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역 솔로몬 - 오늘을 빼앗긴 당신에게 건네는 3,000년 지혜의 인생 처방전
신동운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체면 때문에 덥석 약속하는 직장인이라면, 3,000년 전 왕에게 한 수 배워 볼까요 <초역 솔로몬>서평
분홍빛 표지 한가운데서 하얀 수염의 노인이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 뒤로는 SOLOMON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깔려 있고요. 지혜의 왕을 이렇게 말랑한 핑크로 감쌌다는 것부터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 근엄한 할아버지가 건네는 첫마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니, 3,000년 묵은 말이 목요일 아재의 피로에도 듣는 약일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제목만 보고 솔로들을 위한 지침서인가 잠깐 기대했다는 건 비밀로 해 두겠습니다.
<초역 솔로몬>은 잠언, 전도서, 아가에 담긴 솔로몬의 가르침 가운데 77가지를 골라 오늘의 말로 풀어낸 책이에요. 신동운 작가가 썼고 스타북스에서 9월에 나왔습니다. 성경에서 출발한 책이라 교회 다니는 분들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막상 펼쳐 보니 회사 생활 오래 한 선배가 들려주는 처세 이야기에 더 가까운 얼굴이더군요.
<초역 솔로몬>은 짜임이 꽤 독특합니다. 꼭지마다 녹색 왕관 안에 번호가 박혀 있고, 초록 굵은 글씨로 핵심이 먼저 한두 줄 나와요. 이어서 솔로몬 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통찰과 메시지'가 오늘의 고민으로 이어 붙인 다음, 맨 끝 연두색 박스 안에 '오늘의 한 줄'이 밑줄과 함께 들어앉아 있어요. 처음엔 좀 교과서 같다 싶었는데 몇 꼭지 지나니 이 반복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디를 펼쳐도 길 잃을 일이 없으니까요.
맛보기로 하나 꺼내 보자면 (희망과 겸손을 아우른 솔로몬의 반지) 꼭지가 좋겠어요. 솔로몬이 궁중 보석 세공사를 불러, 슬픔에 빠졌을 때 용기를 주고 기쁨에 도취했을 때 스스로를 다잡게 할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명합니다. 세공사는 반지는 근사하게 만들었는데 정작 글귀를 찾지 못해 밤마다 시름에 빠지고, 결국 지혜롭기로 소문난 신하를 찾아가죠. 신하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작은 종이에 짧은 문장을 적어 건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다들 한 번쯤 들어 본 말인데,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니 결이 좀 다르게 읽히는 거 같아요. 힘들 때 꺼내 보는 위로로만 알고 있었는데, 잘나갈 때 고개 숙이라는 경계가 같은 반지 안에 나란히 붙어 있더군요. 꼭지 끝의 한 줄은 이랬습니다. "오늘 당신을 아프게 하는 시련도, 마음을 들뜨게 하는 성취도, 당신을 찾아왔다 지나갈 뿐이다." 사무실 모니터 옆에 포스트잇으로 붙여 두고 싶은 문장이에요.
솔직히 제일 많이 걸린 건 (성급한 언약이 부르는 재앙) 쪽이었어요. 책이 아니라 제가요. 한 젊은 거상이 타국 상인들과 연회를 즐기다 호기롭게 대형 거래를 장담하며 무리한 이행 보증을 약속하는데, 순간의 기분과 체면에 취해 뱉은 그 한마디가 가문 전체를 채무의 늪으로 끌고 갑니다. 눈물로 찾아온 그에게 솔로몬이 하는 말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였어요.
회식 자리 분위기에 휩쓸려 "그거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해 본 적 없는 직장인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이 꼭지는 그 습관을 콕 집어내요. '오늘의 한 줄'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탁이나 약속은 순간의 체면 때문에 덥석 수락하지 말자."인데, '덥석'이라는 단어가 어찌나 딱 맞는지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약속은 신중해야 하며, 실행은 신속해야 한다"는 문장도 좋았어요. 예의 바르게 거절하는 것도 용기라는 얘기라서요.

