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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지능 - 다이어트, 대사, 건강한 식생활의 최신 과학
케빈 홀.줄리아 벨루즈 지음,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살 안 빠지는 거, 정말 내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마흔 후반이 되도록 저는 그렇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음식 지능>은 머리말부터 그 믿음을 슬쩍 흔들어 놓더라고요.
10월 첫 월요일이에요.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인데, 거울을 보면 살찌는 게 꼭 말만은 아닌 것 같아요. 내일 출근 생각에 일요일 오후가 조금 아깝게 느껴지는데, 햅쌀에 전어에 먹을 건 또 왜 이렇게 많은지요.
김영사에서 9월에 나온 책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20여 년 동안 영양과 대사를 연구한 과학자 케빈 홀과 건강 전문 기자 줄리아 벨루즈가 함께 썼고, 번역은 소아과 의사이자 번역가인 강병철 선생님이 맡았어요. 원서가 2025년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에 뽑혔다니 받아 들기 전부터 기대가 컸네요.
머리말 제목이 '별먼지와 햇빛'이에요.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람은 별먼지로 만들어졌고 햇빛의 에너지로 움직인다는 데까지 갑니다. 다이어트 책이 우주에서 문을 여니 괜히 설레더라고요. 건강한 음식을 식탁에 올릴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설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은 '나 자신'이었대요.
저도 그 답을 골랐을 사람입니다.
저자들은 여기서 질문을 바꿔 보자고 해요. 어떤 식단이 최고인지 따지기 전에, 우리가 왜 지금처럼 먹게 됐는지부터 들여다보자고요.

케빈 홀이라는 사람, 참 재밌습니다. 고등학교 때 열과 물질에 호기심이 생겨 물리학을 택했고, 얼터너티브 록 밴드에서 베이스를 쳤다고 해요. 맥길대학교에서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모델링해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그 뒤 바이오 벤처에서 당뇨 환자의 식후 반응을 시뮬레이션하다가,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아도 소화는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고요. 비만 연구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물리학자였대요. 책이 빼곡한 연구실에서 흰 가운 대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는 묘사에는 웃음이 났어요. 어릴 적 꿈이 아버지 작업장을 돕던 정비공이었다니, 사람 몸을 기계 뜯어보듯 들여다보는 시선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파는 물건도 없고 특정 식단 편도 들지 않는 사람이라 마음 놓고 따라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줄리아 벨루즈는 2015년 여름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케빈을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뻔해 보이는 질문까지 되풀이해서 묻는 편이라, 과학에 밝지 않은 저도 숨 고르며 따라갈 수 있었어요.

<음식 지능>에서 제일 재밌는 건 다들 상식처럼 알던 이야기를 하나씩 뒤집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게 8,000칼로리 법칙. 8,000칼로리를 덜 먹으면 지방이 1킬로그램 빠진다는 계산인데, 원래 1파운드에 3,500칼로리라는 규칙을 우리 독자에 맞게 킬로그램으로 바꾼 거라고 하네요. 뿌리는 1950년대 추정치예요. 막상 덜 먹기 시작하면 대사가 느려지고 뇌가 '더 먹어!' 신호를 보내서, 1년 안에 체중이 멈춰 선다고 합니다. 2012년에 미국영양학회가 공식적으로 버린 규칙인데도 아직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니 신기하죠. 다이어트를 몇 번 해 본 분이라면 처음 몇 달 잘 빠지다가 딱 멈추는 그 정체기를 아실 거예요. 그게 꼭 내가 해이해져서만은 아니었다는 설명에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더라고요.
다른 대목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중반부 식품 환경 장의 쥐 실험이에요. 쥐는 원래 먹는 칼로리를 알아서 조절한답니다. 그런데 프루트 루프, 초콜릿칩 쿠키, 마시멜로, 땅콩버터, 살라미, 치즈 같은 마트 음식을 차려 주자 열흘도 안 돼 원래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대요. 60일 뒤에는 평균 체중이 50% 가까이 늘었다고 해요. 뉴욕 지하철에서 피자 조각을 끌고 가던 쥐 영상 이야기까지 곁들여지는데, 웃기면서도 남 일 같지가 않았어요. 케빈은 이 실험을 사람에게 옮겨, 성인 20명을 한 달 동안 병원에 머물게 하며 연구했습니다. 2019년에 나온 이 연구는 비타민 발견 이후 가장 중요한 영양 연구라는 평까지 들었다고 해요. 그런데도 저자들은 성인만, 한 달 동안, 병원에서 한 연구라 아직 모르는 게 많다고 스스로 선을 긋더군요. 그 태도가 좋았습니다.
이 장을 읽다 보면 과식과 비만이 의지 부족 탓만은 아니고, 몸의 생물학이 지금의 식품 환경을 만난 결과라는 말이 조금씩 이해가 가요. 2018년 미국 성인이 먹는 칼로리의 60% 정도, 아이들은 3분의 2 가까이가 초가공식품에서 온다는 숫자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지고요. 그런데도 정책 결정자 300명쯤에게 물었더니 90% 넘게 비만의 주된 원인으로 개인의 동기 부족을 꼽았다니.
점심 메뉴 하나 고르는 것도 버거운 직장인 입장에선 좀 억울한 느낌이 듭니다.

