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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ADHD가 뭐길래 - 뇌 구조부터 인간관계 팁까지, 딱 한 권으로 이해하는 성인 ADHD 가이드북
알렉스 코너 외 지음, 성세희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10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대체 ADHD가 뭐길래>는 표지부터 귀여운 책이에요. 하늘색 볼펜으로 마구 휘갈긴 실뭉치 속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팔다리만 삐죽 내민 채 파묻혀 있거든요. 줄무늬 꼬리는 반대편으로 빠져나와 있고요. 그 위에 "나는 왜 늘 인생을 벼락치기로 살까?"라는 질문까지 붙어 있으니, 마감 앞에서만 사람 구실 하는 직장인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조합입니다.
10월도 중순을 넘긴 토요일이네요.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서늘해져서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계절인데, 이런 주말에 새 책 이야기를 꺼내는 건 또 즐겁습니다.

원서 제목은 예요. 꽁꽁 싸맨 짐을 풀어헤친다는 느낌이라 엉킨 실뭉치 표지와 짝이 잘 맞는 거 같더라고요. 쓴 사람은 알렉스 코너와 제임스 브라운입니다. 둘 다 생의학과 신경생리학을 공부한 과학자이고, 서른이 넘어서야 ADHD 진단을 받았대요. 지금은 팟캐스트 (성인 ADHD인들)을 함께 진행하면서 'ADHDadultUK'라는 자선단체도 꾸려가고 있습니다. 번역은 성세희 님이 맡았고, 미래의창에서 이번 10월에 나왔어요.
두께는 보통 책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처음엔 냄비 받침으로 써도 손색없겠다 싶었는데, 펼쳐보니 냄비보다 제 머리가 먼저 데워지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만의 특이한 점은 괄호예요. 과학 이야기를 하다가도 괄호만 열리면 꼭 농담이 하나씩 튀어나옵니다. 감정표현불능증의 영어 이름 Alexithymia를 소개하면서 "아쉽게도 알렉스의 이름을 따서 붙은 말은 아닙니다"라고 덧붙이고, 모닥불 비유 끝에서는 "고슴도치가 진짜 사람을 무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하며 슬쩍 발을 빼요. 뇌과학 용어가 줄줄이 나오는데도 <대체 ADHD가 뭐길래>가 가볍게 읽히는 건 아마 이 괄호들 덕분인 거 같아요.
프롤로그는 두 저자의 자기소개인데, 여기서부터 벌써 정이 들어버렸어요.

제임스는 어릴 때 주치의에게 "크면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을 들었대요. 본인 말로는 헛소리였다고요. 지금도 통화할 때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 못하고, 본가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도 내내 서서 돌아다니며 이야기한다니까요. 일곱 살에 열두 살 수준으로 책을 읽었다면서 "마흔아홉이 된 지금도 독서 수준은 열두 살에 머물러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라고 자기를 놀리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마흔아홉이면 거의 제 또래거든요. 생활기록부에 '진득하게만 노력하면 성공할 아이'라고 적혔던 사람이 박사가 되고 강단에 선 뒤에도 남들과 다르다는 감각을 내내 안고 살았다는 얘기는 남 일 같지가 않았어요.
제임스가 스스로를 요약한 문장도 있습니다. "타인은 돕지만, 자신은 돕지 않음." 동료에게는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하면서 정작 자기 검사 결과는 몇 년을 묵혀뒀다는 거예요. 승진도 했으니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고백이 이어지는데, 중년 직장인이라면 이 착각이 어떤 건지 대충 감이 오실 것 같아요.
팬데믹 시기에 크게 무너졌던 이야기도 나와요. 저자는 그 시간을 꾸밈없이 털어놓고, 2021년 2월 2일 진단받은 날을 생일이나 졸업식, 결혼식만큼 중요한 날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한 줄 한 줄 천천히 따라가게 되더군요. "단 한 사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 책이 왜 쓰였는지가 이 문장 하나에 다 담겨 있는 느낌이었어요.
알렉스 쪽은 조금 더 경쾌해요. 진단을 받은 뒤 어머니에게 티가 났었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아니?" 하셨다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음,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어"라고 하셨대요. 알렉스가 제일 좋아하는 어머니 어록이라는데 저도 이 대답이 참 좋았습니다. 집에서만큼은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고백한 바로 뒤에 "이 문장은 갑자기 낯간지러운 말을 한다며 가족이 제가 어디 아픈 건지 걱정할까 봐 적었습니다"라는 괄호가 붙어 있는 것도 딱 이 사람답고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10장 (도파민 도둑)이에요. 어떤 일을 하려면 먼저 그 일이 할 만하다고 뇌를 설득해야 하는데, ADHD인의 뇌에는 그 설득이 잘 먹히지 않는대요. 그래서 남들 눈에는 게을러 보여도 본인에게는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일종의 마비 상태가 찾아온다는 거예요. 여기서 나온 비유가 기가 막힙니다. '의지력만 있으면 다 된다'는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이, 열심히 1km를 달렸더니 "의지력만 있으면 100km 더 뛸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 것과 같대요.

