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의 지혜, 흔들려도 가라 -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건너는 53가지 인생 지혜
호메로스 지음, 강현규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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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집에 가는 데 10년 걸린 남자에게 배운 것, <오디세우스의 지혜, 흔들려도 가라> 서평


집에 가는 데 10년이 걸린 남자의 이야기예요.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출발했는데 폭풍을 만나고, 동료를 잃고, 낯선 섬에 갇히고, 고향이 코앞까지 보였다가 다시 먼 바다로 떠밀려 갑니다. 이쯤 되면 내비게이션 탓이라도 할 법한데,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이타케라는 목적지 하나를 놓지 않더군요. 퇴근길이 한 시간만 막혀도 투덜대는 저로서는 일단 고개부터 숙이고 들어가게 되는 주인공이었어요.


<오디세우스의 지혜, 흔들려도 가라>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따라가면서 그 긴 여정에서 53가지 인생 지혜를 길어 올린 책이에요. 강현규 님이 엮고 이선미 님이 옮겼고, 메이트북스에서 9월 1일에 나왔습니다. 요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던데, 스크린으로 모험을 봤다면 이 책으로는 그 모험 속 선택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10월 첫날이고 목요일이에요. 주말이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몸은 한 주 중에 제일 무거운 요일이죠. 그래도 요즘은 이런 날에도 손이 책 쪽으로 먼저 갑니다. 서평단 하면서 생긴 버릇인데 이게 꽤 마음에 들어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오디세이> 전체 줄거리를 한 번 쭉 훑어주는 대목이 있어요. 칼립소의 섬,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키르케, 세이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까지 이름은 들어봤는데 순서는 가물가물하던 장면들이 한 줄로 꿰어지니 좋더라고요. 원전을 안 읽은 사람도 지도 한 장 쥐고 출발하는 기분일 것 같습니다.


이 책만의 말하는 방식도 있어요. 꼭지마다 오디세우스가 직접 "나는"으로 그때 장면을 들려줍니다. 그러다 "나는 그때 ~을 배웠다"로 한 번 숨을 고르고, 곧이어 "당신도"로 고개를 돌려 독자한테 말을 걸어요. 마지막에는 "그렇다고 ~라는 뜻은 아니다"로 균형을 한 번 잡아주고요. 3천 년 전 영웅이 맞은편에 앉아 자기 고생담을 털어놓다가 "자네도 그럴 때 있지?" 하고 묻는 느낌이랄까요.


엮은이의 말에서 이 부분을 분명히 밝혀둔 것도 좋았어요. 53가지 지혜는 호메로스가 직접 남긴 교훈이 아니고 원전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은 해석이라고 해요. 대신 사건의 순서와 주요 장면, 인물의 행동은 원전에서 벗어나지 않게 살폈다고 하고요. 고전을 핑계로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는 책은 아니겠구나 하는 믿음이 거기서 생기더라고요.


다른 꼭지보다 유난히 천천히 읽게 된 건 10번, 부서진 뗏목 이야기였어요.

포세이돈이 일으킨 폭풍 속에서 바다의 여신 레우코테아가 나타나, 뗏목을 버리고 자기가 건넨 베일을 두른 채 헤엄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바로 따르지 않아요. 또 다른 신의 속임수일 수도 있으니 뗏목이 버티는 동안은 버티겠다는 거죠. 거대한 파도가 뗏목을 산산이 흩어놓고 나서야 그는 베일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저는 이 순서가 좋았어요. 처음부터 냉큼 버리지도 않고, 다 부서진 널빤지를 끝까지 끌어안고 있지도 않거든요. 바로 뒤에 "방법에도 수명이 있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회사에서 십몇 년째 써먹고 있는 보고서 양식이며 일하는 순서 같은 게 줄줄이 떠오르더군요. 틀린 방법들은 아니었어요. 다만 그게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따져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오디세우스가 생각보다 훨씬 사람 냄새 나는 인물이라 좋았습니다. 세이렌 꼭지가 특히 그랬어요.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경고를 듣고도 그는 노래가 듣고 싶었대요. 그래서 동료들 귀는 밀랍으로 막고 자기 몸은 돛대에 단단히 묶게 한 다음, 풀어달라고 명령해도 밧줄을 더 조이라고 미리 일러둡니다. 막상 노래가 들리자 몸부림치며 풀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페리메데스와 에우릴로코스가 밧줄을 오히려 더 단단히 조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좀 나더라고요. "위험을 만나기 전에 정한 약속이 그 순간의 욕망보다 강했다"는 문장이 그 뒤에 조용히 붙어 있어요.


