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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WA 시대 : 전통금융과 블록체인의 만남 - 누구나 뉴욕 한복판 빌딩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금융의 대전환
박홍남 지음 / 새로운제안 / 2026년 10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강남 빌딩 1주에 1만 원? 〈RWA 시대〉 박홍남, 블록체인이 여는 금융의 문 서평
진분홍 바탕을 은박 띠가 가로로 지나가는 표지라 어디에 두어도 눈에 확 띄는 편이에요. 점을 찍어 만든 큼직한 글씨로 Real World Asset이 박혀 있고, 그 사이로 부제가 지나갑니다. 누구나 뉴욕 한복판 빌딩의 주인이 될 수 있다니. 월급날마다 통장 보고 한숨 쉬는 사람한테는 꽤 솔깃한 말이더라고요.

사실 토큰이라는 단어부터 낯설었어요. 토큰 하면 아직도 버스 요금통에 짤랑 넣던 그 쇠동전이 먼저 떠오르는 세대라서요.
<RWA 시대>는 그 토큰이 빌딩이 되고 채권이 되고 금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의 자산을 블록체인 위 디지털 증서로 만들어 주식처럼 누구나 쉽게 사고팔게 한다는 개념인데, 책은 시작부터 블랙록 이야기로 성큼 들어가요. 래리 핑크 회장이 2024년 초 한 매체 인터뷰에서 "모든 금융 자산이 토큰화될 것"이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뉴욕증권거래소까지 토큰화 워킹그룹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 자세가 슬쩍 고쳐지더군요. 코인판에서 잠깐 도는 유행어쯤으로 여겼던 단어가 월가 한복판에서 오가고 있었던 거죠.

<RWA 시대>가 재미있는 건 출발점이에요. 시세 얘기로 바로 달려갈 줄 알았는데, 목차를 보면 물물교환과 화폐의 탄생, 금본위제, 달러 패권으로 이어지는 금융의 역사부터 차근차근 깔고 들어갑니다. 저자는 연합인포맥스에서 크립토 데이터 기획과 국내 코인 기준가격 산정, 코인 평가 같은 일을 맡았던 분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숫자와 그래프를 꺼내 놓고 하나씩 짚어 가는 방식이 몸에 밴 느낌이 들어요. 주변에서 크립토 투자 조언을 구할 때마다 강조하던 얘기를 정리한 책이라고 하니, 아는 형님이 경제 이야기를 길게 풀어주는 듯한 결도 있습니다.
저자가 맨 먼저 꺼내는 단어는 '장벽'이에요. 물이나 나무는 물론이고 빌딩, 금, 예술품, 눈에 보이지도 않는 탄소배출권이나 저작권까지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이죠. 그런데 그 거대한 자산 대부분이 평범한 개인은 다가가기 힘든 벽 뒤에 숨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서울 도심의 고가 빌딩은 평생 모아도 부족하고, 비싼 그림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른다는 문장에서는 그냥 웃음이 났어요. 너무 제 얘기라서요.

