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기술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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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말솜씨는 목록에 없었다, 책사 15인에게 배우는 <설득의 기술>


회의실에서 "예스"를 말하는 쪽은 대개 직급이 낮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자기 참모 앞에서 무조건 "예스!"라고 하는 게 상책이었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그의 책사 루이 하우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득의 기술>은 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책이 되어버렸어요.


<설득의 기술>은 김옥림 작가가 동서고금의 책사 15인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책이에요. 중국에서는 제갈량, 순욱, 장량, 위징이 나와요. 서양에서는 루이 하우부터 조르주 퐁피두까지 다섯 사람, 우리나라에서는 을파소부터 박문수까지 여섯 사람이 등장합니다. 목차만 보면 역사 인물 열전 같은데, 장을 열면 흐름이 조금 달라요. 한 사람의 생애를 먼저 들려주고, 그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 방식을 첫째, 둘째, 셋째 하고 꼽아요. 그 사이사이에 어울리는 명언을 한 줄씩 끼워 넣는 식이거든요. 역사책과 자기계발서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느낌이 듭니다.


보통 자기계발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라, 손에 들면 팔뚝이 먼저 설득당하는 거 같아요. 책장을 열기도 전에 이미 "예스"입니다. 그래도 열다섯 사람이 장별로 나뉘어 있어서, 마음 가는 인물부터 골라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훌륭한 책사가 갖춰야 할 조건을 일곱 가지로 꼽아요. 지혜, 예지력, 판단력, 분석력, 논리력, 통찰력, 그리고 품격 있는 인품.

말솜씨는 그 목록에 없더라고요.

설득이라고 하면 저도 늘 말 잘하는 사람부터 떠올렸던 터라 이 목록이 꽤 신선했어요. 작가가 인용한 아이젠하워의 말도 한 번 더 읽게 되더라고요. "설득은 그를 계속 자리에 남게 하지만, 위협은 겁먹은 동안에만 머무르게 할 뿐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 두 가지를 다 겪어 보게 되잖아요. 목소리 큰 사람 앞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나온 회의가 몇 번이었는지, 그렇게 정해진 일이 얼마나 갔는지.


서양 편 첫 장 (상대의 마음을 꿰뚫고 대응하는 소울 설득법)의 주인공 루이 하우는 처음부터 마음이 가는 인물이었어요. 작은 키에 허약한 몸인데, 한번 마음먹은 일은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악바리였다고 해요. <뉴욕 헤럴드> 기자 시절에는 두 달밖에 못 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현장을 뛰어다녔다고 하고요. 루스벨트가 주 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장티푸스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자, 후보 없는 선거판에 뛰어들어 농민과 노동자를 공략해 당선시켜 버립니다. 선거 참모 드라마를 한 편 보는 거 같아서 이 부분은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마음에 남은 건 그다음 설명이었어요. 루이 하우는 감을 타고난 사람인데도 감에만 기대지 않았다고 해요. 자료와 사례를 모아 철저히 분석하고, 잘된 것은 더 잘되게, 잘못된 것은 왜 잘못됐는지 따져서 대안을 내놓았다는 거죠. 회의 자료 만드는 사람으로선 괜히 찔리더라고요.


다른 장보다 속도를 늦춰 읽게 된 건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로 쓰러진 뒤의 이야기였어요. 루이 하우는 7년 동안 곁에서 그를 보살폈고, 루스벨트는 다리를 절면서도 다시 정계로 돌아옵니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고 1년 뒤, 루이 하우는 병으로 눈을 감아요. 66년을 사는 동안 20년 넘게 한 사람을 위해 살았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더군요.

책은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설득을 '보디 설득법'이라고 불러요. 이름은 좀 낯선데 뜻은 금방 들어왔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행동은 말보다 강하다"를 7년이라는 세월로 증명한 사람이 있었던 셈이니까요. <설득의 기술>이 처세서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거 같아요.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루이 하우는 41세, 루스벨트는 30세였다고 해요. 작가는 11살 차이 나는 두 사람을 조선의 이항복과 이덕형에 빗대는데, 그 비유가 꽤 잘 맞는 거 같아요. 루스벨트는 루이 하우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다고 하니까요. 마흔 넘어 만난 사람과도 그런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게, 중년 직장인 입장에서는 은근히 든든하게 읽혔습니다.


솔직히 걸렸던 대목도 있었어요. 루이 하우는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루스벨트에게도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해요. 그럴 때 루스벨트는 무조건 "예스!"라고 하는 게 상책이었다는 거고요. 처음엔 이걸 설득법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그대로 따라 했다간 곤란해질 게 뻔하니까요.