(분노한 상태에서는 결정을 유예하라)에서는 솔로몬이라는 사람이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이웃 나라 군대가 오만하게 국경을 넘어 자원을 약탈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장수들은 당장 보복하자고 고성을 지릅니다. 솔로몬도 주먹이 불끈 쥐어질 만큼 화가 났다고 해요. 그런데 그는 명령 대신 침묵을 택합니다.
늘 단칼에 판결을 내리는 냉철한 천재로만 떠올렸는데, 치미는 화를 꾹 누르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는 거 같더라고요. "분노가 마음을 지배할 때 칼을 뽑으면 결국 그 칼끝은 나 자신과 내 나라를 향하게 된다." 회사 일로 치면 열 받은 채로 써 내려간 메일 같은 거겠죠.
보내기 버튼 앞에서, 딱 한 번만 더 숨 고르기.
거의 한 문장씩 따라가듯 제일 느린 속도로 읽은 꼭지는 (헛되고 헛되다는 말의 진짜 의미)였어요. 노년의 솔로몬은 금은보화와 화려한 왕궁, 수많은 신하와 절정의 권력을 다 쥐어 봤는데도, 왕좌에 앉아 지평선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의 허무감을 떨치지 못했다고 해요. 세상에서 가장 많이 가져 본 사람의 고백이라 그런지 가볍게 넘길 수가 없더군요.

"막대한 재물도, 거대한 권력도 죽음이라는 거대한 실체 앞에서는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이 문장 앞에서 명함에 박힌 직함이며 해마다 신경 쓰이는 고과 같은 것들이 슬그머니 떠올랐습니다. 마흔 후반쯤 되면 그런 것들이 내 이름보다 앞에 서 있을 때가 많거든요.
그렇다고 이 꼭지가 다 내려놓고 허무하게 살라는 쪽으로 흐르지는 않아요. "헛되도다"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경각심으로 풀어 주고, 그 빈자리에 내면의 바른 양심과 따뜻한 사랑,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가만히 놓아 두는 느낌이 듭니다.
같은 장 끝자락에 있는 (늙어감에 대한 우아한 수용)은 나이 탓인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어요. 평생 권력과 영화를 누린 늙은 관료가, 눈이 침침해지고 손발이 떨리고 머리칼이 하얘지는 게 두려워 솔로몬을 찾아옵니다. 솔로몬이 그에게 들려주는 말이 참 시적이에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맷돌 소리가 안개 속으로 아득해지고,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지는 날이 찾아온다."
떨리는 손과 흐려지는 눈을 이렇게 옮겨 놓으니 서글프기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통찰과 메시지'에 나오는 "늙어 감은 소멸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깊은 숙성의 과정이다"라는 문장은 중년 직장인 귀에 꽤 든든하게 들어오는 말이었습니다.

<초역 솔로몬>은 한 번 읽고 꽂아 두기엔 좀 아까운 책 같아요. 경청과 대화에서 시작해 감정, 겸손, 부와 절제, 일과 성취를 지나 인생과 허무, 사랑과 신의, 유산까지 11개 장에 77꼭지가 들어 있고, 맨 뒤에는 솔로몬의 지혜 어록 100선이 따로 붙어 있어요. 그날 마음 상태에 따라 목차를 훑어보고 한 꼭지만 골라 읽어도 충분하더군요. 두께도 보통 인문서 정도라 가방에 넣고 다니기 부담이 없습니다.
한 주 내내 말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 분이라면, 아무 데나 펼쳐도 내 얘기 같은 꼭지 하나쯤은 걸려들 거 같아요. 저는 <초역 솔로몬>을 읽는 내내 지혜로운 큰형님한테 한 수씩 배우는 기분이라 재미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서늘해진 10월 초예요. 단풍 들기 전 이맘때가 이런 책 펼치기에 딱 좋은 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어른 말씀을 한 보따리 얻어 들은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합니다.
주말을 하루 앞둔 목요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문 외우면서 버텨 보겠습니다. 다만 금요일 저녁만큼은 좀 천천히 지나가 줬으면 좋겠네요.
절망 앞에선 희망을, 성공 앞에선 겸손을. 3,000년 전 왕의 반지가 피곤한 중년 직장인에게 건네는 77가지 처방전.
#초역솔로몬 #신동운 #스타북스 #솔로몬의지혜 #이또한지나가리라 #솔로몬의반지 #잠언 #전도서 #인문교양 #신간도서 #서평단 #책추천 #직장인책추천 #중년의독서 #인생처방전 #가을독서 #10월신간 #북스타그램 #BOOKU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