빌딩은 그대로 땅 위에 서 있고, 블록체인 위에는 그 빌딩에 대한 권리의 기록이 올라간다는 설명도 반가웠습니다. 막연히 건물이 통째로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법률, 회계, 보관, 평가, 규제, 신원확인, 지급결제까지 한꺼번에 맞물려야 돌아가는 구조라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는 판이구나 싶었고요.
3장의 부동산 이야기로 넘어가면 부제가 무슨 뜻인지 손에 잡히기 시작합니다. 소제목부터 "강남 빌딩 지분을 10만 원으로?"예요. 국내 사례로 나오는 카사는 서울 도심의 상업용 부동산을 디지털 수익증권(DABS)으로 쪼개서 투자하게 했어요. 100억짜리 건물을 100만 개 증권으로 나누면 1주에 1만 원이 된다는 계산입니다. 임대 수익은 분기마다 나눠 받고, 건물이 팔리면 매각 차익도 지분만큼 나뉜다고 하더라고요.
강남 빌딩 1주에 1만 원.
미국의 RealT 얘기는 더 신기했어요. 이더리움 위에서 미국 임대 부동산 지분을 토큰으로 팔고, 투자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USDC로 매달 임대수익을 받는 구조래요. 책에는 "한국에 앉아서 디트로이트나 시카고의 임대 주택에 소액 투자하고 매달 달러로 임대료를 받는 것이 이미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디트로이트는 영화에서나 본 동네 이름이라 그런지 실감이 날 듯 말 듯하더군요. 장 끝에 붙은 INSIGHT 박스에는 RealT, Lofty AI, Landshare 같은 해외 프로젝트와 카사가 한눈에 정리되어 있어서 이름 익히기에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장밋빛 얘기만 늘어놓는 편은 아닌 거 같아요. 부동산 토큰은 아직 전통 부동산보다 유동성이 낮아 팔고 싶을 때 살 사람을 찾기 어려울 수 있고, 대출을 끼는 레버리지도 쉽지 않다는 점을 저자가 먼저 꺼내 놓습니다. 등기부에 올라야 소유권이 법적 효력을 갖는 한국에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함께요. 지금은 신탁회사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그 수익권을 토큰화하는 방식으로 공백을 메운다고 합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표현이 솔직하게 들렸어요.
2장 첫머리의 그래프 하나는 월급쟁이로 오래 살아온 입장에서 그냥 넘기기가 어렵더라고요. 미국 제조업 근로자 평균 시급이 36.68달러, 베트남은 2024년 기준 약 1.61달러. 막대 두 개 사이에 약 22.8배라는 화살표가 그어져 있습니다. 저자는 "같은 공장이고 똑같은 물건을, 비슷한 시간에,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 낸다"고 쓰고는, 이 격차가 정말 노동력의 차이인지 어디서 태어났느냐의 차이인지를 묻습니다. 물가나 생산성, 산업구조 같은 요인도 함께 작용한다는 단서는 달아 둬요. 그래도 화폐가 약한 나라일수록 금융시스템도 뒤처져, 해외에서 번 돈을 고향에 보낼 때 20% 가까운 환전·수수료가 붙기도 한다고 하네요.
한 시간의 값이 태어난 곳에 따라 이렇게 갈린다는 걸 숫자로 보니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이 이야기가 2009년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그 끝에 RWA가 놓이는 흐름이라 책의 큰 줄기도 이쯤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RWA 시대>에서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6장의 'RWA는 누구를 부자로 만드나'였어요. 저자가 스스로 "가장 불편한 질문"이라고 부르는 대목인데, 'RWA 관련 코인을 사면 부자가 된다'는 식의 이야기와는 일부러 거리를 둡니다. 골드러시 때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번 사람은 광부들에게 청바지와 곡괭이를 판 상인이었다는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요. 블랙록과 시큐리타이즈, JP모건, 코인베이스, 서클처럼 판을 깐 쪽은 자산 값이 오르든 내리든 수수료와 이자를 챙긴다는 거죠. 그래서 '개별 코인의 가격'보다 '각 플레이어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라는 말이 책 전체에 깔려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두 번째 부자 이야기는 좀 더 씁쓸했어요. 팔기 어렵던 빌딩이나 그림, 사모펀드 지분이 토큰화로 거래가 쉬워지면 유동성 프리미엄이 붙어 값이 오릅니다. 그런데 그 첫 수혜는 결국 원래 그걸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거예요. "평등을 향한 기술이 초기에는 오히려 가진 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 투자서에서 이런 문장을 먼저 꺼내 놓으니 오히려 믿음이 가더군요.
거기서 문을 닫아버리지는 않습니다.
초기 주식시장도 소수의 부자와 기관 차지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도 스마트폰으로 애플 주식을 사요. 저자는 이 예를 들면서 RWA도 비슷한 길을 갈 거라고 내다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해요. "RWA는 부자가 되는 마법의 버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잠겨 있던 문을 여는 열쇠일 뿐이다." 공부하고 준비한 사람과 그저 남을 따라 뛰어든 사람 사이에서 갈릴 거라는 문장에서는 점심시간마다 종목 얘기로 들썩이는 사무실 풍경이 떠올라 혼자 뜨끔했어요.
걸렸던 건 제 쪽 사정이에요. DABS, USDC, SPV, 스마트 컨트랙트 같은 말이 연달아 나오면 처음엔 머리가 살짝 버벅거립니다. 실물 부동산에서 신탁회사와 SPV, 토큰 발행, 다수의 투자자로 이어지는 구조도가 있어서, 그림이랑 본문을 몇 번 오가며 따라가니 그제야 흐름이 잡히더라고요. 코인을 한 번도 안 사본 분이라면 이 대목은 조금 천천히 가셔도 괜찮을 거 같아요.

두께는 보통 경제서와 비슷하거나 살짝 날씬한 편이라 들고 다니기 부담이 없어요. 빌딩 얘기가 가득한 책치고는 무게가 꽤 착합니다. 빌딩은 무거워도 토큰은 가볍다는 걸 책이 몸소 증명하는 셈이랄까요. 목차를 보면 4장에는 블랙록과 JP모건, 프랭클린 템플턴부터 미래에셋증권과 네이버까지, 5장에는 이더리움과 솔라나, 체인링크 같은 디지털자산이 각자 맡은 역할별로 정리되어 있어요. 뉴스에 낯선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시 펼쳐볼 사전처럼 책장 손 닿는 곳에 꽂아두기 좋겠더라고요.
10월 둘째 주 토요일, 하늘은 높아지고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네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올가을엔 <RWA 시대> 덕분에 돈 공부까지 한 바퀴 돌고 온 기분입니다. 강남 빌딩 주인은 아직 먼 얘기지만, 뉴스 속 토큰화라는 말이 더는 남의 나라 말처럼 들리지 않아서 그것만으로도 꽤 든든해요. 좋은 책 만나서 머리가 한결 말랑해진 주말입니다. 다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요.
빌딩 한 조각에 1만 원이 되는 시대, 화폐의 역사에서 달러 패권까지 따라가며 RWA라는 금융의 대전환을 차근차근 풀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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