1km 뛰고 나서 듣는 100km 소리.
회사 다니는 사람이면 이 기분은 다들 한 번쯤 맛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스마트폰 이야기도 나옵니다. 도파민이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성패가 불확실한 바로 그 상태래요. 그래서 알림을 확인하려고 화면을 아래로 쭉 당기는 동작이 카지노 기계를 닮았다는 거고요. 저자들이 거대 기업들을 향해 "참 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고 한소리 하는데, 읽는 사람도 괜히 뜨끔해지는 대목이었어요.
맛보기로 이런 대목이 있어요.
"지금 당장 아주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을 얻는다고 칩시다. 그런데 1년을 기다리면 더 큰 케이크 한 판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요? 당연히…… 지금 당장 먹는 케이크겠죠!"
그러고는 만족 지연은 "우리 전공이 아니란 뜻이죠"라고 쿨하게 정리해요. 그래놓고 불가능한 건 아니고 덜 효과적일 뿐이라고 다독이는 데까지가 이 책의 화법인 거 같습니다.
11장 (ADHD의 유리 멘탈과 거절의 두려움)에는 '제임스와 버거 분노' 사건이 나와요.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에서 뽑은 주문 번호가 89번이었는데, 얌전한 주머니곰처럼 기다리던 제임스 앞에서 91번 손님이 먼저 음식을 받아 간 거예요. 제임스는 죄 없는 직원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했대요. 그 가게엔 다시는 못 가게 됐다는데, 그 뒤에 "다른 이유로 못 가는 가게들도 몇 군데 더 있고요"라는 한 줄이 붙어 있어서 또 웃었습니다.
그렇다고 웃고만 넘어갈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욱하고 돌아서서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순간은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오잖아요. 저자들은 그 순간의 정체를 설명해주면서도 선은 분명히 긋습니다. "ADHD는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변명이 될 수는 없어요." 감싸주기만 하는 책이었다면 이만큼 믿음이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비-ADHD인이 상대의 감정 반응에 화내는 것도 정당하고 ADHD인이 감정을 완벽히 다스리지 못하는 것도 정당하다는 대목처럼, 어느 한쪽 편만 들지 않는 시선이 좋았습니다.
14장 (ADHD의 4대 적)은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게 되는 장이에요. 직장에서 단골로 듣는 "플래너 써봤어? 할 일 목록은?"이라는 질문에 저자들은 "어휴, 네, 그럼요, 당연하죠"라고 대답합니다. 마감이 다가올수록 몰입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걸 '쌍곡선으로' 일한다고 표현하고, 처음에 처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늘 불을 끄러 다니는 소방관 신세가 된다고도 해요. 마감 전날 밤의 초인적인 집중력에도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흔한 자기계발 조언인 '개구리부터 먹기'에도 할 말이 많더라고요. 어려운 일부터 해치우라는 그 전략 대신 따기 쉬운 열매로 작은 승리를 맛보고 '도파민 한 방'을 얻으라고 권해요.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꼭 개구리부터 먹진 마세요"라는 말이 유독 시원했습니다. 제임스의 이 말도 빼놓을 수 없고요.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싶다면, ADHD인에게 다른 일을 시켜라!" 물론 반쯤 농담이래요.
솔직하게 걸렸던 대목은 따로 있어요. 찔린 쪽이 오히려 저였거든요.
16장 (신경전형인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에서 저자들이 코치로서 가장 자주 듣는다는 말이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닌 것 같다"래요. 괄호 안에는 '그리고 우리도 생각했던'이라고 덧붙여 놓았고요. 마흔 줄 후반에 들어서도 이 문장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움직이면 안 되는 회의실에서 들썩이는 몸을 붙들어 매고 버텼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기대되는 방식'대로 반응하려고 애쓰는 일이 무척 피곤하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진단과 상관없이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남 얘기로만 들리지 않을 대목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장의 비유가 더 크게 들렸어요. 성인 ADHD인은 네모난 못 같아서 사회가 기대하는 동그란 구멍에 잘 맞지 않는대요. 그러니 억지로 자기를 깎지 말고, "사회가 네모난 구멍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해요.
직장 이야기도 꽤 구체적이에요. 유연 근무, 헤드폰, 자율 좌석제가 어떤 사람에게 맞고 어떤 사람에게 안 맞는지까지 나옵니다. '인정의 대화' 대목에서는 "매주 3시간씩 미팅을 하거나 뜨거운 포옹을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라면서 짧은 '엄지척' 하나면 충분하다고 해요. ADHD가 있든 없든 회사 다니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 같았어요.

소장 가치는 넉넉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ADHD가 유행'이라는 말을 쉽게들 하는데, 이 책에는 성인 약 40명 중 1명꼴이고 1형 당뇨병보다 적어도 5배는 흔하다는 이야기부터 원인, 진단, 약물, 공존 질환까지 차근차근 담겨 있어요. <대체 ADHD가 뭐길래>는 책상 가까이 두고 그때그때 필요한 장을 다시 펴보기 좋은 구성입니다. 나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옆자리 동료나 가족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든든한 참고서가 될 것 같아요.
창밖 은행잎이 하나둘 노랗게 물드는 걸 보니 가을이 제대로 왔나 봅니다. <대체 ADHD가 뭐길래> 덕분에 올가을엔 '정리하기'처럼 막연한 목표 말고 '식기세척기 비우기'처럼 눈에 보이는 일부터 하나씩 해볼 생각이에요. 개구리는 당분간 연못에 그대로 두고, 저는 따기 쉬운 군고구마부터 먹으러 가볼게요. 웃으면서 배운 게 많아서 주말이 든든한 기분입니다. 다들 선선한 가을 주말 잘 보내세요.
게으름 탓만 하던 산만한 뇌에게, 같은 고민을 먼저 겪은 과학자들이 웃으며 건네는 친절한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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