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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치학 - 예수님파가 걸어가야 할 길
권경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정치 얘기는 금기라는 교회에 기자가 던진 질문, <하나님의 정치학> 서평

회사에서 정치 얘기 꺼내면 공기가 순식간에 싸해지는 거, 직장 생활 좀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교회 안도 사정이 비슷한가 봅니다. 예배가 끝나고 세금이나 선거 이야기가 나오면 "정치는 위험해요", "복음만 이야기합시다" 하면서 말문이 닫힌다는데, <하나님의 정치학>은 그 닫힌 말문을 정면으로 두드리는 책 같아요.
그것도 아주 대놓고요.
남색 바탕에 하얀 영문 제목이 큼직하게 박혀 있고 아래쪽엔 금색 띠가 둘러져 있어서, 첫인상부터 단단한 느낌이 들어요. 보통 교양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라 손에 들면 무게부터 존재감이 있습니다. 한 표의 무게를 손목으로 먼저 실감하게 해주는 책이랄까요.
저자 권경희 님은 28년 차 기자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프롤로그부터 기자의 취재 수첩을 펼쳐 보는 기분이 들더군요. 2021년에 세상을 떠난 한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을 취재하다가, 기도 가운데 뜻밖의 인도를 받았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부정선거를 살펴보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대요. "보수 언론조차 다루지 않는데, 부정선거가 정말 있기나 한가?" 하고 되물었다는 대목이 저는 좋았어요.

처음부터 확신에 찬 사람 이야기는 왠지 한 발 물러서서 듣게 되는데, 스스로 한 번 되물어 본 사람의 이야기에는 귀가 좀 더 열리는 것 같거든요. 저자는 취재 방향을 '음모가 아니라 공의'로 정했다고 합니다. 소문은 빼고, 공개된 자료로 설명되지 않으면 판단을 미루고, 반대편이 내세우는 근거부터 먼저 읽었다고요. 결론이 늦어져도 상관없었다는 말에서는 오래 현장을 다닌 사람 특유의 고집 같은 게 느껴졌어요.

<하나님의 정치학>만의 특이한 점을 하나 꼽으라면 프롤로그 뒤에 붙은 '이 책의 열 가지 약속'이에요.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은 같지 않다, 국가는 제한된 청지기다, 정치적 승리는 복음의 승리가 아니다. 이런 문장들을 먼저 깔아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어느 진영이든 기준을 어기면 같은 잣대로 비판받는다는 약속도 있고요.
마지막 약속 끝에는 "이 책도 이 약속 아래 검증받는다. 어긋나는 대목이 있다면 누구든 수정을 요청해 주기 바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회사로 치면 보고서 맨 끝에 '틀린 데 있으면 언제든 지적해 주세요'라고 써 둔 담당자 같아서 믿음이 갔어요.

이런 서문은 솔직히 처음 봤습니다.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Chapter 3의 신사참배 대목이에요. 1938년 9월 10일 오후 2시 30분,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 장면인데요. 시각까지 분 단위로 적혀 있어서 그런지 현장 기록을 읽는 느낌이 강했어요. 일본 경찰이 회의장을 둘러싼 가운데 표결이 시작됐고, 책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단 3분 만에 가결되었다." 그리고 "표결은 '가(可)'만 묻고 '부(否)'는 묻지 않았다. 항의하려던 선교사 총대들은 일본 경찰에 제지당했다." 결의문이 통과되자 일부 총대들은 울었지만 결의를 번복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단 3분.
규모도 무게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부'를 묻지 않는 표결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어요. 반대 의견을 물을 틈도 없이 "이견 없으시죠?" 한마디로 넘어가는 회의를 오래 직장 생활 하면서 몇 번은 봤으니까요.
그날 총대들이 붙든 논리를 정리한 대목도 오래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사참배는 국가 의례일 뿐이라는 논리, 지금은 참고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존 논리, 정치와 신앙은 별개라는 논리, 조금씩 양보하며 시간을 벌자는 점진적 타협까지 네 가지예요. 저자는 그 핵심을 "진리보다 현실, 양심보다 안전, 하나님보다 생존"이라는 말로 묶더군요.
그중에서도 마음에 남은 건 합리화가 습관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어요. 처음엔 죄책감이 있었는데 매주 반복하다 보니 무뎌졌고,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다들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대요. 나중엔 거부하는 사람들을 극단주의자라고 비난하게 됐다고요. 저자는 이 대목을 "희생자가 가해자가 되고, 순교자가 문제아가 되었다"는 문장으로 맺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다들 하는데'라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지 알게 되는 터라, 남의 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더라고요.
해방 이후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1946년 총회가 신사참배 결의 무효를 선언했지만, 가담한 목회자들에게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대요. 1954년에 내린 2년 목회 정지 결의도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공식 기록상 치리받은 사람은 5명뿐이었다고 하고요. 저자는 이걸 "결의는 무효지만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모순이라고 부르더군요.

