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11가지 법칙
체탄 바갓 지음, 이선미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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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세 얼간이 원작자가 알려 주는 코끼리 먹는 법 | 체탄 바갓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서평


배고픈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배달 앱 화면을 노려보고 있어요. 주문은 30분째 감감무소식이고, 앱 속 작은 오토바이 아이콘은 1km 떨어진 곳에서 꼼짝도 안 하고, 기사에게 건 전화는 두 번 다 통화 중입니다. 이 사람이 영화 (세 얼간이)의 원작자라니, 첫 장면부터 웃음이 나더라고요.


자기계발서 첫 장면치고는 꽤 배고픈 출발이죠.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체탄 바갓이 자기 삶을 밑천 삼아 쓴 자전적 자기계발서예요. 부제가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11가지 법칙'인데 코끼리 먹는 얘기까지 나온다길래, 처음엔 대식가를 위한 다이어트 책인가 했네요. 10월 첫 화요일,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서늘해져서 따끈한 게 당기는 요즘이잖아요. 제목은 차가워도 책 속은 김 나는 커리 냄새로 가득해서 계절이랑 은근히 잘 맞는 거 같아요.


형식부터 좀 특이합니다. 저자가 혼자 칠판 앞에 서서 강의하는 게 아니라, 배달 기사 비라즈 슈클라와 밥상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흘러가거든요. 출판사 소개를 보니 비라즈는 저자의 옛 모습을 일부 담은 가공의 인물이라고 하더라고요. 소설가가 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답게 규칙들이 장면 속에 녹아 있어서 교과서 넘기는 기분은 별로 안 들었어요.


책은 2014년 뭄바이 반드라 거리에서 시작해요. 영화 (투 스테이츠)가 극장에 걸려 있고,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엔 그의 책이 줄지어 있고, 차기작 신문 광고비로만 2,000만 루피(옮긴이 주석으로 우리 돈 약 3억 2천만 원)를 쓰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정작 그 정점에서는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도 몰랐다고 털어놓더군요. 어린 시절은 괴로웠고, 자란 시골도 딱히 도움이 되는 곳은 아니었다고 하고요. 10년이 지나 쉰 살 가까이 돼서야 겨우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데, 여기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돌아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이 잘 안 되는 건 사십 대 후반 직장인도 비슷하거든요.


그러고는 대뜸 이렇게 못을 박아요.

"세상은 도움을 베풀기 위해 다정한 시선으로 우리를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밥상머리에서 들은 것과 어른이 돼서 마주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얘기예요. 매정하고 거칠다는 말까지 덧붙이고요.

드디어 벨이 울립니다. 문 앞에는 2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청년이 옆구리 살이 삐져나올 만큼 작은 빨간 조마토 티셔츠를 입고 땀범벅이 된 채 서 있어요. 저자는 그 앞에서 "3일 동안 굶고 나서야 사과를 발견한 석기 시대 원시인"처럼 음식을 낚아채는데, 이 비유에서 소리 내서 웃었네요. 그런데 청년이 저자의 두 손을 맞잡고 배달 후기는 제발 나쁘게 남기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는 순간, 웃음이 쏙 들어가더라고요.


펑크가 났다는 오토바이, 두 번 다 통화 중이던 전화, 자기 발끝만 내려다보는 눈.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그다음 식탁이에요. 30분 뒤에 화상 미팅이 잡혀 있는데도 저자는 비라즈를 집 안으로 들이고, 접시와 숟가락을 꺼내 라즈마 커리와 쌀밥을 덜어 줍니다. 한자리에 앉기를 한참 머뭇거리던 비라즈가 겨우 앉아서 꺼낸 말이 "절 이렇게 대접해 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였어요. 저자의 대답은 짧아요. "괜찮아요. 식사 시간이 외롭지 않아서 저도 좋네요." 대단한 명언도 아닌데 저는 이 두 줄이 참 좋았습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될 때가 있잖아요.