그런데 작가가 바로 뒤에 붙여 놓은 한 문장.

"사실 대개의 직설적인 표현은 사심이 없는 충언일 때가 많다."

7년의 보살핌과 20년의 헌신이 먼저 쌓여 있었으니, 루스벨트도 그 거친 말을 받아낼 수 있었겠구나 싶더라고요. 결국 순서의 문제 같아요. 신뢰가 먼저고, 직언은 그다음.

우리나라 편으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또 달라집니다. (문무를 겸비한 지략과 믿음의 설득법)의 주인공은 신라 진흥왕의 책사 거칠부예요. 내물마립간의 5대손인 왕족인데, 어려서 큰 뜻을 품고 승려가 되어 백제와 고구려를 다니며 그곳 사람들의 삶과 나라 구석구석을 살폈다고 해요. 승려가 된 이유도 다니기 수월해서였다는 설명이 붙어 있어서 피식 웃음이 났어요.

고구려에 잠입해 혜량법사의 설법을 듣던 거칠부에게, 어느 날 법사가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어요.


"그대는 어디서 왔는고?"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도는 가련한 인생일 뿐입니다." "사실대로 말해보거라."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끝내 신라에서 왔다고 털어놓자, 혜량법사는 밤에 그를 선방으로 불러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 어서 신라로 떠나라고 일러줍니다. 관상을 보니 크게 될 사람이니, 훗날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에 오거든 자기를 해치지 말아 달라는 약조와 함께요. 짧은 문답인데 사극 한 장면 같더라고요. 이 약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직접 읽어 보시는 쪽이 훨씬 재미있을 거 같아요.

작가가 꼽은 거칠부의 첫 번째 설득법은 발로 뛰며 쌓은 정보예요.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주면 상대는 그 고마움에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먼저 교류를 청하게 된다는 설명이 이어지는데요. 회사에서도 결국 사람이 모이는 쪽은 뭔가 아는 사람 쪽이더라고요. 묻기도 전에 필요한 걸 먼저 챙겨 주는 선배가 어디든 한 명쯤은 꼭 있잖아요.


세 번째로 꼽은 문무 겸비 대목에서는 실력을 '그 사람만의 라이선스'라고 표현해요. 실력을 갖춘 사람은 훈장 노릇을 해서라도 밥은 먹고 살았다는 대목에선 괜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명함에 박힌 직함은 언젠가 내려놓아야 하지만, 몸에 붙은 실력은 끝까지 따라온다는 얘기로 들렸거든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문장은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두 장에 똑같이 컴퓨터가 나온다는 점이었어요. 루이 하우 장에서는 그의 머리가 컴퓨터처럼 작동했다고 하고, 거칠부 장에서는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는 컴퓨터와 같다고 하거든요.


한 대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한 대는 전원도 안 켜진 채.

그 사이에 끼워 둔 조 카를로조의 말이 요즘 제 처지랑 딱 맞아서 반가웠어요. "날마다 한 가지씩 새로운 것을 배우면 경쟁자의 99퍼센트를 극복할 수 있다." 퇴근하면 유튜브만 틀던 사람이 서평단 하면서 새 책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됐으니까요. 99퍼센트까진 몰라도 어제의 저 정도는 이기고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전원 안 켜진 컴퓨터로 남지 않으려면, 읽은 걸 써먹는 데까지 가 보고 싶고요.

<설득의 기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읽어도 좋지만, 손 닿는 데 꽂아 두고 필요할 때 한 사람씩 꺼내 보기 좋은 책 같아요. 중요한 보고를 앞두고 말이 자꾸 겉도는 거 같을 땐 루이 하우 장을, 뭘 알아야 할지 막막할 땐 거칠부 장을 펴 보는 식으로요. 장마다 명언이 촘촘히 박혀 있어서 밑줄 칠 곳도 넉넉하고, 양장이라 오래 두고 봐도 끄떡없겠더라고요.


10월도 중순을 넘기면서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가을이 깊어 가는 토요일, 프롤로그의 한 문장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인생의 책사가 되어야 한다." 제 인생 책사 자리는 일단 제가 맡아 보기로 했습니다. 월급은 안 나오지만요.


좋은 사람 열다섯 명을 한꺼번에 소개받은 기분이라 이번 주말은 꽤 든든합니다. 단풍 구경 가시기 전에, 옆 사람 마음 한번 읽어 주는 연습부터 같이 해 보시죠.


말솜씨보다 마음을 읽는 눈, 그리고 행동으로 쌓은 신뢰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걸 책사 15인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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