옮긴이의 말에서는 또 다른 얼굴을 만나게 돼요. 강병철 선생님은 대학에 들어갈 때 42킬로그램이었는데 인턴 시절 70킬로그램을 넘겼고, 지금은 하루 만 보를 안 걷는 날이 드물다고 털어놓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먹는 문제 앞에선 우리랑 똑같이 고민한다는 게 은근히 위안이 되더라고요. 열 문항짜리 퀴즈도 실려 있어요. 하나만 귀띔하자면 대사가 느린 사람이 오히려 체중을 가장 잘 유지한다는군요. '나는 대사가 느려서 큰일'이라고 투덜대던 사람에겐 반가운 소식이죠. 체지방을 집 안의 벽장과 선반에 빗댄 설명도 있어요. 선반을 뜯어내면 잡동사니가 엉뚱한 데 쌓이듯, 체지방을 억지로 없애면 지방도 엉뚱한 곳에 쌓인다는 거예요.
옮긴이가 책 내용을 정리하며 쓴 문장 중에 밑줄 긋고 싶은 게 있었어요.
"우리는 '적당히 먹는다'는 선을 지킬 수 없다"
의지가 약하거나 식탐이 많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몸이 원래 그렇게 반응한다는 뜻이래요. 좋은 과학책의 미덕으로 과학적 엄밀성과 역사적 통찰력을 꼽으며 남긴 말도 좋았습니다.
"전자가 없으면 공허하고, 후자가 없으면 길을 잃는다"
이 책은 둘 다 갖춘 데다 재미까지 있다고 덧붙여요. 번역한 분이 이렇게 신나서 칭찬하니 덩달아 믿음이 가는 것 같아요.

솔직히 술술 읽히기만 하는 책은 아니에요. 연구 이름과 통계가 촘촘히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속도가 확 줄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통계가 중심이라 우리 식탁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으면 싶기도 했고요. 그나마 옮긴이의 말에서 우리나라 성인 35%, 아동·청소년 20%가 비만이라는 숫자를 보태 줘서 반가웠어요. 해법도 해로운 식품을 분명히 정의하고 아이들 대상 마케팅을 막자는 정책 쪽 이야기예요. 그래서 '나는 오늘 저녁 뭘 먹지' 하는 답답함은 남는 편이에요. 옮긴이도 말은 쉽지만 싸움은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인정하더라고요.
<음식 지능>은 두께도 꽤 두툼합니다. 들고만 있어도 팔 운동이 될 것 같은데, 운동만으로 살 빼기는 어렵다는 게 이 책 이야기니 팔뚝만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오해 하나를 붙잡으면 끝까지 파고드는 구성이라, 궁금한 주제부터 골라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소장 가치를 묻는다면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고 싶은 쪽이에요. 저탄고지나 단백질, 혈당 측정기 같은 유행이 돌 때마다 꺼내 볼 사전 같은 책이 <음식 지능>이거든요. 브로콜리와 도넛이 한 그릇에 담긴 표지도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마음에 들었어요. 칼로리를 킬로그램 단위로 바꿔 준 번역의 세심함도 두고두고 볼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옮긴이의 말은 살도 빼고 사람도 지구도 구하는 열쇠가 한 끼 식사에 있다는 문장으로 끝나요. 거창하게 들리지만, 먹을 게 넘치는 가을에 한 끼를 다르게 보게 해 준 것만으로도 좋은 책 만난 것 같아 흐뭇합니다. 내일 월요일 점심 메뉴 고를 때는 <음식 지능> 생각이 먼저 날 것 같네요.
살이 찌는 게 내 의지 탓만은 아니라는 걸, 별먼지에서 마트 진열대까지 따라가며 차근차근 보여 주는 음식 과학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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