사과문은 나오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장면. 중년이 되고 보니 그런 장면을 뉴스에서도 회사에서도 꽤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 뿌리를 이렇게 오래된 기록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인물 이야기로 넘어가면 주기철 목사가 먼저 떠오릅니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1944년 4월 21일 평양형무소에서 47세의 나이로 순교했다고 해요. 6년간 옥고를 치른 한상동 목사, 일제에 투옥되었다가 6.25 때 북한군에게 총살당한 이기선 목사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공식 기록으로만 약 2,000명이 투옥되었다는 숫자 앞에서는 저절로 말을 아끼게 되더군요.
의외였던 건 박형규 목사와 문익환 목사가 등장한다는 점이었어요. 1970년대에 유신 비판 설교로 투옥되었던 박형규 목사는, 정교분리를 지키라는 충고에 "나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말한 것입니다. 독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대요. 광주를 방문해 증언했던 문익환 목사가 '정교분리를 어긴 정치 목사'라는 비난을 받았던 일도 나오고요. 우파를 논증하겠다는 책에서 이 두 분 이야기를 읽으니, 열 가지 약속에서 말한 '같은 잣대'가 빈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정교분리라는 말도 <하나님의 정치학> 덕분에 새로 알게 된 게 많아요. 저도 막연히 '교회는 정치에 끼지 말라'는 뜻 정도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뿌리를 따라가 보면 1791년 미국 수정헌법 제1조와, 1636년 로드아일랜드에 정착지를 세운 청교도 목사 로저 윌리엄스가 나옵니다.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면 신앙의 자유가 없다"는 그의 말처럼, 원래는 국가 권력이 종교에 간섭하지 못하게 막는 원리였다는 설명이에요. 1948년 제헌헌법 제12조의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는 문장도 처음엔 같은 뜻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인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으로 비틀어졌다고 저자는 보더라고요.
"교회는 영적 일만 하십시오. 정치는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1960년대부터 교회 안에 스며들었다는 이 메시지가 생각보다 오래 귓가에 맴돌았어요.
솔직히 조심스러웠던 대목도 있습니다. 선거 의혹을 다루는 부분인데, 사람마다 생각이 크게 갈리는 주제다 보니 한 문장 한 문장 따져 가며 천천히 읽었어요. 광화문에는 110만 명이 모이는데 선거 의혹에는 왜 교회가 침묵하느냐는 저자의 질문도,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온도가 꽤 다를 것 같고요. 그래도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먼저 딱지를 붙이지 말고, 사실부터 봐 달라"고 부탁해 두었으니, 그 부탁만큼은 들어주는 마음으로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정치학>은 곁에 두고 꺼내 보기 좋은 책 같아요. 신사참배부터 해방, 군사정권 시절까지 한국 교회의 굵직한 장면이 연도와 날짜까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고, 뒤쪽에는 참고문헌과 출처도 따로 모아 두었거든요. 신앙이 있든 없든 한국 현대사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별로 없는 이야기가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10월도 어느새 중순, 한 주의 한가운데 수요일이에요.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서 따뜻한 커피가 자꾸 당기는 계절인데, <하나님의 정치학>은 이런 가을에 어울리게 생각할 거리를 한 아름 안겨 준 책이었습니다. 가을 타는 줄 알았더니 요즘 저는 책을 타고 있나 봐요. 좋은 질문 하나 품고 남은 한 주도 힘내 보겠습니다.
교회가 정치 앞에서 왜 말을 잃었는지, 28년 차 기자가 1938년의 3분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묻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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