밥상에서 나오는 비라즈의 사정은 녹록지 않아요. 역사학 석사까지 마친 스물일곱 살 청년인데, 8년을 만난 여자 친구 아르피타가 다른 사람에게 떠났다고 합니다. 한 달 수입이 1만 8,000루피인데 뭄바이에서는 슬럼가 방 한 칸 월세만 8,000루피라서, 다음 월급날까지 남는 게 없다고 하고요. 인스타그램에서 본 새 남자 친구는 BMW를 몬다는데, 비라즈는 "제 직업도 변변치 않으니, 좋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저도 잘 알아요"라고 말해요. 삶의 의미까지 놓아 버린 듯한 말이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읽는 쪽도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비라즈의 하루 중에 자꾸 마음이 쓰이는 장면이 있어요. 퇴근 시간 꽉 막힌 길을 10km, 40분 동안 달려 빤 두 개를 배달했더니 손님이 문 앞에서 5초 만에 먹어 치웠다는 얘기요. 빤은 빈랑 잎에 곡물이며 과일, 향신료를 싸서 씹어 먹는 인도 길거리 음식이라고 옮긴이 주석이 알려 주더군요. 공들인 일이 몇 초 만에 소비되고 끝나는 허무함은 직장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 겪어 보셨을 거 같아요.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순서가 좋았습니다. 배달 기사라는 직업엔 잘못이 없고, 떳떳하게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일이라고 먼저 말해 준 다음에야 이렇게 묻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이겁니다. 당신은 이 직업으로 충분한가요?"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라는 제목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이 가는 질문이었어요.


중반의 '큰 꿈은 한 입씩' 장에는 저자 본인 얘기가 제일 진하게 담긴 거 같아요. 학창 시절 학교 잡지에 글을 쓰긴 했지만 작가로서 잠재력이 있다고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대요. 홍콩의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고 하고요. "나는 기계 공학 전공에 MBA 소지자일 뿐인걸. 은행원일 뿐이라고." 이름표만 바꾸면 우리 회사 탕비실에서도 충분히 들릴 법한 혼잣말이에요.


저자의 처방은 코끼리 먹기입니다. 코끼리는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서 한 번에 한 조각씩, 오랜 시간 동안" 먹는다는 거죠. 하루 한 페이지면 1년이면 한 권이라는 계산으로 출발했다가, 투자 은행 일이 바빠 그마저 버거우니까 주말엔 하루 두 페이지, 평일엔 사흘만 한 페이지씩 쓰는 걸로 계획을 고쳐요. 초본에만 2년이 걸렸고, 출판사에서는 단칼에 거절당했고, 결국 처음부터 다시 썼대요. 3년 동안 코끼리를 여러 마리 먹고 나서야 데뷔작 <세 얼간이>가 세상에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계획을 고쳤다는 부분이 특히 반가웠어요. 바쁜 날엔 쉬어 가도 무너지지 않게 판을 다시 짠 거니까요. "나는 천재도 아니고 비범한 재능도 없다"는 고백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입에서 나오니 오히려 믿음이 갔고요. 방 청소를 했다고, 시장에서 토마토를 3kg나 사 왔다고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대목도 웃긴데 뼈가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크게 웃은 장면이 하나 있어요. 저자가 코끼리 먹는 법을 한참 설명하는 동안 비라즈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먼 데를 보고 있고, 그사이 저자 그릇의 오트밀은 한 톨도 안 남았거든요.


"제 이야기, 제대로 들으셨죠?"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네? 말을 하시지 그랬어요. 저랑 같이 먹으면 됐는데요. 마침 냉장고에 음식이 더 있는데, 갖다 드릴까요?" "아뇨, 그게 아니에요. 저는 사실 코끼리를 먹어 본 적이 없거든요. 염소나 토끼도요."

비유를 곧이곧대로 알아들은 비라즈도, 빈 그릇 앞에서 냉장고부터 챙기는 작가도 둘 다 정겹더군요.

웃음 뒤에 비라즈가 꺼내는 고백은 좀 아파요. 학교에선 평범한 학생이었고, 자기를 좋아해 주는 아르피타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었대요. 친구가 철도청 공무원 시험을 같이 준비하자고 했을 때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어려워 보였고, 스스로 평범하다고 여겼고, 아르피타와 보낼 시간이 줄어드는 게 싫었다고요. 그 친구는 합격했는데 자기는 시험장에 가 본 적도 없다면서 "돌이켜보니 참 부끄럽네요"라고 말해요. 그 앞에서 저자가 건넨 문장이 마음에 콕 박히더라고요. "누구도 당신의 행복의 원천이 되어 줄 순 없어요. 그 사람들에게 공정한 처사가 아니거든요."


그때 해 볼걸 싶은 시험장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싶어요. 저자는 그런 비라즈에게 "먹어야 할 코끼리는 또 있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조급해하지 말라고, 그건 비라즈 씨만 아는 거라고 덧붙입니다. 이 장 끝에서는 비라즈가 오히려 저자를 따뜻하게 안아 주고, "이 수업이 당신만큼이나 저에게도 필요한 것"이라는 말도 나와요. 가르치는 쪽도 이 밥상에서 뭔가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오늘의 주제가 코끼리였다면, 내일 주제는 바퀴벌레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비라즈만큼이나 저도 다음 장이 궁금해졌어요.