의지가 강철 같은 영웅이라기보다 자기가 어디에 약한지 정확히 아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아요. 책은 이 이야기를 휴대전화로 끌고 옵니다. 이번엔 참겠다고 다짐만 하지 말고 알림을 끄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라고요. 퇴근하면 유튜브만 틀어놓다 잠들던 시절의 제가 들었으면 뜨끔했을 소리입니다.


17번 꼭지의 이름 이야기도 그냥 넘기기 아까워요. 폴리페모스가 이름을 묻자 오디세우스는 "아무도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나중에 눈을 찔린 거인이 "아무도 아니다가 나를 해치고 있다"고 외치니까 다른 키클롭스들이 도울 일이 없다며 그냥 돌아가 버리고요. 3천 년 된 말장난인데 지금 들어도 재밌더라고요.


"나는 내가 누구인지 버린 것이 아니다. 드러낼 때를 미루었을 뿐이다."

이 문장 뒤에 오는 "당신도" 대목이 직장인한테는 꽤 아프게 들어와요. 내 직책을 알리고 싶고, 내가 한 일이라고 밝히고 싶고, 내가 옳았다는 것까지 인정받고 싶은 마음. 회의실에서 한 번쯤은 다들 겪어봤을 마음 아닌가 싶습니다. 책은 그게 문제 해결엔 도움이 안 되고 갈등만 키운다면 잠시 자신을 뒤로 물리라고 해요. 책임져야 할 순간에는 자기 행동에 이름을 걸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이고요.


뒤로 갈수록 결이 조금 달라집니다.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한 채 궁전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염소지기 멜란티오스한테 모욕을 듣고 걷어차이기까지 해요. 지팡이로 내리칠까 생각했지만 참습니다. 그 자리에서 힘을 드러내면 정체가 탄로 나고 지금까지의 계획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그 뒤에 이어지는 "반응하지 않는 것과 반응할 때를 스스로 고르는 것은 다르다"는 문장은, 이 나이쯤 되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겪어서 알게 되는 이야기 같았어요. 상대의 도발이 대응할 시점까지 정하게 두지 말라는 말도 함께 붙어 있었고요.


42번 꼭지는 좀 더 깊은 데를 건드립니다. 잠들지 못하던 밤, 구혼자들에게 웃으며 가는 여종들을 보고 분노가 치미는 장면이에요. 오디세우스는 들끓는 자기 마음을 새끼를 지키며 낯선 이에게 으르렁거리는 개에 빗대요. 그러고는 동료들을 잃었던 키클롭스의 동굴을 떠올리면서, 그때도 버텼으니 이번에도 견디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더군요. 분노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대목이라 더 믿음이 갔습니다. 견뎌낸 기억이 감정과 행동 사이에 잠깐 멈출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문장은, 쉰 가까이 살면서 버텨온 날들도 쓸 데가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어요.


꼭지마다 장면, 배움, "당신도", "그렇다고"로 이어지는 흐름이 같아서 한자리에서 여러 꼭지를 내리 읽으면 문장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하루에 몇 꼭지씩 끊어 읽는 쪽이 이 책과 더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한 꼭지가 짧으니 그날 마음에 걸리는 제목 하나만 골라 읽어도 충분합니다.


두께도 부담 없는 편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아요. 차례가 제목만 봐도 문장이라 "부서진 뗏목은 놓고 헤엄쳐라", "모욕에 반응하기 전에 목적부터 보라" 같은 제목만 훑어봐도 그날 필요한 말 하나는 건지게 되고요. 보라색 표지에 흉상 그림이 들어가 있어서 책장에 꽂아두면 제법 근사합니다. <오디세우스의 지혜, 흔들려도 가라>는 뜻대로 안 풀리는 날 아무 데나 펼쳐보기 좋은 책이라 오래 곁에 두게 될 것 같아요. 읽는 내내 남 얘기 같지 않아서 재미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진 10월, 나한테 이타케는 어디인지 한 번쯤 물어보기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세이렌 노래 들을 일이야 없겠지만, 퇴근 후 쏟아지는 알림 정도는 저도 돛대에 꽁꽁 묶어볼 생각입니다. 좋은 책 만나서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다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흔들려도 가시길요.


항로는 몇 번을 바꿔도 괜찮으니 돌아갈 곳만은 잊지 말라고, 3천 년 전 영웅이 마흔 줄 직장인에게 건네는 53가지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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