장의 무게'였어요. 지희 씨가 초록색 배가 불룩 나온 임산부 체험 조끼를 빌려 오는데, 7kg 남짓이라 지원 씨는 그리 힘들지 않았대요. 그런데 아내가 그 조끼를 입은 채로 대형 마트에 가자고 합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내가 너무 신나 보여서 따라나섰다는데, 마트에 계신 분들이 보기 좋다면서 당신 딸도 저런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네요.


집에 돌아와 "어때! 이제 나를 좀 이해할 수 있겠어?" 하고 묻는 아내의 표정이 너무 좋아서, 지원 씨는 조끼를 입은 채로 잠까지 자고 다음 날 반납 직전까지 벗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고는 이렇게 씁니다. "하지만 아주 잠깐, 그 무게의 끄트머리 정도는 만져 본 셈이었다."

끄트머리. 다 안다고 하지 않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꼭지 끝에서 지원 씨는 '가장'이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는데, 제 또래 직장인한테는 이 단어가 유독 크게 들리잖아요. 그 시절 우리 집 가장은 분명 아내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은 가족을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먼저 드는 사람이라고." 월급 들고 오는 사람이 가장이라고 배우며 자란 세대라 그런지, 이 문장 앞에서는 읽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지더군요.


지원 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대목도 있었어요. 수영을 처음 배우는 지희 씨 곁에 있고 싶어서, 본인은 수영을 꽤 하는데도 기초반에 같이 들어갔다고 해요. 수영 선생님은 금세 눈치채셨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 주셨다고요. 헤엄치는 척하면서 실은 아내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는데, 읽는 제가 다 쑥스러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3장의 '서로가 모르는 시간'은 지희 씨 꼭지예요. 남편이 새벽에도 알람 없이 깨서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며 물티슈를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사 둘 만큼 육아는 5:5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집에서 일하다 보니 두 사람은 24시간을 붙어 지냈고, 바로 그게 갈등의 씨앗이 됐대요.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니 굳이 물어볼 것도, 대화할 거리도 점점 사라졌다는 거죠.

"하다못해 한 명이 직장에 다닌다면 밤늦게 치킨을 뜯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라도 할 텐데 우리에게는 그조차도 없었다." 이 대목에서는 출퇴근하는 사람의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밖에서 지쳐 돌아온 하루도 집에서 풀어놓을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얘기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이 찾은 답은 '내가 모르는 상대만의 시간'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돌아와서 조잘조잘 이야기해 주기로 한 거죠. 지희 씨의 첫 외출은 미용실에서 시작돼요. 단발로 자르고 펌을 하면서 속으로 "안지희, 아직 죽지 않았어." 하고 생각했다는데, 그 한마디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카페에서 혼자 즐기는 게 왠지 미안해서 남편 줄 쿠키를 두 상자 더 샀는데, 사실 남편은 쿠키를 잘 먹지 않는다는 고백. 홈캠 속에서 아기와 까꿍 놀이를 하는 남편을 보고 당장 뛰어가고 싶은 걸 꾹 참는 마음. 집까지 한 시간을 걸으며 최유리의 (숲)만 반복해 듣고, 오랜만에 들어간 코인 노래방에서 고음마다 목이 갈라졌다는 이야기까지.

"노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쓴 문장인데, 일만 하다 중년이 된 사람한테도 그대로 들어맞는 거 같더라고요. 저도 얼마 전까지는 퇴근하면 유튜브만 보다 잠들던 사람이라 남 얘기 같지가 않았어요.


밤 11시에 들어온 아내를 남편은 "우와, 너무 예쁘다!" 하고 반겨 주고, 두 사람은 잠든 아기에게 조용히 입을 맞춘 뒤 거실로 나와 수다를 시작해요. 그렇게 만들어 낸 '적당한 거리감, 적당한 긴장감, 적당한 궁금함'이 모두 아이를 낳은 부부이기 전에 연인이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지희 씨는 말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여백이 필요하다는 얘기.

솔직히 마음에 걸렸던 꼭지도 있어요. 3장의 '애기가 애기를 낳았다'입니다. 남자 입장에서는 쉽게 읽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는 뜻이에요. 병원 로비의 미닫이문이 등 뒤에서 닫히는 순간부터 얇게 닳은 병원 가운, 침대 아래 놓인 아무 장식 없는 스테인리스 양동이까지 하나하나가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그 양동이를 보고서야 정말 아이가 나온다는 실감이 몰려왔다는 대목에서는 읽는 속도가 확 줄더라고요.


진통이 이어지는 동안 남편은 좁은 간이침대에 몸을 접듯 기대어 꾸벅꾸벅 졸았다고 해요.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잔 걸 알기에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는데, 지희 씨는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나를 조금 편안하게 만들었다"고 씁니다. 아홉 시간이 지나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고, 척추에 무통 주사를 맞던 그 몇 초를 출산 과정 전체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꼽아요. 몸의 절반이 나에게서 조용히 멀어져 가는 기분이었다는 문장을 읽으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끝내 다 알 수 없는 시간이 그 안에 흐르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라는 제목에서 '갑자기'라는 말이 어떤 무게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에필로그에서 지희 씨는 자신을 편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찍은 영상에서 어떤 장면을 남기고 어떤 장면을 버릴지 고르는 게 일이라서, 이 책도 처음엔 재밌는 하이라이트 위주로 쓰려고 했대요. 진통 중에 자궁 수축 수치를 보고 비트코인 시세냐며 던졌던 농담 같은 것들로요. 그런데 쓰다 보니 손이 자꾸 다른 샛길로 빠져서, 하루 대여료가 400만 원인 드레스 앞에서 위축됐던 마음 같은 것들이 새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아, 이건 편집된 장면 뒤에 있던 진짜 이야기들을 쓰는 일이구나.' 하고 깨달았다고요.


이 책이 이만큼 솔직해진 건 아마 그 샛길 덕분인 거 같아요. 마지막 장에서는 책을 덮고 나면 곁의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 봤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좋은 장면 말고, 잘려 나갔을 법한 쪽부터."

책은 한 손에 가볍게 들리는 크기라 부담이 없어요. 7kg짜리 조끼 체험을 이 책으로 하려면 몇십 권은 쌓아 들어야 할 판이니, 저는 그냥 한 권씩 읽는 걸로 만족할게요. 출산 후 처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찍은 지희 씨의 셀카, 마지막 장에 실린 세 식구 가족사진까지 들어 있어서 남의 집 앨범을 넘겨보는 기분도 듭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나는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를 식탁 한쪽에 올려 두고 부부가 번갈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풍이 하나둘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중순, 월요일부터 좋은 책 이야기로 한 주를 여니 기분이 괜찮네요. <나는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당신은 서서히 아빠가 되었다> 덕분에 저도 곁에 있는 사람한테 편집되지 않은 쪽부터 먼저 물어보고 싶어졌어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요즘 저는 사계절 내내 책을 끼고 다니니, 이것도 아재 나름의 '책임감'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좋은 책 만나서 마음 한쪽이 든든해진 월요일이에요.


마음에는 영수증이 없다고 말하는 부부가, 서로 다른 속도로 부모가 되어 가며 다시 같은 편으로 돌아오는 법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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