'사람을 남겨라' 장의 병아리콩 통조림 이야기는 직장인이라면 무릎을 칠 만해요. 골드만삭스 시절 저자는 '독사 T'라고 부르는 최악의 상사를 만나 원하던 업무에서 밀려나고, 승진에서도 두 번이나 떨어졌대요.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닷컴 버블 여파로 금융계 채용이 꽁꽁 얼어붙은 때였다고 하고요. 그러다 주말에 홍콩 쇼핑몰에서 예전 상사였던 데미안 우드를 우연히 만나 충동적으로 집에 초대합니다. 메뉴는 병아리콩 통조림에 토마토 퓌레와 향신료를 넣고 볶은 차나 마살라, 후식은 알폰소 망고였어요.


저녁 끝 무렵 지나가듯 요즘 회사에서 그리 행복하지 않다고 흘렸더니, 데미안은 "아, 그래요? 왜죠? 그런데 망고 진짜 맛있네요" 하고 망고만 오물거렸대요. 그런데 두 달 뒤에 크레딧스위스로 이직할 생각이 있냐는 연락이 옵니다. 거기서 다시 도이치뱅크로 옮겨 모은 돈이 전업 작가로 나설 밑천이 됐다고 하니, 저자 말대로 병아리콩 통조림 한 캔이 인생을 바꿔 놓은 셈이에요. 독사 T가 나중에 타임지 100인 명단에서 저자 이름을 보고서야 그가 유명해진 걸 알았다는 대목에는 은근한 통쾌함도 있었고요. 회사 다니면서 독사 한 명 안 만나 본 분은 아마 드물 거예요.

솔직히 걸렸던 건 말투예요. "이 책을 고른 당신은 이미 그들보다 낫다"라든가 "세상에 당신을 구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기억하자" 같은 문장은 처음 보면 좀 움찔하게 됩니다. 계층 사이에 견고한 철벽이 있다는 얘기도 꽤 냉정하게 들리고요. 그래도 비라즈와 마주 앉은 장면들 사이에 이런 말이 놓이니까, 밥 사 주는 선배가 정색하고 해 주는 얘기처럼 들리긴 하더라고요. 저자 스스로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라고 당부하고요.


마지막 '나가며'는 에머슨의 문장으로 열려요. "당신의 운명이 되라고 정해준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고백이 의외로 인간적입니다. 자기는 혹독한 군사 훈련을 시키는 교관이 아니고, 파티와 여행과 친구들과 주고받는 시시한 농담을 좋아하고, 술도 마시고 몸에 안 좋은 음식도 먹는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해도 남은 주말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셈법 앞에서는 저도 괜히 남은 주말을 헤아려 보게 되더라고요.

'이걸 꼭 해야 되나?'가 '이걸 하면 되는구나!'로 바뀐다는 말, 그리고 "불행하다면 세상의 모든 성공도 의미가 없다"는 문장까지 오고 나니 앞에서 들은 직설들이 조금 다르게 읽혔어요. 차가운 제목 끝에서 저자가 붙드는 단어는 결국 행복이었습니다.


소장 가치로 보면, 핵심을 네모 상자에 따로 정리해 둔 대목이 쓸모 있어 보여요. "코끼리는 한 번에 최대 두 개까지만 처리하자" 같은 문장은 체크리스트처럼 다시 꺼내 보기 좋거든요. 조마토, 라즈마 커리, 빤, 차나 마살라처럼 낯선 인도 이야기마다 옮긴이 주석이 붙어 있고, 루피를 우리 돈으로 환산해 둔 것도 친절했어요. 이선미 님 번역이 매끄러워서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가 술술 넘어갔습니다. 비라즈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 갈지는 직접 따라가 보시는 게 제일 재미있을 거 같아요.


읽는 내내 즐거웠고,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같은 책은 다 읽고 나면 뭐라도 한 조각 시작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선선한 10월 첫 주에 코끼리를 한 입씩 먹는 법을 배운 기분이에요. 커리에 병아리콩에 망고까지 먹는 얘기가 하도 많이 나와서, 제 커리어보다 오늘 저녁 메뉴가 더 걱정되는 건 비밀로 해 주세요. 좋은 책 만나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남은 주말들 아껴 쓰시길요.


차가운 제목 뒤에 커리 한 그릇의 온기와 '코끼리는 한 입씩'이라는 현실적인 처방, 그리고 결국 행복을 붙드는 마음이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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